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김주영 기자]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본격화하고 있다.
2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시장의 침체 속에서 고금리, 전세 사기 문제, 그리고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까지 더해지며 전세 중심의 전통적인 임대차 거래 구조가 월세 또는 반전세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입자와 임대인 모두 각자의 이유로 월세 계약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월세 거래 비중은 57.4%로, 2023년 대비 2.5%p 늘어났다. 수도권에서의 월세 비중은 46.2%로 여전히 비수도권(60.2%)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증가세는 더 가파르게 나타났다. 고금리 환경 속에서 세입자들이 전세 보증금 반환 위험을 피하고, 임대인들이 안정적인 월세 수익 확보를 추구하는 상황을 반영한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최근 전세를 줄이고 월세를 늘리는 계약 형태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라며 “이는 세입자들이 보증금 반환 위험을 우려하고, 임대인들이 고금리 속에서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상황이 맞물린 결과”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임대인들이 월세를 선호하는 이유는 금리가 계속 올라 대출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보증금을 통해 대출을 상환하거나 다른 투자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고금리 시대에서는 보증금을 받고 대출을 갚는 것보다 매달 안정적으로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월세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세입자들의 입장에서도 월세 전환은 합리적인 선택으로 여겨지고 있다. 전세 사기 사건과 보증금 반환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전세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빌라왕' 사건 이후 세입자들은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을 위험을 줄이기 위해 월세나 반전세 형태로 계약을 선호하는 모습이다.
월세 수요 증가에 힘입어 고가 월세 거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21일까지 월 임대료 500만원 이상 거래는 총 20건이었다. 이 중 월 임대료 1000만원 이상으로 분류되는 초고가 월세 거래는 3건에 달했다.
고가 월세 거래는 주로 강남·서초·용산구에 집중됐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래미안첼리투스 전용면적 124.02㎡(13층)는 보증금 1억원, 월세 1100만원에 계약이 체결되며 초고가 월세 시장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 244.543㎡(5층)는 보증금 15억원, 월세 1000만원에 거래됐으며, 강남구 논현동 브라운스톤 전용 244.2㎡(3층)는 보증금 2억원, 월세 800만원에 임대차 계약이 갱신됐다.
서울 강남구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강남과 서초는 고가 월세 수요가 꾸준한 지역”이라며 “최근에는 용산과 성동구에서도 고가 월세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집을 구매해 세금을 부담하기보다는 월세로 거주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특정 수요층이 이러한 선택을 한다”고 덧붙였다.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가 중심으로 자리 잡는 변화는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동산 관계자는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은 단순히 일시적인 시장 변동이 아니라, 고금리와 전세 사기 문제라는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며, “이에 따라 월세 시장은 당분간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