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 결정...한국에서 스위스 향한 가족의 여정과 애도[BOOK]

2025-01-17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남유하 지음

사계절

웰다잉, 존엄사 같은 담론이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아직 정치적∙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아 존엄사, 이른바 의료조력사망은 입법 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다 보니 말기 암 등 현대 의학으로는 사실상 치료와 회복이 거의 어려운 상황에 놓인 환자와 가족들은 다른 대안 없이 그저 고통과 싸우며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남유하 작가가 펴낸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는 자신과 가족이 스위스에서 직접 경험한 존엄사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이다. 남 작가의 어머니는 65세 때 유방암 판정을 받고 절제 수술을 한 뒤 10년 넘게 건강하게 생존해 완치됐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뒤늦게 신체 다른 부위로 전이가 확인돼 치료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러던 차에 외국인을 위한 조력사망 제도가 있는 스위스를 찾아가기로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이 책은 그 전후 과정을 소상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전하는 눈물겨운 스토리다.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는 책 제목은 하루라도 빨리 고통을 끝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스위스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한국에서 아직 의료조력사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존엄사법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국존엄사협회, 노년유니언 등 존엄사 합법화 지지자들은 “국회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외면하지 말라”며 시위와 집회를 열고 있지만 찬반양론이 극단적으로 갈려서 당분간 표류가 불가피해 보인다.

남 작가는 “역설적이지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엄마의 희망이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먼 나라 스위스에서의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에 몸부림치는 환자들이 부디 언어의 장벽과 장거리 비행의 부담 없이 한국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감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력사망 법안의 통과는 한국인이 한국에서 죽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라고 했다.

현재 미국의 몇몇 주와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캐나다 등의 국가에서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나라마다 존엄사를 허용하는 요건도 다르고 용어도 차이가 있지만 추구하는 목표는 같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안에서는 조력존엄사라는 용어를 쓴다. 의료진이 돕는 죽음인 의료조력사를 지칭한다. 최근 들어서는 자기 결정이란 의미에서 ‘선택사’라는 용어도 쓴다.

남 작가 가족의 스위스행 존엄사 과정은 다큐멘터리로도 나온다. 준비 과정, 스위스에서의 여정, 귀국 후 가족들의 추모 등을 담은 JTBC의 ‘취리히 다이어리’는 올해 방영 예정이다.

이 책과 다큐는 한국에서 기존의 존엄사 논쟁의 장이 확대되는 새로운 소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말기 환자와 가족뿐 아니라 모두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엄사가 한국에서도 시행되기 위해서는 결국 여론이 움직여야 한다. 마냥 미루기만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제도화하기도 어려운 이 사안에 대해서 이제는 정치권이 해답을 내놓을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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