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4월 2일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발표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미국 눈높이에 맞는 조치를 취하는 일부 나라는 상호관세를 피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비관세장벽이 높은 나라 15곳을 ‘더티15(dirty 15)’라고 지칭해 한국이 포함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18일(현지 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달 2일 각 국가에 부과할 관세율 숫자를 발표할 것”이라며 “어떤 국가는 그 숫자가 낮을 수 있고 어떤 국가는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국가의 관세율, 비관세장벽, 환율 조작, 불공정 자금, 노동 억압의 수준 등을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부 관세는 시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낙관하고 있다”며 “그 전에 협상을 타결하거나 상호관세 숫자를 받은 국가가 협상을 위해 우리에게 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가 만족할 만한 조치를 할 경우 관세가 부과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로, 그간 예외 없는 상호관세를 강조했던 발언에서 수위가 다소 낮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베선트 장관은 “우리가 ‘더티15’라 부르는 국가들이 있는데 이들은 상당한 관세를 미국에 부과하고 있다”며 “이들 국가가 일정량의 자국 생산을 요구하거나 미국이 수출하려는 식품이나 제품에 안전과 관련 없는 검사를 하는 등 관세 못지않게 중요한 비관세장벽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국가들이 ‘더티15’에 포함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국이 속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 미국의 무역적자국 순위 8위(지난해 658억 달러)로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17일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며 콕 집어 언급했다. 지난주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만난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역시 한국의 농산물 위생·검역(SPS)에 대해 “시정할 게 많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 에너지부의 ‘민감 국가’ 지정에 이어 ‘더티15’ 그룹으로도 분류될 경우 대미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압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대중 수출도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각국과의 무역협정에 우회 수출 통제를 포함하려 한다”고 말했다. 미국산 반도체의 대중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해 행정명령 등을 동원했지만 앞으로는 아예 무역협정에 못 박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해 미국산 장비·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는 만큼 실제 무역협정에서 구체화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캐나다와 중국이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것과 관련해 미국이 분쟁 협의 절차에 응하기로 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이날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WTO에 접수한 문서에서 캐나다·중국 측과 분쟁 협의를 진행할 준비가 됐다며 “미국의 WTO 규정 위반을 이유로 제소한 것은 억지이며 제소국 스스로 규정을 어긴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분쟁 협의 신청은 WTO 제소 절차의 첫 단계로 최종 합의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