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맥부터 블랙웰 GPU까지. 젠슨 황(엔비디아 CEO)은 치밀했다. 15년 만에 찾은 한국에서 그는 한국의 재벌 3세 회장들을 서울 삼성역의 치킨 매장으로 불러내는 파격으로 시작해 “한국에 (그 귀하다는) GPU 26만 장을 우선 공급하겠다”는 깜짝 발표를 내놨다. 이틀간 젠슨 황이 받은 열렬한 환대는 이 거래의 결정권자가 누구였는지를 보여준다. ‘내돈내산’인데도, ‘사게 해줘서 고맙다’고 해야하는 게 지금의 GPU다.
전력 문제, 제조AI의 성공 조건
소극적 ‘원전 실용주의’는 한계
갈등 조정 능력 보여줄 수 있나
한국 정부와 대기업 4곳이 구매할 GPU 26만 장의 값은 약 15조원 규모로 추산된다(GB200 NVL72 서버랙 1개당 300만 달러 적용 시). 한국이 단일 외국 기업과 일시에 이런 대규모 구매 계약을 맺는 건 이례적이다. 엔비디아도 마찬가지다. 제조업에 AI를 붙여 산업을 혁신하겠다는 한국의 ‘제조 AI’ 구상은 물리 세계에 AI를 확산하고 싶어하는 엔비디아의 구미를 당겼을 거다.
이제라도 정부와 기업이 수십만 장의 GPU를 확보하고 한국 제조업의 AI 전환(AX) 의지를 확인한 건 반가운 일이다. 꼭 1년 전만 해도 한국은 걱정스러울 만큼 조용했다. 당시 대만·일본은 앞다퉈 ‘아시아의 AI 맹주가 되겠다’며 엔비디아와 발표를 쏟아냈었는데, 그때 한국은 돈키호테 같은 1명의 엉뚱한 망상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다.
지금을 인간이 ‘지능(intelligence)’을 생산해내는 AI 혁명기로 본다면 제조업 국가인 한국은 AI 기회를 서둘러 잡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18세기 산업혁명기에 증기기관이나 방적기·제철 기술로 생산성을 높인 유럽 국가들이 이후 세계를 지배했고, 컴퓨팅 기술을 주도한 미국이 지난 100년의 번영을 주도했다.
그런데 이런 확신을 실제 변화로 구현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GPU도 확보했고, 아마존웹서비스나 오픈AI 등 글로벌 데이터센터도 유치했다지만, 이들이 쓸 전기는 누가 끌어다 주지 않기 때문이다. GPU 26만 장으로 만들 AI 수퍼컴퓨터를 돌릴 전기는 우리 땅에서 직접 만들어 공급해야 한다. 2000만 장 이상의 GPU를 보유한 미국이 원전산업을 재건하려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공약에 AI 3대강국 목표와 에너지고속도로를 함께 담은 이유도 같을 것이다.
그런데 화려한 GPU 약속과 달리, 전력망 문제는 복잡하고 지난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이데올로기화한 원전은 AI 시대에 대체하기 쉽지 않은 에너지원인데도, 이재명 정부에서도 여전히 움츠려 있다. 앞으로 40년은 더 쓸 수 있다는 고리원자력발전소 2호기의 수명 연장(계속운전) 안건을 두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9, 10월 두 차례 연속 결정을 유보하는 것 자체가 메시지다.
원안위는 설비용량 685메가와트(MW)급 고리원자력발전소 2호기의 처음엔 항공기 테러 등 사고 대응 방안이 부실하다고 한차례 결정을 미루더니 그 문제가 해결되자, 다시 방사선환경영향평가를 원전 운영허가(1981년) 당시와 비교해야 한다는 여당 추천 위원 1명의 주장 탓에 다시 2호기 계속운전 안건을 보류했다. 국내 최대 풍력발전단지(제주 한림 100MW) 6배 규모의 원전 발전용량을 놀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원안위에 계속운전을 신청한 원전이 10기인데 앞으로도 이럴 건가.
또 다른 뇌관은 에너지고속도로다. 이재명 정부는 수도권에 위치한 산업 거점과 지방 해안가에 밀집한 에너지 생산지역을 초고압 송전로로 연결하는 에너지고속도로를 뚫겠다고 했지만, 이 길도 쉽지 않다. 당장 지난달 29일 전남 해남지역에선 초고압 송전선로 반대 해남군대책위가 ‘에너지 고속도로를 폐지하라’며 피켓을 들고 나왔다. 해상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육상의 송전선으로 잇는 핵심지로 선정된 이곳 주민들은 ‘왜 수도권에 보낼 전기 때문에 내 삶의 터전을 송전탑에 내줘야 하느냐’고 주장한다. 송전탑 갈등의 상징이 돼버린 밀양이나 수도권 전력 공급을 틀어쥔 하남시 동서울변전소가 ‘땅끝’에서도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의 중재 역할이 필요하다.
어쩌면 해남은 시작일 뿐이다. AI 데이터센터로 전기를 더 몰아줘야 한다면, 적자 상태인 한전은 전기 요금 인상을 설득해야 할 가능성이 크고, 산업간 형평성 얘기도 나올 수 있다. 요즘 매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코스피나 GPU처럼 환호받을 일들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전매 특허인 사이다 발언과 추진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배려와 경청, 공감 능력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GPU 26만 장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갈등의 소용돌이에 기꺼이 뛰어드는 리더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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