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동네서 50년 영업, 진심은 통한다…사우스LA 모빌주유소 이교석씨

2024-10-31

30일 개업 50주년 동네 잔치

2백불 들고 도미…주유소 취업

74년 개업 후 편견없이 장사

92년 폭동때 주민들 나서 보호

“마음을 표정에 담는 것이 사업”

“미스터 리!”

30일 오후 12시 사우스LA의 한 모빌주유소. 백여 명이 모여 한인 이름을 외쳤다.

주유소 앞마당은 헤더 허트 10지구 시의원, LA경찰국(LAPD), LA소방국(LAFD) 관계자와 주유소 장기근속 직원, 지역 주민, 고등학교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은 올해 84세가 된 이교석씨가 운영하는 모빌주유소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이 씨는 이날 감사패 전달과 함께 기념 티셔츠와 에코백, 피자, 도너츠, 음료수, 스낵 등에 감사를 담아 화답했다.

그는 흑인 밀집 거주지역인 사우스LA의 마틴 루터킹 주니어 불러바드와 버킹험 로드 교차로에 있는 모빌주유소를 지난 반세기 동안 운영했다. 70년대 이 지역에서 업소를 운영하던 한인들은 이민 인구가 급증하자 LA한인타운으로, 인근 지역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넓혀갔다.

하지만 이 씨는 이민 와서 첫발을 내디딘 고향 같은 사우스LA 지역을 떠나지 않았다. 지역 주민과 어우러져 비즈니스를 했다.

그는 “70년대 초 도미해 한인사회와 함께 성장했고 90년대 4·29폭동도 함께 겪었다”며 “가장 큰 보람은 사우스LA 지역사회의 일부분이 된 것”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1970년대 초반 한국에서 이씨는 미8군 피복 공장 매니저로 일하며 영어를 익혔다. 성실한 그는 곧 인정받아 경남기업 국제과 팀장으로 스카우트됐다. 미군과 일하면서 미국을 동경했다. 더 나은 삶과 미국에서 아이 교육을 꿈꿨다. 2년 전 먼저 미국에 온 친구의 초청을 받은 그는 돌 지난 아이와 아내를 남겨두고 200달러를 들고 LA에 도착했다.

낯선 땅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문에서 캄튼 지역 모빌주유소의 구인 광고를 보고 무작정 찾아갔다. 김윤규 사장을 만나 사흘 만에 바로 일을 시작했다.

임금은 시간당 1.25달러. 가림막 하나 없는 뜨거운 남가주 태양 아래서 주유하는 일을 했다.

이듬해 본사가 LA에 있는 주유소 운영 제안을 했다. 행운이었다. 주유소 개장을 위한 최소 자본금은 1만1000달러. 그 당시 일반 비즈니스 자본금 2000~3000달러에 비하면 정말 큰돈이었다.

김 사장은 돈을 빌려줄 테니 열심히 일해 성공하라고 했다. 크렌쇼 불러바드와 베니스 불러바드가 만나는 곳에 문을 연 주유소에서 주 7일 동안 매일 12~14시간을 일했다. 아파트를 구하지 못해 차량 정비를 하던 차고에서 생활했다. 그래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그 시간을 견뎠다. 1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1만1000달러를 모아서 갚았다.

교차로 코너 주유소들 사이서 경쟁은 뜨거웠다. 본사는 경쟁을 피해 주유소가 한 개만 있는 지금의 주유소로 이전을 권했다.

비즈니스 환경은 열악했지만, 지역 주민들은 순수하고 따뜻했다. 종종 물건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직원에게 지역사회에서 받는 도움이 많으니 사소한 도난 사건은 눈감으라고 교육했다. 돈이 없으면 얘기하고 가져가라고도 했다.주유소를 운영한 지 1년이 지나고 흑인 직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 씨의 선행과 차별 없는 시선은 4·29 폭동 때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주유소를 보호하게 했다. 인근 상점들이 방화 및 약탈 피해를 봤지만 이씨 주유소는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았다.

50년 한 자리에서 비즈니스를 지키며 고객들의 아이들이 청년이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돼 다시 주유소를 찾았다. 직원들도 수십명이 다녀갔다.

1997년에는 남가주모빌주유소협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그 당시 회원은 50여 명. 셰브런, 아코 등 그 당시 주유소를 운영한 한인들은 150~200여 명이었지만 지금은 급격하게 줄었다.

모빌주유소 경우 딜러 계약은 3년. 회사는 수익성이 저조한 딜러십은 리스가 끝나는 동시에 문을 닫는다. 주유소 위치, 영어 구사, 수익성 평가 등 딜러십 기준도 까다로워 새로 진입도 쉽지 않다. 이 씨는 수익으로 주유소 지점을 늘리는 대신 1983년 현 주유소의 땅을 구입해 재정 건전성을 높였다.

사우스LA에서 수십 년 운영하며 이씨는 지역 시의원, 경찰서, 소방서, 고등학교 스포츠팀, 교회, 커뮤니티 공원 후원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비즈니스를 운영했지만, 눈앞의 수익보다 지역사회의 일부분이 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주유소 50주년 기념행사는 공공기관 관계자들과 지역 주민들이 모여 이 씨가 지역사회 공익을 위해 지원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말까지 이 씨는 하루 7~8시간 주 6일 근무했다. 아직도 이 씨는 편의점 캐시어, 화장실 청소, 주유 펌프 청소 등 손이 비는 곳에서 묵묵히 일한다.

그는 “흑인 지역 사회와 어우러져 비즈니스를 했다. 50년을 지내보니 그들이 있어 내가 있고 직원이 있었다”며 “감사하는 신실한 마음이 얼굴 표정에 담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게 50년 비즈니스의 전부”라고 말했다.

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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