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실히 첫 번째 임기 때보다 더 독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 압박과 안보 분담 요구 말이다. 취임한 지 딱 두 달 만에 트럼프발 퍼펙트 스톰은 캐나다와 멕시코, 유럽연합(EU) 등 대서양을 강타(bashing)한 뒤 인도·태평양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12일 미국이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25%의 관세 부과를 면제하지 않자 호주는 들끓었다. 트럼프 1기 때처럼, 미국은 대호주 무역 흑자(2024년엔 약 26조원)국이어서 면제를 기대했는데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캐나다나 유럽연합(EU)처럼 미국을 겨냥한 보복 관세를 부과하진 않겠다고 했다. 대신 국민에게 호주산 구매(Buy Australian) 캠페인에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이런 때 우리가 할 일은 모든 사람이 ‘호주 팀’(Team Australia)으로 복귀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다. 1기 때 관세 면제를 받았던 맬컴 턴불 전 총리는 “오랜 동맹국을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이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의 한·일·호주 때리기
모래주머니 달고 뛰라는 격
중국은 동맹 균열 파고들어
인도·태평양의 또 다른 미국의 동맹인 일본 역시 25% 관세를 두드려 맞았다. 일본은 호주와는 달리 대미 무역 흑자국인데, 지난 2월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방미 이후 한숨 돌렸다는 기류가 형성됐다. 하지만 ‘도널드’와 한번 통화하면 1시간을 훌쩍 넘기고, 다른 정상 흉보기까지 하는 사이였던 ‘신조’(아베 신조 전 총리)의 나라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사히 신문은 “트럼프 정부에 농락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심한 표현까지 썼다.
일본은 이제 대미 수출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자동차와 쌀 관세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 됐다. 1기 때 ‘도널드’가 ‘신조’에게 “협상에서 너무 양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던 바로 그 분야다. 이뿐만 아니다. 조지 글라스 주일대사 지명자는 얼마 전 인사청문회에서 주일미군 주둔 비용을 ‘틀림없이’ 올리겠다고 했다. 그는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지키는 비용이 “더 비싸졌다”고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럽 동맹국을 몰아붙이듯이, 일본도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에 무임승차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버스비를 제대로 안 내면 아예 버스를 운행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호주와 일본이 받아든 청구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도 이미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맞았고, 일본처럼 자동차, 쌀, 쇠고기 등에 대한 관세 인상에 노출돼 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도 곧 날아올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인도·태평양 핵심 동맹국은 너나 할 것 없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 참전하기도 전에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다는 꼴이 됐다.
세 나라는 일단 미국의 ‘동맹 때리기(bashing)’에 인내하면서 타협하려고 애쓰지만 그게 언제까지일지는 알 수 없다. 물론 당장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느닷없이 모래주머니를 채운 미국을 바라보는 각국의 국내 여론이라는 돌발 변수는 세 나라의 발걸음을 느리게 할 것이다. 조셉 윤 주한미국 대사대리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때에 비하면 한국에 “반미(反美)가 없다”고 했는데 쉽게 장담할 일이 아니다. 호주처럼 미국제품 불매 캠페인이 일어날 수 있고, 혐중을 뛰어넘는 반미 분위기가 순식간에 고조될 수도 있다.
특히, 현재 세 나라의 정치 리더십은 공히 취약한 상태다. 호주는 정쟁으로 총리 교체가 잦은 나라다. 일본은 이시바 체제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고, 한국은 아예 리더십이 부재한 상태다.
중국은 이미 전방위적으로 미국과 인·태 동맹국 간의 균열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일본과 호주에 대한 수입 통제를 선제적으로 완화하고 무비자 방문을 허용했다. 코로나19 시기 악명 높았던 중국의 ‘전랑 외교(일명 늑대 외교)’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그 자리를 ‘미소 외교’가 차지했다.
중국은 최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올해 외교예산(약 12조8000억원)을 대폭 늘렸는데, 놀랍게도 증가율이 국방예산보다 높다. 올해 일본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에도 적극적이다. 5년여 만에 이달 열리는 3국 통상장관 회의에서는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논의가 다시 시작된다.
4월 2일 트럼프 정부의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분위기가 심상찮다. 포병은 목표물을 정확히 공격하기 위해 먼저 길게 쏘고, 이어 짧게 쏜 뒤 정조준을 한다는데,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협상의 기술’이 아니라면 미국의 인·태 동맹국 옆에서 정말 누군가가 속으로 웃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