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법조인을 만난 자리에서 최근 판례 경향성 얘기가 나왔다.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사회 안에서 배출된 법조인들과 법정에 선 일부 ‘밀려난 사람들’ 간의 괴리가 커져 엄벌주의가 강화할까 우려하는 얘기였다. 그런 경향성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나는지는 알지 못한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확인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일명 ‘수저론’과 능력주의가 동시에 심화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는 약자의 문제를 얼마나 숙고해왔는가, 일의 주요한 축으로 삼고 있는가 돌아봤다. 적어도 수년간 그러지 못했다. 지난 대선과 총선, 12·3 불법계엄과 조기 대선을 거치는 동안 늘 ‘더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정치부 기자는 많은 것(실은 모든 것)이 정치 전략으로 치환되는 것을 목격하고 또 일조하게 되는데, 약자 정책을 다룰 때도 그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의 바다’에 자신을 던져보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작은 섬에 올라선 스스로를 자각한 듯해 아찔했다.
새로 출범한 정부의 주요 직책에 있는 이들이 거듭 약자를 언급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다행스럽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7일 취임식에 사회적 약자를 상징한다며 양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그는 그러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단 한 명도 남겨놓지 않고 구하자는 마음” “사회적 약자와 경제적 약자, 정치적 약자를 찾는 일”을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위기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큰 고통”이라며 이들을 위한 국정을 주요 책무로 강조해왔다.
다음 스텝은 사회적 약자, 경제적 약자, 정치적 약자를 설정하고 그들 각각의 삶의 조건을 개선할 국가의 대책을 내놓는 일이다. 경제적 약자를 위한 이재명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은 오는 21일 집행을 앞뒀다. 보이지 않던 이들, 목소리가 약한 이들에게 직접 마이크를 쥐여주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남은 것은 국가가 개입해 ‘구해야’ 할 사회적 약자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나설지인데, 이는 불분명해 보인다.
다시 차별금지법에 대한 소극적 대응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차별을 막는 법에 대해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민생과 경제가 더 시급” “일에는 경중선후라는 게 있(다)”고 말했다. 방향에는 공감하나, 시급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김 총리는 앞서 검증 과정에서 2년 전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며 이 법 입법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됐다.
이런 발언들은 ‘약자를 단 한 명도 남겨놓지 않겠다’는 새 정부의 기조와 어긋난다. 나중에 구해도 될 약자는 없고, ‘후순위’라는 말을 듣고 싶은 약자도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구하는 방식이 차별금지법 입법이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이들의 인권을 폭넓게 보장할 것인지 다른 답을 내놔야 한다. 국회에 맡겨두겠다는 것은 약자 우선을 내세운 정부에 어울리는 방식이 아니다. “5200만명의 운명을 바꾸는” 이 대통령의 한 시간에는 오랜 시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기다려온 이들의 시간도 포함돼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