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옆 추모관

2024-11-07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새 추모공간인 ‘별들의 집’이 오는 10일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 1층에 문을 연다. 참사 이후 2년 사이 젊은이들의 영정은 여기저기로 다녔다. 지난 5일 오후 6시쯤 찾아가 본 새 추모공간엔 ‘159명의 빛나는 삶과 10·29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있는 곳’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한 빌딩 관리자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자꾸 옮겨 다니는 게 안쓰럽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추모공간 10일 이전

지난 9월엔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참사 책임자들에 대한 재판과 별개로 별도 조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을 매듭짓지 못하는 현 상황은 정부에서 도의적 책임을 회피해 온 탓이 크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정부 역시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래도 이번 정부와는 판이했다. 참사 직후 정홍원 당시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고 두 달 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이 사퇴했다. 사태 수습을 맡았던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그해 말 물러났다. 해양경찰청은 아예 해체했다.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은 조직을 공중분해 한 뒤 퇴임했다. 단 한 명의 장관도 책임지지 않은 현 정부와 대비된다. 당시 해경청장의 퇴임식을 두고 한 해경 간부는 “뭐가 자랑스럽다고 퇴임식을 하느냐”는 내부 기류를 전했다.

이태원 참사에도 불구하고 2년 임기를 채운 윤희근 전 경찰청장의 지난 8월 퇴임식은 화제였다. 퇴임식장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부부의 축하 영상을 틀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정부였다면 참사 직후 사퇴했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듯했다.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고 했던 이 장관은 참사 2년이 지난 현재까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현 정부 최장수 장관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기자회견에서도 인적 개편과 관련해 “적절한 시기에 인사를 통한 쇄신의 면모”를 언급했을 뿐이다.

참사 2주기를 맞아 일부 희생자가 안치된 수도권의 한 추모공원을 지난달 31일 찾아갔다. 유골함이 가득 찬 추모관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이 모인 공간은 눈에 띄었다. 유골함 주변에 꽃과 카드가 빼곡히 붙어 있고 바닥에 꽃다발이 수북이 놓였다. 2년 전 방문했을 때보다 한결 많아진 사진·꽃·편지가 유족과 지인의 아픔을 실감하게 한다. 일기장을 걸어두고 친구들이 릴레이로 적어온 지난 2년의 기록에서 희생자의 안식과 일상의 회복을 바라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희생자와 가족들은 이렇듯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축하 영상을 주고받으며 일상으로 돌아간 정부 책임자들의 모습이 씁쓸하다.

윤 대통령의 약속과 달리 2년이 지나도록 책임 규명은 미흡하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법적 책임엔 형사적 책임과 행정 책임이 있는데, 행정 책임을 규명하는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도심 한복판에서 잇따르는 신고 전화에도 불구하고 대형 사고를 방치한 데 대해 책임 기관이나 공직자에 대한 문책이 필요하나 2년 넘도록 감사원 감사조차 오리무중이다. 공무원 징계시효가 3년임을 고려하면 행정 책임을 묻는 기한도 얼마 안 남았다. 도의적 책임엔 시효가 없지만, 기대하기 어려운 정부다.

부실 대처한 서울경찰청 청사 옆

무책임 정부가 준 상처 덧날 수도

오는 일요일 문을 여는 새 추모공간을 둘러본 뒤 현관 밖으로 나서니 눈앞에 커다란 건물이 보인다. 빌딩 상단에 ‘서울경찰청’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지목된 기관이다. 저 건물 5층의 112치안종합상황실, 7층 생활안전·교통, 8층 경비부, 11층 치안정보부, 그리고 10층 청장실 근무자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이 추모공간은 필요 없었다. 유족들이 ‘별들의 집’을 드나들 때마다 ‘서울경찰청’ 간판을 보면서 상처가 덧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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