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韓 급소 환율부터 공략… "스위스·베트남식 외환시장 개입 축소 요구할 듯"

2025-04-25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헤지펀드인 ‘키스퀘어그룹’의 창립자이자 거시 분석 투자가로 35년 이상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베선트 장관은 특히 1992년 조지 소로스에게 영국 파운드화 공격 아이디어를 제시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소로스는 당시 불과 몇 주 만에 10억 달러(약 1조 500억 원)의 수익을 거두며 헤지펀드 업계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국내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베선트 장관은 단기 투기보다 긴 호흡으로 구조적 약점을 포착해 들어가는 전략가”라며 “1992년 영국 통화 체제의 취약한 고리를 짚어 낸 것처럼 이번 협상에서도 한국의 환율 구조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갖고 접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4일(현지 시간) 종료된 한미 ‘2+2 통상 협의’에서 환율 문제가 공식 의제로 채택되면서 미국이 우리 정부에 의도적 원화 절상(원·달러 환율 하락)이나 외환시장 개입 축소 등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과거부터 환율조작 문제를 비관세장벽의 하나로 규정해 각종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해왔다.

스위스와 베트남이 과거 미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대표적 국가다. 두 나라는 2020년 미 재무부로부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바 있다. 스위스는 스위스 프랑의 절상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점, 베트남은 대미 무역흑자액이 급격히 늘면서 동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절하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환율조작국에 포함됐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기업의 투자나 미 연방정부 조달시장의 진입이 제한되고 통상 압력을 받게 된다. 당시 스위스는 환시장 개입 규모와 빈도를 축소하기로 합의한 뒤 조작국에서 해제될 수 있었다. 베트남 역시 관리변동환율제는 유지하되 변동 목표 밴드를 넓히는 방식으로 미국의 제재에 백기를 들었다.

전문가들은 향후 한국도 이 같은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환율조작국을 지정할 때 △지난 1년간 1500억 달러 초과의 현저한 대미 무역흑자를 올렸는지 △국내총생산(GDP)의 3%를 초과하는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를 보였는지 △8개월간 GDP의 2%를 초과하는 외환을 지속적으로 순매수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나라는 3가지 중 달러 순매수를 통한 외환시장 개입 요건은 충족하지 않아 아직은 환율 관찰대상국으로만 지정돼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 외환 당국은 지난해 환율 방어를 위해 115억 5800만 달러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지난해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올해까지 원·달러 환율이 상승세(원화 가치 하락)를 나타내고 있어 미국이 지목하는 고의적 화폐 가치 절하 국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도리어 환시장에서 달러를 내다파는 방식으로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측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원화가 다른 국가 통화 대비 유독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들어 향후 통상 협상에서 환율조작국 카드로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후 미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2.41% 절하됐다. 엔화(7.61%), 유로화(5.62%), 파운드화(3.11%) 등 주요국 통화가 달러화 대비 절상된 것과 대조적이다. 또 우리나라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해당 분기로부터 3개월 지나서 공개하는데 미국 측이 이러한 늑장 공시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걸고 넘어질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원화 약세가 당국의 인위적인 조치가 아니었음을 충분히 피력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은 과도한 평가 절하에 따른 시장 혼란을 막기위한 조치라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과거 플라자합의와 같은 인위적 환율 절상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사이 외환시장 개방의 폭이 크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이 일본과의 협상에서는 주요 7개국(G7) 차원의 ‘외환시장 불개입 원칙’을 다시 꺼낸 만큼 상대국을 향한 환율 정책 압박 강도가 예상보다 약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현재로서는 미국이 외환시장에 직접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없다고 봐야 한다”면서 “다만 미국이 달러 강세를 제한하는 각종 조치들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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