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복고풍 외출

2024-09-24

꺼내 입은 색 바랜 주름치마는

젊었던 한 시절 땟국물 남아

여기저기 얼룩져 있다

우중충한 하늘 너무 오래 바라보다가

심술 궂은 구름이 밑단을

소낙비로 저질러 놓은 황톳빛

촘촘하게 누벼진 실밥에서

노을 향해 슬슬 번져나던 나

오래 타고 다니다 떠나보낸

승용차의 배기구 냄새가 난다

지금은 바퀴 튼실한 대중교통에

나 잘 길들어가고 있는 중

그래도 자꾸 옛 치마 너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허리 아래 가늘어진 종아리까지

겹겹 파도로 가렸던 그때의 기분 때문

지하철 여러 계단을 오를 때도

한 번 더 출렁거려 보는 주름의 춤은

어쩌면 내 생의

마지막 필살기인 것을

◇권영숙= 경북 안동 출생. 계간<문예세상> 시 부문 등단. ‘낙강’ 시조 부문 등단. 대구 문인협회 회원, ‘형상시학회’ 회원 ‘시인마을’, ‘문세’, ‘국보문학’, ‘내 마음의 숲’ 동인으로 활동 중.

<해설> 이 시는 왠지 쓸쓸하면서도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넌지시 알려주는 시로 읽힌다. 시인은 지금 아주 오래전 풋풋한 젊던 시절에 입었던 주름치마를 꺼내입고 외출을 나서고 있다. 그러니까 복고풍 외출이다. 오래전에 터진 실밥에서 한때 길 위를 누비고 다니던 애마(승용차)의 배기구 냄새를 맡으면서 또는 예고 없던 소낙비에 얼룩진 밑단에서 황토물 자국을 보면서, 기억 속을 여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모두 지난날의 기억일 테고 현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인이 가늘어진 종아리로 계단을 오르며, 파도 무늬가 연상되는 주름치마의 주름을 씩씩하게 흔들어보는 것이다. 가장 잘하는 것이, 춤인 것처럼. -박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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