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이승엽 눈물·강민호 퇴장…이제야 밝힌 '베이징 올림픽 야구金' 뒷이야기

2025-01-10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9일 방송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세븐틴 멤버 도겸, 배우 하도권, SBS 주시은 아나운서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때는 2008년 7월. 연습이 끝난 야구선수들이 줄줄이 버스에 타. 이때, 코치가 올라와서 선수 몇 명에게 이렇게 말을 해.

"축하한다! 최종 엔트리 결과 나왔더라. 가서 잘하고 와... "

이 소리를 들은 선수들이 너무 기뻐해. 선수라면 모두 꿈꾸는 무대, 꼭 한번 서길 원하는 그곳에 갈 수 있게 됐거든. 반면, 버스 가장 끝자리에 앉아서 이 모습을 보던 한 선수는 깊은 실망감을 느껴. 난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한 거니까.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후, 이 선수에게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져.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게.

"저는 사실 기회가 앞으론 없을 줄 알았어요. 사실 엔트리가 바뀌는 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조금 실망을 했던 거 같고. 제가 알기로는 구단한테 먼저 연락이 온 것 같고요. 구단에서 이제 '엔트리가 변경이 됐다. 빨리 대표팀에 합류하라' 그래서 짐을 싸서 저녁 늦게 쯤에 서울로 이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윤석민, 당시 기아타이거즈 투수

최종 엔트리가 바뀌며 윤석민 선수가 극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됐어. 그럼 대표팀은, 어떤 대회를 준비하고 있던 걸까? 운동선수라면 모두 꿈에 그리는 무대, 바로 올림픽이야. 이번 '그날'의 이야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 관한 거야. 당시 출전했던 많은 선수들이 직접 그날의 뒷이야기를 전해줄 거야.

윤석민 선수가 마지막으로 합류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4명의 야구 대표팀이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게 돼. 베이징에 도착한 야구 대표팀은 선수촌에 입촌했어. 근데 이때, 특별한 느낌을 받은 한 선수가 있어.

"베이징 선수촌에 딱 입촌을 했는데. 느낌이 그냥 너무 좋은 거야. 이 걸어가는 길 자체가, 처음 가는 베이징인데 자주 와봤던 느낌인 거고. '(택근이) 형, 느낌이 너무 좋은데요?' 이번 올림픽 동메달 이상에 대한 느낌이 왔어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 1차전 한국 vs 미국

선수촌에 입촌하고 며칠 뒤, 드디어 첫 경기가 열려. 그런데 첫 상대가 야구종주국 미국이야.

"미국은 최강이었고, 1차전에 우리를 붙인 것은 이건 정말 불리한 대진이고. 우리를 우승 못하게 하려는 거 아니냐, 그런 분개한 마음까지 갖고 갔어요. 그래서 경기를 불안하게 보면서 중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배기완, 2008 베이징 올림픽 캐스터

2008년 8월 13일, 세계 최강 미국과 대한민국의 경기가 시작돼. 우리나라 선발 투수는 봉중근 선수야. 역시 미국인 걸까? 1회 초부터 미국에게 선취점을 뺏겨. 그리고 2회 말 우리의 공격. 이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자 한국 관중들의 응원소리가 높아져. 바로 이대호 선수야. 이대호 선수가 2점 홈런을 때렸어. 그렇게 우리나라가 2대 1로 역전을 했어.

8회까지 점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6대 4로 우리나라가 두 점 차 리드를 하고 있어. 그리고 9회 초, 한기주 선수가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이번 회만 막으면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첫 번째 승리를 거두게 돼. 그런데, 홈런을 맞은 거야. 솔로 홈런으로 점수는 이제 6대 5. 한점 차로 따라 잡혔어. 게다가, 연이어 다음 타자 안타, 또 2루타까지 내주며 노 아웃 주자 2, 3루 최대 위기상황을 맞아.

"엉망진창이었죠. 완전 이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강속구를 뿌리는 한기주였기 때문에. 와… 한기주 볼이 저렇게 맞아 나간다고?"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결국 김경문 감독은 투수교체를 선택했어. 이 위기를 막을 막중한 책임은 투수 윤석민 선수에게 돌아가.

"그날 '이제 경기가 없다'라고 통보를 받고 불펜에서 더그아웃으로 들어왔어요. 신발도 갈아 신고, 땀이 났으니 옷도 갈아입고 좀 편하게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한기주 선수가 마무리 등판하고 상황이 되게 급박하게 돌아간 거예요. 갑자기 조계현 코치님이 저를 찾으면서, 불펜에 나가서 몸을 풀라고 하시더라고요. 다시 유니폼 입고 스파이크를 신고 몸 풀 시간도 없이 불펜으로 뛰어나갔는데, 불펜에 도착하자마자 마운드에 올라오라 그러더라고요. 제가 공을 하나도 안 던졌어요 불펜에서. 그러고 마운드에 올라가는데 사실 얼마나 떨리겠어요. 이게 마음의 준비가 안 되니까."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노 아웃 주자 2, 3루 상황에 마운드에 오른 윤석민 선수. 이 상황에서 윤석민 선수는 두 명의 타자를 연이어 잡아내. 그리고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만 남은 상황에서 슬라이더로 투 스트라이크를 먼저 만들어.

"그때부터 이제 많이 설레더라고요. 투 스트라이크 노 볼에는 투수가 이길 확률이 90%가 넘기 때문에."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제 정말 마지막이야. 윤석민 선수가 공을 던졌어. 그런데 안타를 맞은 거야. 3루 주자에 이어 2루 주자까지 들어오며, 7대 6으로 역전당했어. 그 후 윤석민 선수는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아내. 이제 9회 말, 우리 대표팀의 마지막 공격이 남았어. 이때, 대표팀 감독인 김경문 감독이 결단을 내려.

"근우아. 니가 나가라."

대타를 세운 거야. 9회 말 선두 타자로 진갑용 선수 대신 정근우 선수가 타석에 서. 정 선수는 일단 초구를 보자는 마음으로 기다렸어. 미국의 마무리 투수가 던진 공의 구속이 154km를 찍어. 정근우 선수는 이 공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대.

'만만한데?'

자신감이 붙은 정근우 선수는 2루타를 치고 나갔어. 대타 성공이야. 이어 대타로 나선 김현수 선수는 땅볼로 아웃됐지만 정근우 선수는 3루까지 진루해. 그리고, 이어서 역시 대타로 이택근 선수가 타석에 서.

"제가 들어갔던 상황은 삼진 빼고는 다 괜찮아. 삼진 빼고 뭐 평범한 내야플레이 빼고는 다 괜찮은 상황이기 때문에. 정근우가 3루에서, 리그에서 가장 발 빠른 주자가 3루에 있고. 나는 무조건 방망이에 걸리게 하면 된다…"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택근 선수가 친 땅볼에 발 빠른 정근우 선수가 홈에 들어왔어. 이택근 선수 또한 내야안타로 1루 출루. 7대 7 동점이야.

근데, 이 동점 상황에는 아주 놀랄만한 일이 있었다고 해. 당시 경기를 본 사람들도 알아채지 못했을 수 있어. 이택근 선수가, 앞서 고영민 선수의 원 스트라이크 상황에 대타로 나선 거야.

"원 스트라이크에 주자 3루에, 그만큼 나는 부담감을 안고…"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원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대타가 나오는 건 아주 이례적인 결정이야. 그런데, 김경문 감독의 혜안이었을까? 이 작전이 제대로 먹혔고 동점이 됐어. 다음 타자는 이종욱 선수. 그런데 미국 투수가 1루에 있던 이택근 선수를 견제하다 악송구를 한 거야. 이택근 선수는 그 사이 젖 먹던 힘을 다해 1루에서 3루까지 뛰어. 결과는 세이프. 조금만 더 하면 역전을 할 수도 있어. 과연 역전했을까?

이종욱 선수가 친 외야 플라이에 3루에 있던 이택근 선수가 홈에 들어왔어. 한국의 승리. 세계 최강 미국을 꺾었어.

"야구에서 8 대 7이 우리가 흔히 '케네디 스코어'라고 하잖아요. 그게 가장 재미있는 최고의 스코어거든요. '야 이거 뭐지, 뭔가 새로운데?' 이런 생각을, 희망을 그때부터 갖기 시작한 거죠."

-배기완, 2008 베이징 올림픽 중계 캐스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 3차전 한국 vs 캐나다

8월 14일에 열려야 했던 중국과의 경기는 비로 인해 서스펜디드 게임(경기를 계속 진행할 수 없을 때 경기를 중단하고 추후 경기를 재개하도록 하는 규정)으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우리는 캐나다를 만나. 캐나다는 불과 몇 개월 전에 만난 적이 있어. 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캐나다와 경기했는데, 우리가 3대 4 역전패를 당했어. 이 경기에서 유난히 쓰린 기억을 가진 선수가 있어. 바로 선발투수였던 류현진 선수야. 당시 1회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강판당하고 패전 투수가 됐거든. 그리고 2008년 8월 15일, 올림픽 무대에서 다시 캐나다를 만났어. 이 경기의 선발 투수는 또 류현진이야.

"안녕하세요. 류현진입니다. 캐나다전, 저한테 있어서는 그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고요. 제가 올림픽 예선전 할 때도 캐나다전에 선발 등판을 했었거든요. 근데 그때는 그 전날 한 이틀 전에 음식을 잘못 먹고 배탈이 났었어요. 그래서 좀 부진했었거든요. 근데 본선에서 똑같은 팀을 상대로, 그 중심에 제가 있었다는 거에. 한 이닝 한 이닝 실점 없이 나가자라는 생각만 가지고 처음부터 마운드에 올랐었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당시 나이 22세, 캐나다를 다시 만난 류현진 선수는 1회, 2회, 자신의 결심대로 실점 없이 좋은 투구를 보였어. 0대 0 상황에 3회 초 우리나라의 공격이야. 2사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정근우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 그리고 거기서 홈런을 쳐버려.

"입맛 딱 좋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높이의 코스로 공이 왔어요.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했던 타구를 날렸던 것 같습니다."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정근우의 홈런으로 1점을 획득해. 그리고 4회, 5회... 8회까지 양 팀 모두 점수가 나지 않아. 양 팀 투수 모두 점수를 단단히 틀어막고 있어. 완전 투수전이야. 우리 류현진 선수는 8회까지 5개의 탈삼진을 잡으며 호투를 하고 있어. 1대 0, 점수는 단 1점 차. 투수의 부담감이 어마어마하겠지.

9회 말, 캐나다의 마지막 공격이야. 그런데, 9회 말 캐나다 타선이 하필 가장 강력한 3, 4, 5번 클린업 트리오야.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고 1루에 출루해. 하지만 이어 올라온 4번 타자는 삼진 아웃. 이제 아웃카운트 두 개가 남았어.

다음 타자가 우측 안타를 쳤는데, 그 틈에 1루 주자가 3루까지 뛰었어. 그래서 3루로 공을 던졌는데, 그만 악송구가 나왔어. 그 순간, 투수인 류현진 선수가 3루 백업 수비를 들어갔어.

"근데 저도 아직까지 모르겠어요. 1루 쪽으로 안타가 나면 자연스럽게 1루 쪽으로 스타트를 끊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 제가 어느 순간 그쪽에 가 있더라고요. 정말 운이 좋았다, 그거밖에 없는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자기로 모르게 3루 쪽으로 가서 백업 수비를 했다는 거야. 다행히 더 이상의 진루는 막았지만, 현재 상황 아주 좋지 않아. 9회 말 원 아웃 1, 3루가 된 거잖아. 안타가 아니라도 점수가 날 수 있는 상황인 거지. 류현진 선수의 심정 어땠을까?

'"아 이제 나는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좀 바꿔주시지'라는 생각도 속으로는 했었던 것 같고. 충분히 교체를 해주실 만했거든요. 그때 이미 투구 수도 어느 정도 됐었고, 더그아웃을 살짝 봤는데, 아무 움직임이 없으시더라고요. '아직까지 감독님이 나를 믿고 계시구나…'"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손에 땀을 쥐는 상황에서 류현진 선수의 투구가 이어져. 다음 타자가 류현진 선수의 4구를 쳤는데, 공이 높이 떴어. 그 공을 우익수가 잡았어. 이제 투 아웃, 아웃카운트 하나만 더 잡으면 돼. 여기서 류현진 선수는 다음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고, 주자 만루 상황이 됐어.

"그 볼넷 준 타자가 예선전부터 제 공을 좀 잘 쳤었던 타자여서, 위기가 더 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일부러 볼넷을 줬었던 것 같아요. 안타 하나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포수 글러브만 보고 거기다만 던지자' 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다음 타석에 선 캐나다 타자. 투 스트라이크 원 볼 상황에서 그가 친 공이 높이 떴어. 그리고 그 공을 외야수 이종욱 선수가 잡았어.

"딱 치는 순간 '아 끝났다 해냈다..."

-류현진

그렇게 대한민국이 캐나다를 스코어 1대 0으로 이겼어. 당시 22살의 류현진 선수가, 그 힘들다는 완봉승을 거뒀어.

"본선에서 똑같은 팀을 상대로 완봉승을 거둬서, 조금 더 뜻깊었었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쾌조의 2연승을 거둔 우리 야구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 이를 악물다고 해.

"2003년에 '삿포로 참사'라고 있는데, 그 당시 아시아 야구 선수권인데, 이게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을 겸한 대회였는데, 우리가 대만에게 져요. 그래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 삿포로 참사가 있었고. 그리고 2006년에는 도하 아시안게임 때 금메달을 목표로 했는데, 첫 경기 대만에게 패하고 맙니다. 두 개의 참사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야구가 좀 움츠러드는, 계기가 생겨서 한 단계 올라가야 하는 그런 절박한 순간에 베이징 올림픽이 시작된 거죠."

-배기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중계 캐스터

"야구의 인기가 떨어졌을 때였어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야구의 붐을 일으켜야 된다, 책임감을 전부 다 가지고 있었어요."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야구 대표팀은 이번 대회 좋은 성적이 절실했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는 8개국이 출전했어.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모두 7번의 경기를 해야 해. 첫 경기는 8월 13일 미국을 상대로 8대 7로 승리, 14일 중국전은 비로 연기가 됐어. 8월 15일 캐나다를 상대로 1:0 승리. 그리고 8월 16일 펼쳐진 일본과의 경기 또한 5대 3으로 승리를 해. 연기됐던 중국전은 17일 날 1:0으로 승리를 하며 마무리해. 지금까지 4전 4승이야. 대단하지 않아? 그리고 대만, 쿠바, 네덜란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어.

▲ 5차전 한국 vs 대만

8월 18일, 대만과의 경기가 시작돼.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후 우리나라 주전포수 진갑용 선수가 부상을 당해. 당시 대표팀 포수는 두 명이었어. 진갑용 포수를 대신해 누가 투입이 됐을까? 직접 만나볼게.

"안녕하세요. 23살이었던 포수 강민호입니다. 주전 포수는 진갑용 선배님이셨고 저는 백업 포수로 그 대회를 참가했는데. 약체 팀은 제가 나가야 하는 게 맞는 거고, 정말 잡아야 하는 팀은 진갑용 선배님이 나가는 게 맞는데. 대만이 좀 강한 팀이었어요. 그래서 진갑용 선배님께서 나가셨는데, 그날 불의의 부상을 당하면서 제가 이제 나가게 됐는데. 한편으로는 '오케이. 대만 경기는 내가 뛸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준결승이나 결승은 선배님이 꼭 뛰어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렇게 대만전 안방을 지키게 된 강민호 선수. 그리고, 우리나라는 대만을 상대로 1, 2회 무려 8점을 뽑아내. 어때? 이번 경기는 좀 수월할까? 아니. 대만팀에게 2회에 2점, 5회에 4점, 6회에 2점을 내주면서 6회에 8대 8 동점이 됐어.

"저희가 추가 실점을 계속 하면서 결국엔 8대 8이 되고. '쉽겠다'라고 생각했던 경기가 어떻게 보면 엄청난 박빙의 경기가 된 거예요. 전부 다 이제 안 된다 집중하자 이겨야 된다…"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온 상황에서 7회 초, 우리나라의 공격이야. 이대호 선수가 볼넷으로 출루를 하고, 발이 빠른 이용규 선수를 대주자로 내세워. 이어 이진영 선수가 안타를 치며 노 아웃 1, 2루 상황을 만들었어.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다가 동점까지 추격을 당했잖아. 이때 필요한 건 점수. 한 점이 절실해. 그리고 다음 타자 강민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 노 아웃 1, 2루 상황, 한 점을 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은 번트 작전을 펼치지. 과연 그랬을까?

"한 점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저는 당연히 번트를 댈 줄 알았는데 김경문 감독님께서 번트 사인을 안 내셨어요. 번트 사인 안 내서 '나한테 치라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고. 이제 방망이 중심에 한번 맞춰보자라는 생각으로 타석에 임했는데… 치는 순간에 '아 큰일 났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유격수의 글러브를 맞고 외야로 빠진 안타가 되면서 결승타가 됐죠."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강민호 선수가 거기서 안타를 쳤고 이용규 선수가 홈에 들어왔어. 김경문 감독의 강공 지시가 통한 거야. 그런데, 이때 내려진 지시가 강공 지시만이 아니었대.

"그 상황은 런 앤드 히트(주자가 먼저 달린 후 타자가 공을 칠지 말지 결정하는 것)라고.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 상황에서 보통, 노아웃 1, 2루에는 런 앤 히트가 잘 안 나요. 라인드라이브가 되면 트리플 플레이가 나오기 때문에. 더블 아웃에 대한 방지를 해야 하는 건데. 보통 번트 아니면 투 쓰리에서는 그냥 히팅. 주자는 그냥 가만히 있어 스테이가 나오는데. 그 사이에서 1, 2루 주자가 또 뛰었어요…. 김경문 감독님 운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뭔가 그때 야구 기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거지. 그리고, 이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을 했어. 대만과의 경기는 극적으로 9대 8, 승리를 하게 돼.

이렇게 5전 5승을 한 대한민국. 여기서 끝이 아니야. 쿠바 그리고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도 승리를 하며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무려 7전 전승으로 베이징 올림픽 4강에 진출을 하게 돼.

▲ 영원한 숙적 일본

이제 준결승이야. 이 경기에서 이기면 은메달 확보야. 상대는, 영원한 숙적 일본이야.

"그냥 '무조건 이긴다' 한일전 하면 그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고"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우리나라의 명예를 걸고 나가는 거기 때문에, 내 몸이 하나가 부서지더라도 여기에다가 모든 걸 넣어야겠다."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근데, 이 한일전을 앞두고 유난히 더 긴장하고 안절부절 못 하는 선수가 있어. 바로 포수 강민호 선수야. 부상당한 진갑용 선수가 오늘 뛸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인 거야. 하지만 우려대로, 진갑용 선수는 도저히 경기를 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경기장에 도착한 선수들이 워밍업을 하고 있는데, 김경문 감독이 강민호 선수를 불러 "오늘 선발 포수는 너다"라고 말했어.

"준결승 하는 날 야구장에 나가서 진갑용 선배님께서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부터 엄청난 긴장이 저한테 몰려오기 시작했죠."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강민호 선수는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배가 너무 아프더래. 긴장한 강민호 포수와 호흡을 맞출 선발 투수는 김광현 선수야. 금메달을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산. 준결승 한일전이 지금 시작돼.

근데 김광현 선수가 초반에 제구가 안 잡히고 계속 볼을 던져.

"김광현 선수가 21세, 제가 23세였어요. 한 3회까지 관중들이 엄청 시끄러웠는데 아무 소리도 듣지도 못했어요. 벤치에서도 막 '민호야 민호야' 부르는데도 옆을 쳐다봐야 되거든요 벤치를, 어떤 지시가 내려올 수 있으니까. 근데 제가 그것도 못 들을 만큼. '아 큰일 났다. 여기서 내가 역적이 될 수 있겠는데. 좀 정신 차리자' 뭐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덩달아 내야 수비까지 흔들리며 1회 초 일본에게 선취점을 뺏겨. 그리고 3회에도 1점을 주며 2대 0 상황이 돼. 순간 선수들은 심정은 어땠을까?

"뭐 말이 필요 있겠습니까? 이야아… 여기까지 왔는데 이상은 아니야. 이건 아니야. 아 이게 뭐 막 앉아 있지도 못하겠고 막 이거 그냥 죽겠는 거야 이거."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냥 발만 동동동 구르죠."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초반에 2점을 뺏겼을 때는 '경기 힘들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다행히 4회 말, 우리나라가 1점을 만회해. 그리고 7회 말, 대한민국의 공격이 시작돼. 김동주 선수가 삼진 아웃되고 다음 타자는 이대호 선수야. 이대호 선수가 볼넷으로 나가. 이때, 김경문 감독이 또 한 번의 결단을 내려. 대주자로 정근우를 내세운 거야. 정근우 선수는 이 상황이 좀 의아했다고 해. 이대호 선수는 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타자인데, 뒤에 한 번 더 타순이 올 수 있는데 7회에 빼니까. 바뀐 이대호 선수는 이번 경기에 다시 못 나오거든.

"7회 말이었고 이대호였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아직까지 9회 말의 공격이 한 번 더 남아있는데. 그래도 타격감이 좋은 이대호한테 홈런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7회 말에 뭔가 승부를 건다고? 그런데 과감하게 바로 또 대주자 기용을 하시더라고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래서 정근우 선수는 대주자로 나가며 마음을 먹었대. '웬만한 타구에는 무조건 달리자. 목숨 걸고 달리자'라고. 과연, 김경문 감독이 던진 승부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고영민 선수의 안타에 정근우 선수는 2루까지 진루하고, 이어진 이진영 선수의 안타에 정근우 선수가 빠른 발로 홈을 밟았어. 동점!!! 김경문 감독의 승부수가 제대로 먹혔어.

심지어 정근우 선수가 여기서 보여준 슬라이딩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슬라이딩이었대. 일명 '회뜨기 슬라이딩'. 포수의 태그를 피해서 홈플레이트를 싹 스치는 아주 기술적인 슬라이딩이었어.

▲ 믿음의 야구, 4번 타자의 홈런

2대 2 동점에, 8회 초 일본은 점수를 내지 못했고 또다시 우리의 공격 차례가 돌아와. 타순은 2번 이용규, 3번 김현수, 4번 이승엽 선수 순이야. 투수는 일본의 특급 마무리 '사신'이라고 불리는 이와세 선수야.

첫 번째 타자 이용규 선수가 좌측에 안타를 치고 1루에 출루했어. 다음 타자 김현수 선수는 안타깝게 삼진 아웃이야. 그리고 4번 타자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 그런데, 이승엽 선수의 표정이 좋지 않아.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순간 경기장에는 긴장감이 가득해. 왜일까?

"후배들에게 정말 미안해했었어요. 예선전부터 너무 좀 성적이 안 좋으셨고."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많이 부진하고 계셨었어요. 저희가 봤을 때는 정말 이 야구의 영웅이었던 분이 한 타석을 치고 벤치에 들어와서 혼자 눈 감고 이렇게 벽에 머리를 기대가지고 아쉬워하는 그런 모습들을 봤을 때.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뭐 '힘내세요'라는 말도 못 하고 그냥 눈치만 보고 있었던…"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승엽 선수는 당시 7차전을 하는 동안 22타수 3안타. 타율은 1할 대야. 이승엽을 향한 팬들의 반응도 싸늘해. 부진한 이승엽 선수를 계속 기용하고 있는 김경문 감독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어. 심지어, 일본 감독은 경기 전 이런 인터뷰도 했대.

"이 인터뷰에서 호시노 감독은 '4번(이승엽)이 이대로 잠들어 있기를 바라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게 누구냐?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있는 타자를 4번에 계속 두고 있다니 대단하다'며 한국 측을 도발했다."

-당시 신문 기사 中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승엽 선수를 정말 몰라서 이렇게 말 할리는 없잖아? 경기를 앞두고 심리전을 한 거겠지. 그럼, 당시 이승엽 선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부담감 가지고는 표현이 안될 것 같습니다. 정말 제 야구 인생에서 그렇게 힘든 적이 있었을까. 해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많은 기대를 하시고 뽑아주신 분들에게 너무나 죄송스러운 마음밖에 없었죠. 너무나 답답했었고, 후배들 보기에 민망했고. 그 당시 계셨던 김경문 감독님이 계속 보내주셨는데, 그 믿음에 보답을 못 하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함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날 한일전에서도 이승엽 선수는 이미 병살타에 두 번의 삼진을 기록했어. 이런 상황에서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오른 거야. 초구는 바깥쪽 스트라이크. 2구째에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파울. 벌써 투 스트라이크야. 이대로 끝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지만, 정작 동료 선수들은 이승엽 선수를 믿고 있었어. 왜일까?

"항상 선배가 중요한 순간에 칠 거라고 항상 얘기를 했었는데, 그것만큼 중요한 순간은 없었던 거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저희는 항상 그런 게 있었습니다. '해줄 거야' 중요한 순간에는 승엽이 형이 해줄 거야 라는 그런 믿음. 또 이상하게 전광판을 보니 또 8회더라고요. 저희가 더그아웃에서 '야 8회에 승엽이 형이야' 막 이랬었는데."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우리가 일본이라고 하면 '약속의 8회' 해 가지고 8회 여러 가지 상황이 이렇게 만들어지는데."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약속의 8회'라고 들어봤어? 때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상대는 이번처럼 일본이야. 8회 이승엽 선수가 금쪽같은 2타점을 터뜨려. 야구 대표팀은 이 점수에 힘입어 동메달을 획득했어. 그리고 2006년 WBC 1라운드. 이때도 역시 한일전이었어. 2: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8회에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서. 그리고 이승엽 선수의 배트가 가볍게 휘둘러지는 순간 짜릿한 투런 홈런이 나왔고, 역시 승리를 거뒀어.

그리고 이승엽 선수가 또 한 번 한일전 8회에 타석에 선 거야. 모두의 바람이 이승엽에게 모아지고 있어. 그 순간 이승엽 선수의 기분은 어땠을까?

"사실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제가 마음먹은 대로 너무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쳐다보지 않으신 건지, 사실 저는 계속 (더그아웃을) 힐끔힐끔 봤었거든요. 8회 마지막 타석인데 나를 바꿔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약간 좀 소심한 마음은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던 상태였고… 어떻게 해서 들어가게 됐습니다. 공을 겁내지 말고 붙어 보자, 이런 마음으로 타석에 임했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타석에 선 이상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어. 그 순간 지켜보던 우리도 그렇지만 이승엽 선수 자신은 누구보다 간절했을 거야. 과연 약속의 8회가 다시 한번 이뤄졌을까?

이승엽 선수는 그 타석에서 투런 홈런을 쳤어. 속 시원한 투런 홈런. 진짜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아. 지금까지의 부진을 이 한 방으로 싹 씻어낸 거야.

"그때 3사가 모두 동시 중계를 했는데, 3사 캐스터들이나 해설자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서 막 의자가 넘어지고 막 난리가 났었어요. 서로 방송사는 다르지만 함께 하이파이브를 했던 그런 최고의 순간, 절정의 순간이 바로 이승엽의 홈런 8회였습니다."

-배기완, 2008 베이징 올림픽 중계 캐스터

이게 단지 운일까? 경기가 계속 이어지는 힘든 일정 속에서도 숙소로 돌아가면 누구보다 먼저 배트를 들고 선수촌 앞 공터로 향하는 사람이 이승엽 선수였다고 해.

"경기 전날에 선수촌 아파트 앞에서 스윙을 한 분 하고 계셨는데 그게 이승엽 선배였다고 하더라고요. 그거를 아파트에서 보고 몇몇 선수들이 따라 내려가서 '같이 우리도 하자' 그래서…"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배트 안 맞는데 뭐 하는데? 스윙 안 하나?' 이렇게 하면 또 나가는 거예요. 선수촌 안에서는 야구 얘기, 스윙, 이렇게 밖에 안 했던 거 같아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가장 솔선수범에서 가장 많은 연습을 한 사람이 이승엽 선수였다고 해. 심지어, 올림픽 기간 동안 이승엽 선수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해. 지난해 수술을 받은 손가락에 통증이 심했거든. 그럼에도 이승엽 선수는 약속의 8회를 지켰어.

그렇게 분위기가 살아난 우리나라는 2점을 더 획득하며 6대 2로 8회 말 공격을 마무리 해. 이제 일본의 공격을 단 한 번만 막으면 결승 진출이야.

9회 마무리 투수로 윤석민 선수가 올라와. 윤석민 선수는 호투했고, 외야수 이용규 선수가 마지막 뜬공을 잡으며 경기가 끝났어. 대한민국이 준결승 한일전에서 승리했어.

그 어떤 경기보다 꼭 이기고 싶었던 한일전.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승리를 쟁취한 거야. 경기를 마친 이승엽 선수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보여주듯, 이승엽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어.

"너무 미안해서요… 내가 4번 타자인데 너무 부진해서. 너무나 미안했어요. 감독님이나.. 너무나 중요한 경기였는데 후배들한테 미안했는데. 이 홈런 하나로 만회한 것 같아서 너무 기쁩니다."

-당시 이승엽 인터뷰

"제가 인터뷰를 하고 선수촌으로 돌아가면서 감독님한테 한번 여쭤봤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 저는 바꿔주시기를 바랐다, 왜 안 바꿔주셨냐'라고. 제가 여쭤봤던 기억이 있고 감독님이 '너를 바꾸면 대한민국이 지는 거야. 4번 타자를 바꾸게 되면 그냥 축이 무너지는 거기 때문에 그냥 지는 거야. 그래서 끝까지 밀어붙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죄송하고 감사했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이승엽 선수가 후배들에게 던진 한 마디가 있어. 뭐였을까?

"'선배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전부 다 막 가서 안고 막 이렇게 했는데. 선배님께서 딱 첫마디가 '야 야 라면 끓여라. 배고프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라면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고, 그냥 환상적인 기분이었기 때문에. 다른 감정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한일전을 승리하며 우리나라는 최소 은메달을 확보해.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야구 대표팀이 일군 최고의 성적이야. 올림픽에 출전하며 예상조차 하지 않았던 야구 금메달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 거야.

▲ 마지막 게임, 한국 vs 쿠바

8월 23일. 대망의 결승전 날이 밝았어. 결승전 상대는 쿠바야. 명실상부 아마야구 최강의 팀이야. 야구가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된 후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은 결승에 다섯 번을 올랐고 그중 세 번, 금메달을 획득했어.

"쿠바 선수들이 필딩이라고 해서 수비 연습을 하는 걸 봤는데, 동네 야구처럼 해요. 정말 기본기 없이 대충 잡아서 대충 던지는데, 모든 게 정확하고 모든 게 깔끔한 거예요. 아 신체 능력이 다르구나, 동체 시력 자체가 동양인과는 다르구나…"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어마무시하더라고요. 야수들 스피드도 그렇고 타격도 그렇고 투수들도 그렇고. 어디 하나 빠질 게 없는 팀이었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우리나라의 공격으로 대망의 결승전이 시작돼. 준결승 한일전 이승엽의 투런 홈런 기억나지? 이때, 앞서 출루한 선수가 바로 이용규 선수였어. 그런데, 이번에도 이승엽 앞에서 이용규 선수가 안타를 치며 출루를 했어. 그리고 4번 타자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섰어. 혹시 준결승과 같은 일이 일어날까?

"자, 볼카운트 원 스트라이크 투 볼. 이승엽 선수. 4구째 쳤습니다. 좌익수 쪽 뒤로 뒤로 뒤로 뒤로 볼~! 넘어갔어요. 투런입니다. 이승엽 투런 홈런!"

"슬라이더를 노렸는데 때마침 슬라이더가 왔었고. 사실 전날 이제 홈런 치고 기분적으로 멘탈적으로 좀 안정이 되다 보니까, 그 공이 배트에 잘 맞아서. 사실 반대쪽 이제 밀어서 레프트 쪽으로 홈런이 나왔던 그런 장면이 생생하네요. 이제 돌아왔구나... 이승엽이 돌아왔구나.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1회 말 쿠바의 공격. 우리나라 선발 투수는 류현진 선수야. 쿠바는 곧바로 솔로 홈런을 날리며 1점 따라붙었어. 이후 류현진 선수의 호투와 함께 7회 초 한 점을 추가하며 우리나라는 3:1로 앞서 나가게 돼. 하지만 쿠바 역시 만만치 않아. 바로 7회 말 한 점을 내며 3대 2 상황에서 9회 말을 맞게 돼. 우리나라가 1점 앞선 상황에서 쿠바의 마지막 공격이야. 정말 쫄깃한 경기야.

"사실 1점 차이면 불안하죠. 주자 하나 깔리고 장타가 나오면 1점, 홈런이 나오면 역전이 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저희가 유리한 입장이었지만 좀 불안불안한 리드를 가지고 가면서 경기가 후반전으로 흘러갔었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지금까지 거의 120개의 공을 뿌린 류현진 선수가 9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와. 이제 금메달을 따냐 못 따냐는 류현진 선수한테 달렸어. 대한민국의 마지막 수비, 류현진 선수가 혼신의 힘을 내. 근데 쿠바의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며 출루했어. 다음 타자의 번트로 원 아웃 주자 2루가 돼. 그런데 이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져. 류현진 선수가 던지는 스트라이크성 공을 심판이 안 잡아주는 거야. 결국 볼넷으로 타자가 1루에 출루했어. 다음 타자도 볼넷 출루. 순식간에 주자 만루가 됐어.

"누가 봐도 스트라이크 같은 걸 볼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당연히 심판도 사람이고 하니까 놓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한 이닝에 몇 개가 되니까 솔직히 '뭐지?' 그때 이제 '큰일 났다', 이제 그 느낌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위기가 됐으니까."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 전까지 8회까지 잡아줬던 스트라이크존을 갑자기 안 잡아주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마지막 포볼, 주자가 만루가 되는 마지막 공은 솔직히 볼이에요. 그건 제가 인정하는데, 그 전에 한 3, 4개 정도가 스트라이크였는데 스트라이크 콜을 안 했어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억울한 강민호 선수는 심판에게 어필했어. 그러자 심판은 강민호 선수를 퇴장시켰어.

"퇴장당할 줄은 몰랐었어요. 그렇게 심하게 안 했었거든요. 그냥 이렇게 얘기하면서 하길래 '그냥 항의하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퇴장을 하더라고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제가 몇 번 리액션을 했었어요. 스트라이크 콜을 듣고 제가 항상 투수한테 공을 던져주는데, 투수한테 던지려고 할 때 스트라이크 콜을 해야 하는데 안 하길래 제가 심판을 두세 번 이렇게 쳐다봤었거든요. 이게 왜 볼이냐 라는 식으로. 근데 이제 결국 마지막에 주자 만루까지 되는 상황에서, 순간 못 참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들듯이 물어봤죠. 로우볼이냐고. 한국 말로는 '이 공이 낮아?' 제가 이제 격앙된 상태에서 물어보니까, '어? 심판한테 대들어?' 그냥 퇴장시켰던 거 같아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퇴장 명령을 받은 강민호 선수는 포수 미트를 던지며 분노를 표출했어.

"그 심판의 그런 판정에 이해할 수 없었고, 그리고 순순히 퇴장당한다고 그냥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뭔가 제 분노 표출을 좀 하고 싶었어요."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퇴장을 당하는 순간, 강민호 선수의 머릿속에는 '진갑용 선배님 아프신데 어떡하지' 이 생각뿐이었대. 대표팀에 포수가 단 두 명뿐이었다고 했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죠. 포수가 없으니까. 제가 퇴장을 당하고 더그아웃에 있다가 라커룸으로 들어가려고 보는데, 뒤에서 진갑용 코치님께서 다리를 약간 절뚝이시면서 나오고 계시더라고요. 다행이다…"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부상을 당한 진갑용 선수가 퇴장당한 강민호 선수 대신 올라와. 부상 투혼이지. 투수 또한 류현진 선수에서 정대현 선수로 교체가 돼. 3대 2, 원 아웃 만루 상황. 안타 하나면 동점 혹은 역전이 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야. 퇴장을 당한 강민호 선수는 경기장이 아닌 라커룸에서 기도를 하며 경기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어. 17년 전 그날,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기도를 했던 순간이야.

9회 말 1사 만루. 정대현 선수가 두 개의 공을 모두 스트라이크로 던져. 그리고 세 번째 공을 뿌리는데, 타자가 그 공을 방망이로 쳤어. 타자가 친 공은 유격수가 잡아 2루를 거쳐 다시 1루로. 그렇게 병살타가 돼. 순식간에 투아웃을 잡아내고 경기는 끝났어. 대한민국의 기적 같은 우승이야!

대한민국의 금메달. 우리나라 야구 대표팀이 9전 전승을 하며 금메달을 획득한 거야. 올림픽 남자 단체 구기 종목에서는 첫 금메달이야.

▲ 9전 9승, 대한민국 금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는 정말 영화로 만들어도, 정말 첫 경기서부터 마지막 결승까지 아무나 못 만들 수 있는 경기가 매 경기마다 그렇게 나왔던 것 같아요."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런데 이 감격적인 승리 뒤에도 아찔한 뒷이야기가 있대.

"그러니까 전형적인 외유내강. 대현이 형이, 저 뒤 불펜에서 '날 내보내 달라'고 막 그랬어요. 다 보고 있었죠. 나는 시야가 엄청 넓으니까. '으아악~' 막 이러고 있는데. 그러더니 대현이 형이 나가서 이 결과를 만든 거예요."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보통 기본적인 타구가 땅볼이 나왔을 때, 스텝을 밟고 던지는데. 이때 마지막에 고영민 선수가 러닝 스로(공을 야수가 잡은 후 달리거나 뛰면서 연속된 동작으로 던지는 일) 했잖아요. 저도 2루수잖아요. '뭐 해? 아니야!' 공이 날아오는데 주자가 뛰는 게 막 보이는 거야. 그 순간이 엄청 길게 느껴지더라고."

-정근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본인은 그냥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텝을 해서 공을 던지는 것보다 '러닝 스로가 더 편했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 감각적으로 너무 좋은 선수지. 그래도 그 상황에서 그건 아니잖아.(웃음) 거기서 공을 악송구를 했다 그러면, 그 진짜 영원한 죽을 때까지 역적이 되는 거죠."

-이택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그렇게 2008년 뜨거웠던 여름, 통쾌하고 짜릿했던 드라마가 완성된 거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올림픽 야구 금메달.

"야구하기를 잘했구나. 우리가 해냈구나."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몇십 년이 지나도 그때 얘기를 하면은 아마 다 기억해 주시지 않을까."

-류현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국대가 안 됐더라면, 아니면 그 시즌을 내가 못 했더라면... 그냥 다다닥 스쳐 지나가는 것 같고."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내가 왜 야구를 열심히 해야 하는지, 느끼게 해 줬던 올림픽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금메달을 딴 심정을 물었을 때, 이택근 선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한 번 따보십시오"라고 했어. 우리가 금메달을 딸 순 없잖아. 그래서 가져와봤어.

이것이 바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이야. 이택근 선수가 빌려준 거야.

그런데, 대한민국의 금메달을 결정지은 공. 마지막 병살타에서 1루수 이승엽 선수가 잡았던 그 공. 그 공은 어디로 갔을까? 경기 영상을 자세히 보면 이승엽 선수가 뒷주머니에 뭔가를 넣는 듯한 장면이 있거든. 그래서 물어봤어. 이승엽 선수가 챙긴 게 맞다고 해.

"혹시라도 이 경기 마지막 공이, 이제 27번째 아웃카운트가 끝나면 공을 던지지 말고 가지고 있어 달라는, 아마 KBO 쪽에서 요청을 했었습니다. 저도 그걸 생각했었고. 경기를 마무리 짓고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공을 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아주 한국 야구에 큰 일을 한 거는, 그 홈런보다 그 공을 보관하고 KBO에 전달했던 게 더 큰 일인 것 같습니다."

-이승엽,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

이승엽 선수가 전달한 공은 현재 KBO 아카이브 센터에 잘 보관되어 있다고 해.

우리는 스포츠를 보며 참 많은 것을 느끼는 것 같아. 이렇게 세계 정상을 제패할 때는 뿌듯함을 느끼고, 힘든 고비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며 용기와 희망을 갖기도 해. 오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과 기쁨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 2025년 한 해 동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말을 기억하며 한 해를 보낸다면, 1년을 마무리할 때쯤, 우리 모두 빛나는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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