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환자의 행동유도

2024-10-20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참 다이나믹합니다(그러니까 아이들이겠죠). 진료실에 안 들어가겠다고 대기실에서 울고 소리지르며 바닥에 드러눕던 아이가 막상 치료를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치료받는 경우도 있고(물론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검진 잘 받던 아이가 치면세마와 불소도포를 시작하면 눈물이 터져서 울다가 토하기도 합니다(이건 제법 자주 있는 일이구요).

치료 받는 걸 몹시도 힘들어 하던 아이가 대견하게 치료 잘 받고 고맙다고 손편지 써줄때면 ‘아, 나도 이제 제법 행동조절의 대가가 돼가는가 봐’ 라는 생각에 우쭐했다가도, 지난번에 치료 잘 받았던 아이가 오늘은 너무 힘들어하고 보호안정기구 까지 하면서 치료하게 되면 ‘아, 난 역시 아직 멀었나봐’ 라는 생각에 속상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경험을 왔다갔다 하다 보면 20여년째 소아치과의사로 아이들을 보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다이나믹하며, 협조를 기대하기 쉽지 않은 아이들을 잘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행동유도(behavior guidance)’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던 ‘행동조절(behavior management)’이라는 용어보다는 요즘은 ‘행동유도(behavior guidance)’ 라는 용어로 사용하는데, 의미상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행동조절은 양질의 치과치료를 방해하는 아이들의 부정적 행동들을 잘 조절해서 좋은 치료를 해주는 데 주된 목표를 두는 개념의 용어라면 행동유도는 부정적인 행동들을 조절해서 양질의 치과치료를 제공하는 동시에 아이와 보호자가 치과진료 및 구강건강 관리에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까지를 목표로 하는 좀 더 넓은 개념입니다. 이러한 행동유도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 및 보호자와 치과의사 사이의 의사소통을 통한 온전한 관계의 형성입니다(그래서 너무 어리거나 발달지연 등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에는 그만큼 행동유도가 어렵겠죠).

이러한 행동유도는 크게 ‘기본적인 행동유도(basic behavior guidance)’와 보다 ‘전문적인 행동유도(advanced behavior guidance)’ 2가지로 구분하는데, 기본적인 행동유도는 의사소통을 위한 여러 방법들, 탈감작(대표적으로 tell-show-do), 긍정강화(positive reinforcement) 및 주의분산(distraction) 등의 방법들입니다. 기본적이라는 의미는 꼭 전문적인 소아치과 교육을 받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소아환자를 볼 때는 항상 유념해서 하셔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전문적인 행동유도에는 보호안정(protective stabilization), 진정요법(sedation), 전신마취(general anesthesia)의 방법들이 있으며 이런 방법들은 전문적인 소아치과 교육을 받고 하셔야 합니다(전문적 행동유도까지 필요하다면 제일 마음편한 방법은 가까운 소아치과로 보내시는 거구요). 이 중에서 기본적인 행동유도의 여러 방법들과 아산화질소를 이용한 흡입진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행동유도는 어린이의 행동을 평가하고 분류해서 어떤 행동유도 방법이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지 찾아가는 과정인 동시에 아이에게 맞는 행동유도를 적절히 사용해 양질의 치과치료를 제공하는 길고도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가슴이 웅장해지는데, 너무 거창하게 썼나요?). 따라서 아이들의 행동 및 태도를 평가하고 분류하면서 이러한 행동과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성인환자를 볼 때와 어린이환자를 볼 때의 큰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상호관계의 차이입니다. 성인환자에서는 환자와 치과의사 사이 일대일의 관계이지만, 어린이환자의 경우 환자, 보호자 그리고 치과의사 사이의 삼각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려가 필요하며, 따라서 보호자에 대한 관리가 필요할 수도 있고 진료 중 보호자를 분리시킬 수도 있습니다.

성공적인 행동유도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이와 치과의사 간의 온전한 관계의 형성이며, 이를 위해 가장 기본되는 것이 바로 효과적인 의사소통입니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법이 모두 사용될 수 있으며 긍정적이면서도 따뜻한 태도로 아이의 발달단계에 맞는 적합한 단어를 사용해 적절한 음성으로 명료하게 의사전달을 하면 됩니다(이것저것 상황에 맞게 다 잘 하면 된다는 얘기인데, 쉽게 썼지만 쉽지만은 않은 건 비밀이에요). Tell-show-do(TSD)로 대표되는 체계적 탈감작 방법은 어린이들의 치과에의 불안감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어린이의 발달수준에 맞는 혹은 이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치료과정에 대해 상세하고 솔직하게 설명(tell)하고, 여러 감각기관(시각, 청각, 후각, 촉각)을 통해 보여주며(show), 설명한 범주 내에서 시술을 시행(do)합니다. 시술하는 중에도 계속적으로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tell)하고 보여주면(show) 더욱 효과적입니다(너무 솔직하게 마취주사기 같은 것까지 보여주시면 안돼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등의 동영상을 보여주며 주의분산(distraction)을 유도하거나, 협조도가 증가함에 따라 어린이들의 좋아하는 장난감 등으로 긍정강화(positive reinforcement)를 유도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이러한 여러 기본적인 행동유도 방법들로 어린이와 의사소통하며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성공적인 치료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좋아서 고민없이 선택한 소아치과이고 처음 소아치과 레지던트가 될 때만 해도 행동조절의 대가가 되어서 울던 아이도 방실방실 웃으며 치료를 마치며 항상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진료실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이러한 의사소통의 방법들만으로는 적절한 치료가 힘든 아이들도 제법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금쪽이로 자라서 그런지 체중이 40~50kg 되는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 중에서도 치과치료를 심하게 거부하고, 힘들어 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이렇게 의사소통 및 관계형성을 위해 노력만으로는 적절한 치과치료가 힘든 상황에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시도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기본적인 행동유도 방법이 바로 아산화질소-산소(N2O-O2)를 이용한 흡입진정법입니다(요즘은 치과공포증이 있는 성인환자분들을 위해 사용하는 치과도 제법 있더라구요). 머리 아픈 아산화질소의 물리적 성질이나 흡입진정을 위한 여러 기계, 장비 및 설비 등의 설명은 넘어가지만, 흡입진정에 대해 충분히 숙달되고, 진정법 중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의 대처에 대해서도 익숙해진 후 사용하셔야 합니다.

아산화질소-산소 흡입 진정법의 경우 항상 적절한 산소농도(20% 이상)가 유지되기 때문에 절대적인 금기증이 거의 없는 충분히 안전하게 적용될 수 있는 진정법이며, 특히 치과치료에 대한 불안 및 공포가 심한 환자나 구역반사가 심해 치과치료에 어려움이 있는 환자에게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선 환자에게 맞는 적절한 크기의 nasal hood나 안면마스크를 선택해 100%의 산소를 2~3분간 공급합니다(큰 아이들의 경우 5~6L/min 정도, 어린 아이들의 경우 4~5L/min 정도). 이어서 아산화질소의 농도가 30~40% 되도록 한번에 혹은 점진적(1분 간격으로 아산화질소의 농도를 10%씩)으로 아산화질소의 농도를 올려줍니다. 환자가 긴장이 풀리고 진정이 되면 아산화질소의 농도를 유지하며 치과치료를 진행합니다(아이들의 협조도가 언제 바뀔지 모르니 빨리 치료를 마치는게 중요해요).

치료 중에는 아이의 상태(얼굴색, 호흡, 맥박, 반응도 등)를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하며, 일반적으로 아산화질소가 50% 이상의 농도에서 부작용의 빈도가 커지기 때문에 아산화질소는 30~40%의 농도를 유지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은 구토인데, 구토가 발생하면 아이의 머리를 옆으로 재빨리 돌리고 구강 내를 흡인기로 청결히 해준 후 호흡곤란 등이 생긴다면 100%의 산소를 흡입하도록 합니다.

또한 흡입진정법 중에 기본적인 행동유도를 함께 사용하면 훨씬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치료가 완료되면 100%의 산소를 최소 5분 동안 흡입하고 아이가 진정상태에서 정상적으로 회복한 후 집으로 귀가시킵니다.

이런저런 어려운 상황들에 대해 얘기했지만, 실제로는 씩씩하게 치료 잘 받고 예쁘게 배꼽인사하며 가는 아이들이 훨씬 많으니까 아이들 치료를 너무 겁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소아치과의사를 하면서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는 “힘들게 애들 치료를 어떻게 해? 힘들지 않아?” 인데요, 아이들을 치료하는 일은 꽤 보람되고 할만합니다.

물론 힘든 순간들도 많지만, 영유아검진 보러 엄마한테 안겨서 올고불고 소리지르던 아이가 어느 순간 혼자 덴탈체어에 누워서 크게 입 벌려줄 때의 대견함, 눈물을 참으며 치료받고 끝나고 나서 감사하다며 인사하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움, 정기검진 올 때마다 훌쩍 커가는 아이들을 볼 때의 뿌듯함 때문에 아이들을 본다는 건 힘듦보다는 감사함인 거 같습니다(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비슷한 거 같아요). 오늘도 진료실에서 아이들을 보느라 애쓰시는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참고문헌

1. 대한소아치과학회 편저 : 소아•청소년치과학, 제5판. Dental Wisdom, 2014.

2.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 Dentistry. Recommendations: Best Practices, Behavior Guidance of the Pediatric Dental Patient. 2020.

3.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 Dentistry. Recommendations: Best Practices, Use of Nitrous Oxide for Pediatric Dental Patients. 2023.

4.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 Dentistry. Recommendations: Best Practices, Use of Protective Stabilization for Pediatrci Dental Patient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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