
영화 '한란'(26일 개봉)은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한라산에 피신한 모녀의 살아남기 위한 여정을 그렸다.
'겨울에 피는 한라산 난초'란 뜻의 제목이 상징하는 건,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이다. 배우 김향기(25)가 토벌대로부터 딸 해생(김민채)을 지키기 위해 산과 바다를 누비는 아진 역을 맡아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그려냈다.
하명미 감독이 20대 중반의 그에게 어머니 역을 맡긴 건 "현 시대 청년들이 아진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18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김향기는 "시나리오가 좋아서 바로 선택했다"며 "엄마 역할을 한다는 건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머니라기보다는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로 생각하고 연기했죠. 제가 만들어낸 어머니 아진은 서투르고 미덥지 못한 면이 있지만, 어떻게든 가족을 지켜내려는 강인한 인물입니다."
그에게 부담됐던 건 어머니 연기보다는 제주어 구사였다. 대사는 전부 1948년 당시의 제주어여서 따라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김향기는 "제주어 감수자와 일대일 과외를 하고 녹음한 걸 반복 청취하면서 연습했다"며 "제2 외국어라 생각하고 접근하니 감정이 잘 실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준비 과정에서 4·3 사건에 대해 더 깊이 파고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2013)을 보고, 제주 4·3 평화기념관도 방문했다는 그는 "감독이 준 책 중에서 생존 여성들의 증언집을 읽으며 너무 괴로웠지만 가슴에 와 닿는 게 많았다"고 떠올렸다.
4·3 사건을 폄훼하는 일각의 움직임에 대해선 "없던 일을 가짜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제작 과정, 그리고 첫 시사에서 제주 사람들이 보내준 따뜻한 성원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건 위주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힘든 과정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담은 영화예요. 아비규환 같은 상황에 처한 아진의 얘기와 감정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학살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딸 해생을 산 속에서 재회한 아진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신들이 겪은 비극을 외부에, 그리고 후세에 남겨야 한다고 다짐한다.


김향기는 "지금까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책임감이 크고 강인한 모습의 캐릭터였다"며 "어떻게든 딸을 지켜야 한다는 목표가 너무 명확해서 괴롭다는 감정이 파고들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성애 연기를 위해 책까지 찾아봤다는 그는 "엄마가 되면 호르몬 체계가 바뀐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진도 무모해 보이는 행동을 하면서 나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며 "그러다 보니 딸 앞에서 슬픔을 드러내선 안된다는 생각이 체화된 것 같다"고 돌이켰다.
해생이 학살을 목격한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걸 알게 된 장면, 더 이상 도망칠 곳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딸을 부여안고 삶의 의지를 다지는 장면은 그가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마음이 찢어지는' 장면이었다.
그는 "두 장면이 의도대로 잘 표현된 것 같다"며 "많은 사람들이 4·3 사건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생을 연기한 김민채는 여섯 살로, 김향기가 데뷔작 '마음이'(2006)를 찍었을 때와 같은 나이다.

"어린 시절, 촬영장에서 쉴 때 엄마와 나무 열매를 따 먹던 즐거운 기억이 있어요. 민채에게도 그런 기억을 남겨주고 싶어 쉬는 시간에 도토리를 줍고 풀과 버섯을 관찰하면서 놀았죠. 민채가 편안하게 연기하도록 해주는 게 배려라고 생각했습니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김향기는 20대 초반,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모습과 사랑 받아온 익숙한 이미지 사이에서 갈등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예전엔 캐릭터에 대한 틀을 만들어 그 안에서 정확히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었어요. 요즘은 '내게 들어오는 작품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해낼 자신이 있나'란 기준으로 선택하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연기를 즐기게 됐습니다."
'한란'을 포함해 '우아한 거짓말'(학교 폭력), '눈길'(종군 위안부), '증인'(자폐에 대한 편견), '아이'(복지 사각지대의 약자들) 등 사회성 짙은 작품에 자주 출연하는 이유로, 그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꼽았다.
"사람에 대한 얘기를 담은 작품을 좋아합니다. 이 사회 어딘가 존재할 것 같은 사람이 이런 상황에선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까 늘 궁금해요. 그리고 화려한 얼굴이 아니어서 그런 작품에 잘 어울리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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