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국내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퓨리오사AI와 미국 빅테크 메타 간 인수합병(M&A) 거래를 심사하고 있다. 메타는 퓨리오사AI가 개발한 AI반도체 기술력에 주목해 지난해 말부터 인수를 추진해왔다. 추후 정책 당국이 퓨리오사AI 보유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판단하고 기술 안보 등을 이유로 약 1조 원 규모의 M&A 거래를 중지시키면 국내외 투자금을 바탕으로 사업을 영위·확장해나가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19일 관가와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퓨리오사AI가 메타로 약 1조 원 규모로 인수되는 건을 두고 심사 중이다. 산자부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상 국가첨단전략기술 또는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을 가진 기업이 해외로 M&A될 때 이를 검토·심의·승인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특히 정부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받아 국가핵심기술 등을 보유하게 된 기업은 해외로 매각될 때 이를 정부에 반드시 신고하도록 돼 있다. 국가경제와 기술 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산자부는 퓨리오사AI 보유 기술의 국가핵심기술 해당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핵심기술은 현재 △반도체 11개 △자동차·철도 10개 △철강 9개 △조선 8개 △기계 8개 △정보통신 7개 등 13개 분야의 76개 기술인데 이 중 AI반도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없다. 정부가 특정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신규 지정하면 이를 고시하도록 돼 있어 아직까지는 AI반도체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퓨리오사AI가 개발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산자부가 심사 중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의 심사 결과에 따라 메타가 추진 중인 퓨리오사AI 인수 건은 상당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퓨리오사AI의 보유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이 되면 산자부는 현행법에 따라 해외 기업으로의 인수 건을 검토해 승인·중지·금지 또는 원상회복 명령을 내려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M&A 거래를 조건부로 중지시키거나 아예 금지시킬 수 있다. 이 경우 국내 첨단 핵심 산업에 대한 해외 투자에도 제동이 걸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AMD가 투자를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업스테이지 등 국내 유력 AI 스타트업 전반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퓨리오사AI는 삼성전자와 AMD를 거친 백준호 대표가 2017년 설립한 기업으로 국내 AI반도체 기업 중 선두권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2021년 1세대 제품 ‘워보이’를 선보였고 지난해 8월에는 차세대 제품 ‘레니게이드’를 공개했다. 레니게이드는 글로벌 AI반도체 시장을 사실장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최신 제품 ‘H100’과 비교해 성능이 미미하게 떨어지는 대신 가격이 낮고 전력 효율이 뛰어나 상품성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AI 투자에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붓고 있는 메타가 지난해 말부터 퓨리오사AI 인수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퓨리오사AI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2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아 사업을 자체적으로 키우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국내 벤처 투자 생태계 위축 등으로 실패했다. 국내 벤처캐피털(VC) 업계의 투자 금액은 보통 1000억 원 미만이고 이 이상의 금액을 투입할 수 있는 대기업은 스타트업 M&A에 미온적이다. 백 대표는 이달 5일 국회에 출석해 “반도체 제품은 글로벌하게 경쟁해야 하는 제품인데 국내 모험자본이 많이 부족한 게 큰 챌린지”라고 토로했다.
퓨리오사AI에 투자한 주요 주주는 “퓨리오사AI는 국내에서 투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현금 흐름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 “당국의 심사 강화로 기업공개(IPO)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정부 심사로 M&A가 좌초되면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산자부 관계자는 “국가핵심기술 관련 심사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