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 강남지점 ‘낮잠 상영관’ 1천원 이벤트 전석 매진
판 깔아주니 잘 자는 관객 vs. 불면을 이기지 못한 관객, 승자는?

“극장에서 낮잠 자실 분 구합니다.”
메가박스가 ‘점심시간마다 눕고 싶은 직장인 학생을 위한 쉼터’를 내세우며 낮잠 이벤트를 공지하자 온라인의 반응은 뜨거웠다. “극장에 사람이 안 가니 별 이벤트를 다 동원하는 것 같다”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재밌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행사는 “메가박스 강남지점을 전관 리클라이너 좌석으로 리뉴얼하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알릴 마케팅 방안을 고민하던 중 기획됐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베테랑 배우가 “극장값이 비싸다”고 할 정도로 영화 티켓 비용이 올랐다. 1만원 중반대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면 본전 생각이 날 수밖에 없지만, 2시간 동안 리클라이너 좌석에서 자는 데 단돈 1000원이라니? 혹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5일간 예정된 이벤트는 티켓 오픈 당일 빠르게 매진됐고 극장은 1개관을 추가로 열었다.
지난 3월17일 낮잠 이벤트 첫날 메가박스 강남지점을 찾았다. 월요일 오전 시간대 극장은 쾌적하다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기자가 예매한 4관은 53석 규모. 6열 중 5열에 자리를 잡았다. 시작 5분 전 속속 ‘숙박객’들이 입장했다. 대다수 입장객은 1인 단위였다. 이날만큼은 편안한 스웨트 상하의와 캡모자 차림이 베스트 드레서로 보였다.

각자 리클라이너의 각도를 조정하는 낮은 기계음이 들리고 상영관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비상대피요령 안내 영상이나 휴대전화 진동 설정 안내는 여느 영화와 같았다. 다만 “깊은 숙면으로 인해 일정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라는 공지가 ‘자러 온 사람들’을 위한 자리임을 일깨웠다. 극장은 이내 명상용 음악으로, 스크린은 소리의 파장을 시각화한 영상으로 채워졌다. ‘새소리, 물소리, 풀벌레 소리 등 평화로운 음향을 듣다 그만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로 끝나는 기사였으면 참 좋았을 법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소등 후에도 입장이 이어졌다. 요즘 직장인의 점심시간이 아무리 당겨졌다고 해도 오전 11시30분 정각 입장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상영 시간이 임박해 몇몇 취소 표가 나왔던 것도 ‘매인 몸들’의 사정일 공산이 컸다.

잠이 안 올 때 한 마리 두 마리 양을 세듯, 통 감기지 않는 눈으로 지각 입장객의 숫자를 센 지 20분 정도 지났을까. 조도를 낮춘 태블릿과 스마트폰 액정 화면이 서너 군데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앞좌석 관객은 포털사이트 뉴스 페이지를 훑고 있었다. 하긴 애타게 기다리는 속보나 꼭 체크해야 할 뉴스가 있는 시국이다. 쌕쌕. “좌석이 편하다”고 말하던 옆좌석 관객은 숙면을 상징하는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40분이 경과하자 두 명의 관객이 극장을 나섰다. 수면 포기인지, 외부 사정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낮 12시30분을 넘어서면서 속속 퇴실자가 생겼다. 카카오톡을 하는 관객도 보였다. 부디 회사의 급한 연락이 아니기를. 전통적인 점심시간 종료 타임인 1시경, 제법 개운한 자태로 극장을 나서는 관객과 교대라도 하듯 신규 관객이 극장에 들어섰다.
종료 15분 전, 관객 2인이 크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앞열 관객은 스마트폰을 이불처럼 덮은 외투 속에 넣어 시간을 확인하더니 자세를 고쳤다. “띠디디디~” 1시31분, 익숙한 알람음이 기상 시간을 알렸다. 끝까지 남은 관객들은 영화의 크레디트를 챙겨보는 애호가처럼, 자리에서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깔아준 멍석에서 잠 못 이룬 기자와 달리 박진서씨(20)는 “대놓고 판을 깔아주니까 잠이 잘 오더라”며 “원래 불면이 심한 편인데 오늘은 나름 잘 잤다”는 후기를 전했다. 수면 환경에 몇점을 주고 싶으냐는 질문에 박씨와 친구는 “65점”을 외쳤다. 간혹 미세하게 끊기는 명상 음악, 쿵쾅 소리를 내며 오가는 관객이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인스타그램보다 1시간 빨리 뜬 트위터(X) 정보를 보고 왔다”는 두 사람은 “버릇처럼 샀으나” 극장에서 먹지 못한 팝콘을 들고 햇살 속으로 사라졌다.
극장에서 낮잠을 자는 데에는 편안한 좌석과 힐링 음악 외에도 필요한 것이 있어 보였다. 다음엔 안대나 소음방지 귀마개, 담요 혹은 평온한 마음을 준비해야 할까. 메가박스 관계자는 이번 이벤트의 ‘흥행’에도 극장은 영화를 보는 공간임을 내내 강조했다. 이어 “동일한 이벤트 진행 여부는 내부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