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2심 결심공판이 25일 열린다. 올해 2월 1심 선고 이후 10개월 만이다. 이날 재판에서는 검찰 구형, 변호인 최후변론에 이어 이 회장의 최후진술이 있을 예정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는 이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회장 등의 항소심 결심공판을 연다. 결심공판이란 그간의 변론 및 심리를 마무리짓는 절차로, 검찰 구형에 관심이 쏠린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회장이 최후 진술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준법 경영을 강화하는 한편 책임 경영에도 주력하겠다는 취지의 언급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양측 변론이 마무리되면 재판부는 선고기일을 정해 통지한다. 통상 결심 이후 1~2달 뒤 선고가 이뤄지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초 판결이 유력하다. 항소심 재판부는 내년 2월 법관 인사 전 선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왔다.
이 회장 혐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자본시장법 위반, 이 과정에서 벌인 업무상 배임, 분식 회계에 관한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등으로 나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경영 승계를 목적으로 무리하게 합병을 추진하고, 회계부정·부정거래에 개입한 혐의가 있다며 2020년 9월 기소했다. 삼성물산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는 게 검찰측 판단이다. 삼성물산 이사들이 배임 행위의 주체로, 이 회장은 지시 또는 공모자로 지목됐다.
이 회장 등은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 합병 이후 회계처리 기준을 바꿔 4조5000억원 상당의 자산을 과다 계상했다고 의심한다. 두 사건은 병합됐다.
앞서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의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두 회사 합벼이 이 회장 승계만을 목적으로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당시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게 산정돼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검찰은 항소심에서 1200쪽에 이르는 항소이유서를 내고 1500쪽에 이르는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혐의 입증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일부 혐의를 인정한 행정소송 1심 판결을 반영해 공소장을 변경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8월 서울행정법원 행정 3부는 금융당국이 6년 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로 회계를 부풀려 계산했다며 내린 제재를 취소하라고 판단하면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일부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했다고 봤다.
재판 결과에 따라 이 회장의 경영 행보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DS) 사업부문은 안팎에서 조직 문화 혁신, 본질적 경쟁력 확보에 대한 주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삼성전자가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하며 내놓은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의 반성문도 이같은 상황을 방증한다. 그는 삼성 위기 진단에 따른 책임을 통감하며 "근원적 기술 경쟁력 회복, 미래 준비, 조직문화 재건"을 약속했다.
본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미래 대비를 위한 먹거리 발굴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고 세를 불린 노조는 회사를 연일 압박하면서 삼성은 말그대로 '사면초가'에 놓여있다. 이대로라면은 한 순간에 1등 자리를 내놓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거세지고 있다.
이 회장이 2022년 10월 회장으로 취임한 뒤 '뉴삼성' 메시지에 대한 관심이 컸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공격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할 때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사업리스크에 매인 탓에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번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면 삼성은 혁신과 변화에 방점을 두고 '뉴삼성' 경영 전략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텔, TSMC 등 반도체 경쟁자들이 조 단위 투자를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영향력을 갖춘 이 회장이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하만 이후 멈춘 대형 인수·합병(M&A) 시계가 다시 돌아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면 유죄 판결이 나오게 되면 이 회장의 경영 활동은 또 다시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상고심까지 고려하면 2~3년 더 사법리스크를 안고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의 미래 청사진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으면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