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루게릭이 찾아왔다
2화. 어느 날 루게릭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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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1월
언젠가부터 왼쪽 다리에 힘이 빠져 절뚝거렸다. 통증도 없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평소 건강 하나는 자신 있었으니까. 그것보다 초등 2학년생 아들과 네 살 딸, 직장 일을 챙기는 게 우선이었다. 하루 3~4시간밖에 못 자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친정엄마가 등 떠밀어 3개월 만에 대학병원을 찾았다. 정형외과, 척추센터, 신경과로 옮겨다니며 계속 검사만 했다. 웬일인지 병명을 못 찾았다. ‘아픈 곳도 없는데 왜 이리 유난이지?’ 그러다 신경과 근전도검사에서 진단이 나왔다. 루게릭병.
‘꿈인가….’
그렇게 어느 날 루게릭이 찾아왔다.
‘10만 명에 한두 명 걸린다는 병에 내가?’ 병원 문을 나서는데 가을 하늘이 어찌나 맑고 푸른지, 단풍은 또 얼마나 붉고 고운지. 그 아름다움이 설움이 되어 마음에 박혔다.
운동신경세포만 사멸하는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은 치료법과 치료제가 없는 병이다. 생존 기간은 보통 2~3년. 하지만 루게릭병 환자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중이다.
투병 나이로 열 살을 맞이한 신은정(52)씨처럼. 은정씨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호흡을 위한 기도 절개 후 ‘묵언수행’ 중이다. 인터뷰는 지난해 7월과 올해 1~2월 안구마우스와 메신저를 통해, 그리고 지난 5일 경기도 안양시 은정씨 자택에서 이뤄졌다.
안구마우스는 모니터 아래에 달린 센서가 눈동자를 인식해 눈동자가 가는 방향으로 마우스 커서가 움직인다. ‘ㄱ’을 치고 싶을 때 화면 속 자판에서 커서를 ㄱ에 고정한 뒤 눈을 깜박이면 클릭이 돼 ㄱ이 써진다. 숙달된 은정씨는 한 글자 쓰는 데 5초 정도 걸린다. 이렇게 보내온 그녀의 답변과 표현을 최대한 그대로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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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2월
그녀는 움직이지 못한다. 눈과 일부 얼굴 근육, 오른 손가락 근육만 남아있다.
병은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힘 빠지는 증상이 왼 다리에서 오른 다리로 퍼져 5년 만에 휠체어가 아니면 이동할 수 없게 됐다. 팔에도 증상이 나타났다. 밥숟가락을 떨어뜨리는 일이 잦아지자 어린 시절 이불에서 노란 지도를 발견했을 때처럼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음식을 씹거나 삼킬 수도 없게 돼 위에 구멍을 내고 고무관을 꽂았다. 관으로 주입하는 물과 적당히 데운 액체 경관식이 배부름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식사다.
혼자 호흡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위루술(위에 구멍을 내 관을 삽입하는 수술)은 별일도 아니게 느껴졌다. 기도를 절개해 인공호흡기로 숨 쉬며 24시간 식물인간처럼 누워 지낸 지 4년. 말을 전혀 못 하지만 그나마 안구마우스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게 고마울 뿐이다. 이걸로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하고, 영화·오디오북·인터넷 강의도 본다. 은정씨의 눈과 입인 셈이다. 다만 60㎝ 거리에서 눈을 계속 부릅뜨고 있어야 해 눈이 아주 아프고 시리다.
# ‘엄마, 죽지 마’
아이들이 어릴 때는 루게릭병을 앓았던 스티븐 호킹 전기를 읽어주며 엄마도 같은 병이라고 말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