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일하는 일본인 많다 했더니…엔저가 만든 '월급 역전'

2025-01-29

#지난해 8월 워킹홀리데이(워홀) 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이시가미 코나츠(29)는 서울 강남의 한 일본 음식점에서 홀 서빙을 하고 있다. 이시가미는 “이전에 한국 여행을 자주 왔는데 살고 싶다는 마음에 워홀을 신청했다”며 “엔화가 너무 떨어져서 매일 일하지 않으면 60만원가량의 월세를 내는 것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국내 일본어 학원에서 강사로 근무하는 A씨(28)씨는 10대 때 한국 아이돌 영상을 보다가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엔화 가치가 많이 떨어지다 보니 한국에서 일본 때와 같은 시간을 일해도 엔화로 환산하면 더 많은 돈을 저축할 수 있게 됐다”며 “주변에 일본인 근로자가 늘고 있다는 게 체감된다”고 했다.

한국서 일하는 일본인 늘어

29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장기체류자격 비자를 받아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지난해 10월 2만8911명으로, 2019년 같은 달(2만5667명)보다 12.6% 증가했다. 국내 장기체류 일본인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2020년 전년 대비 감소했다가 2021년부터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반면 일본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은 2023년 7만1454명으로, 2019년(6만9191명)보다 3.3%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9년 10월과 비교해 지난해 10월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전제로 취업 가능한 특정활동 비자(E7)로 국내 체류하는 일본인은 37.7% 늘었다. 이 기간 단기취업 비자(C4)로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384%, 구직 비자(D10) 체류 일본인은 484% 증가했다. 이전까지 일본으로의 ‘인력 수출’이 보편적이었다면 최근엔 일본으로부터 ‘인력 수입’이 시작됐다는 풀이가 나온다.

증가세가 특히 두드러지는 건 워킹홀리데이(H1 비자)다. 1년간 체류하면서 관광과 취업 활동을 모두 할 수 있어 워홀 비자는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다. 외국인 비자 발급을 전문으로 하는 행정사무소 관계자는 “일본인 H1 비자 문의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며 “워홀 비자 문의는 대부분 일본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10월 워홀 비자 체류 외국인 3826명 중 일본인(1447명) 비중이 37.8%에 달한다. 10년 전(617명)보다 워홀 일본인이 135% 증가하면서다.

엔저에 한국 급여 수준 높아져

2022년부터 나타난 기록적인 엔저 현상이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월평균 엔화 대비 원화값(100엔당)은 2020년 5월 1145.65원에 달하는 등 2022년 3월까지 1000원대를 유지했지만,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지난해 2~7월엔 800원대를 기록했다. 월급 200만원을 가정하면 100엔당 원화값이 1100원일 때 엔화 환산 급여는 1818엔이지만, 900원일 땐 2222엔으로 크게 증가한다. 최근 원화값이 하락했다지만 지난달 평균 100엔당 원화값은 934.25원으로 여전히 900원대다.

이 때문에 외국인 유학생 등 취업 비자를 따로 받지 않고 국내에서 일하는 일본인도 늘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유학생의 경우 시간제 취업 허가를 받으면 아르바이트가 가능하다. 숭실대에 재학 중인 유학생 아라마치 루나(27)는 지난해 국내 기업 제품을 일본어로 번역해 소개하는 재택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는 “엔화가 많이 떨어져서 일본에서 벌어놓은 돈으론 생활비가 빠듯해 일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은 지역마다 급여 차이가 크다 보니 도쿄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의 급여 수준이 더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평균 월급도 한국이 역전

일본의 임금 인상은 장기간 정체했다. 반대로 한국은 최저시급이 2014년 5210원에서 올해 1만30원으로 10여년간 2배로 오르는 등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가파른 임금 증가를 경험했다. 그 결과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2022년 한국 직장인 평균 월급(399만원)이 일본(379만원)을 처음 추월했다. 2002년엔 한국 직장인 평균 월급이 179만원으로, 일본(385만원)의 절반 수준이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역전했다. 한국은행은 2023년 한국의 1인당 GNI가 3만6914달러로, 일본(3만5793달러)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월드뱅크가 물가 수준을 반영해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따진 1인당 GNI로 비교해도 한국은 2021년 일본을 넘어섰다. 한국의 1인당 GNI가 2000년부터 2022년까지 84.7% 증가하는 동안 일본은 11.5% 증가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K콘텐트 열풍에 한국 관심 높아

K팝, K드라마 등 K콘텐트의 인기도 일본인의 국내 취업 열풍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24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본 내에서 한국 음악과 한국 드라마를 경험했다는 응답자 비중은 각각 71.5%, 62.1%에 달한다. 특히 10대와 20대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도가 컸다.

일자리를 찾아 국내로 들어오는 일본인이 늘자 이들에게 국내 거주지와 일본어 과외를 알선하는 사업도 등장했다. 지난해 일본어 교육 플랫폼 니코(niko)를 설립한 노건희 대표는 “한국 체류를 원하는 일본인 상당수가 K콘텐트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이후 한국 생활에까지 관심을 갖는다”며 “일본인 문의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연 1300시간 제한 워홀 비자 등 한계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고자 하는 일본인이 늘고 있지만, 비자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워홀 비자의 경우 연간 1300시간으로 근로 시간이 제한된다. 주당 근무시간으로 따지면 25시간에 불과하다. 한국인이 일본으로 워홀을 가는 경우 일본인과 동일하게 주당 40시간을 일할 수 있는 것과 차이가 있다. 일자리 보호를 위해 특정활동 비자의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하고, 외국인 유학생 아르바이트 시간을 주 20시간으로 제한한 것도 국내 체류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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