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에서는 기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근의 원인이 자연재해보다 불평등한 분배에 있기 때문이다.
1983년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극심한 가뭄이 일어났다. 에티오피아에선 곡물가가 3배로 뛰었고 100만명이 굶어 죽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의 곡물 생산량은 1982년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1983년에도 평년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같은 시기 보츠와나는 곡물 생산이 예년의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지만 아사자는 없었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군사독재, 보츠와나는 민주 정부였다. 에티오피아는 국내총생산(GDP)의 46%를 군사비로 지출하며 굶주림에 시달리는 국민을 구제하는 데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반면 보츠와나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취약계층에 직접 식량을 나눠줬다. 식량 자원을 분배할 권한을 누가 가졌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생사가 갈린 것이다. 독재국가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굶어 죽어도 정권이 바뀔 가능성이 없으니 구호 대책을 마련할 동기도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결국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정치학회 개막 연설에서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준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며 민주주의와 민생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강조했다. 맹자도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고 했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지기 어렵고,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의미다.
70대 노인도, 20대 청년도 성실하게 일하면 일상에 걱정이 없어야 민주주의다. 그러려면 일자리 창출과 분배가 중요하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6024달러(약 5000만원),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사회의 안녕과 평화는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돈으로 사서 일방적으로 부릴 만큼 부유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팔아야 먹고살 만큼 가난하지도 않을 때 이뤄진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경제 성장의 과실을 고루 나누면서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