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 아래 헌법 개정이 이뤄졌다. “대통령은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 69조 3항을 “대통령의 계속 재임은 3기에 한한다”라고 고친 것이 핵심이었다. 이로써 1963년과 1967년 두 차례 선거에서 당선된 박 대통령이 1971년 대선에도 출마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대통령의 3연임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3선 개헌’으로 불린다. 이를 두고 대통령의 장기 집권, 심지어 독재까지 가능하게 만든 그릇된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런데 3선 개헌의 해악은 대통령 임기 연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1963년 개정된 이전 헌법에는 “국회의원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지방의회 의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공사의 직을 겸할 수 없다”(39조)라는 명문의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1969년 개헌을 거치며 이 조항이 “국회의원은 법률이 정하는 공사의 직을 겸할 수 없다”라고 바뀌었다. 이로써 입법부 구성원인 현직 국회의원이 행정부 2인자인 총리나 중앙 정부 부처를 이끄는 장관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대통령제의 핵심이 입법·사법·행정의 삼권 분립이란 점에서 얼핏 이해가 안 가는 처사다. 더 놀라운 것은 1969년 이후 여러 차례 개헌이 이뤄졌으나 국회의원의 총리 및 장관 겸직 허용 조항은 계속 살아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박 대통령의 3선 개헌 추진 당시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 중에도 부정적 의사를 밝힌 이가 많았다. 그때만 해도 소장파 의원이던 이만섭(2015년 별세) 전 국회의장 등이 대표적이었다. 대통령 임기 연장에 반대하는 여당 의원들을 구워삶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바로 총리 및 장관 겸직이라는 ‘당근’이었다. 대통령의 방침에 토를 달지 않고 고분고분 따르면 총리나 장관이 되는, 즉 입각의 영예를 누리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의원 개인으로선 장관으로 폼 잡을 수 있고 대통령은 자리 하나 내주고 국회를 통제할 수 있으니 대통령·국회의원 모두에게 유리한, 전형적인 정치적 담합”(박재창 전 한국외대 석좌교수)이란 지적은 정확해 보인다.

이재명정부 들어 지명된 총리 및 장관 후보자 18명 중 절반 가까운 8명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이쯤 되면 내각 구성원 전원을 현직 의원으로 꾸리는 의원내각제와 별 차이가 없어 ‘준(準)내각제’란 냉소까지 나온다. 여당 의원이 총리나 장관을 겸하면 정부를 감시해야 할 국회 칼날이 무뎌질 것은 불보듯 뻔한 노릇이다.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의 임기 연장과 의원들의 특권 확대를 서로 맞바꾼 ‘뒷거래’는 적폐라면 적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정하기는커녕 적극 활용함으로써 행정부 권력을 확대하려는 시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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