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교육의 정점에 있는 ‘대치동’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특성과 결합해 자기 과시 및 상품 판매를 위한 홍보의 수단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최근 코미디언 이수지씨의 대치맘 패러디 이후 SNS에서는 ‘대치맘’을 언급하는 빈도가 크게 증가했다. SNS에서 대치맘을 언급하는 이들은 주로 화목한 가정과 자녀 자랑을 하거나 대치맘을 내세워 교재 홍보와 교육 컨설팅을 했다. 대치맘을 추종하는 듯한 게시물과 함께 정보공유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20일 인스타그램에 ‘#대치맘’을 단 게시물은 4만4000여개로, 최근 일주일 사이 2000개가량 늘어났다. 이 중 ‘좋아요’가 다수 달렸거나 팔로워가 많은 이용자의 게시물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대치맘 게시물’은 크게 자기과시형, 사업가형, 끼워넣기형, 추종형으로 분류됐다. 가장 많이 보이는 유형은 자기과시형이었다. 대치동에 살며 전문직 배우자의 직업을 적어놓거나 자녀의 성취를 공개해놓은 부모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게시물에 자녀의 영어유치원 졸업식이나 학교 입학식, 학부모총회 소식을 알렸고 가족 사진과 함께 ‘#대치맘’을 붙였다. ‘아이 셋을 전교회장을 시켰고 첫째, 둘째 미국 대학 보냈다’거나 1~3차 전형을 거쳐 학내 동아리에 가입했다고 알리는 부모, “A학원 중등졸업 후 A학원 애들도 다 못 들어가는 B수학학원 다니고 있다”며 대치맘을 태그한 부모도 눈에 띄었다.
“대치동에서 공부만 잘한다는 말 듣지 않게 더 바르게 키우겠다” “아침에 쪽잠을 자둬야 아이 하교 후에는 최상의 컨디션이 된다” 등 본인의 교육 철학을 내세운 게시물도 눈에 띈다. 다른 이용자들은 이들의 게시물에 하트(좋아요)를 수백개씩 누르며 “추천해주실 학습지 있나요” “자식농사 성공!” 등의 댓글을 남겼다.
사업가형은 #대치맘을 적극 활용해 교육 관련 사업을 했다. 대치에서 자녀를 키운 경험을 앞세워 교육 컨설턴트를 자처하거나, 교육 정보와 함께 부동산, 재테크 정보를 공유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 이용자는 최근 “수준 있는 3040 학부모들의 니즈(수요)를 반영하는 강의와 모임이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저 잘할 수 있겠죠?”라고 게시글을 올렸고, 이 게시물에는 ‘좋아요’가 100개 넘게 눌렸다. 또 “전문 컨설턴트분이 입시제도의 올바른 윤곽과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드리고 입시 설명회를 제대로 이해하자는 취지의 강의입니다. 신청하실 분들 먼저 디엠(DM·개인 메시지) 주세요”라는 게시물도 #대치맘과 함께 올렸다. 팔로워가 5만명을 넘는 또 다른 학부모도 서울 학군지 교육 정보와 재테크·부동산 커뮤니티를 함께 운영했다. 이 계정에는 ‘강남 초등학교 학부모운영위원회 1년 후기’ ‘강남엄마가 본 2030 강남엄마들’ ‘강남학군지 개별진도 수학학원 이런데는 거르세요’ 등의 게시물이 최근 올라왔다.
교육과 무관한 본업을 하면서 #대치맘을 붙이는 끼워넣기형과 다른 지역에 살며 #대치맘을 이용하는 추종형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끼워넣기형은 주로 한의사, 성형외과 의사의 인스타그램에서 병원 홍보와 함께 #대치맘이 쓰였다. 전문직 남성들도 #대치맘을 붙여 교육이나 양육방법을 홍보했다. 추종형 게시물 또한 #목동맘, #송도맘, #분당맘 등 해시태그를 함께 붙이며 성장·영양·교육 등을 홍보했다.
네 가지 유형은 모두 대치맘을 통해 수익 창출 활동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기과시형, 추종형 운영자들의 프로필에 있는 링크를 누르면 고구마나 영양제를 살 수 있는 페이지로 이동했다. 사업가형은 교육 컨실팅이나 커뮤니티 조직화를 통해 수익을 내는 것으로 보였다. 영어교재나 강남권 학원 세미나를 홍보하는 게시물도 많았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복합적이다. 인천 계양구에서 중2 자녀의 부모인 홍모씨(49)는 “‘이대로만 하면 되는구나’ ‘이게 로드맵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부럽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중1 자녀를 키우는 이모씨는 “미디어가 대치맘을 자주 언급하며 파급력을 키워줬다. 대치동을 광고문구 처럼 활용하는 이들이 현재의 사회구조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대치맘 이미지를 차용하는 이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교육이 교육을 책임지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양육에 이어 사교육 관리자가 된 상황”이라며 “대치맘이 주목받는 현상에선 양육 담당자인 여성만이 아니라 사교육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구조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