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헌법재판소장 퇴임사 전문

2024-10-17

"헌재의 현재 상황이 위기 상황…사법의 정치화 경계해야"

사랑하는 헌법재판소 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제8대 헌법재판소장 직에서 퇴임합니다. 먼저 오늘 퇴임식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2018. 10.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 이후 오늘까지 저를 도와주신 헌법재판소 가족 여러분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1984년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이래 41년 가까이 공직에 근무했습니다. 법관으로 근무한 30년도 저에게는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만, 특히 헌법재판소에 근무한 지난 6년은 우리 사회가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고 국민들께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는데 작은 힘을 보탤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헌법재판소장직을 물러나면서, 제가 지난 6년 동안 헌법재판관으로서, 헌법재판소장으로서 주어진 역할과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였는지, 타성과 권위의식에 젖어 헌법재판소에 누를 끼친 것은 아닌지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헌법재판관과 헌법재판소장에 취임하면서, 정치적 중립에 기초하여 재판의 독립을 지키겠다, 우리 사회가 통합될 수 있도록 조화와 화해를 모색하겠다, 어떠한 이유로도 국민의 기본권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재판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높이는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제 스스로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음을, 국민들의 기대에 많이 부족했음을 여러분 앞에서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저의 생각만이 정의롭다고 판단한 나머지 합리적이지 않은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경우도 일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헌법재판소는 1988년 창립된 이후 우리나라에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확고히 하고 국민들의 기본권을 보호하는데 큰 기여를 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국가기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외국의 헌법재판기관으로부터 높은 관심과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음을 실감하였습니다. 금년 8월 선고한 이른바 기후소송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하여 외국 언론 다수가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 결정이라며 긍정적 평가를 담은 보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헌법재판소의 현재 상황이 위기 상황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긍정적인 평가에 안주하여서는 안 되고 변화가 필요한 위기상황에 홀로 힘들게 서 있는 형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업무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높여야 합니다. 저는 헌법재판소장 취임사에서, 업무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방안으로 재판연구인력의 확충 및 적절한 배치, 연구업무의 효율성 제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예산의 확보와 인사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금년 2월 사전심사부를 신설하고 전속부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연구부 조직을 개편하였고, 내년도 연구관의 정원을 증원하는 예산안을 마련하였습니다. 금년 상반기에 다수의 미제사건이 감소하는 가시적 성과가 있었지만, 이러한 효과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업무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건 접수의 경향이나 성격, 관련 통계의 세심한 분류에 기초하여 개선방안의 시행에 따른 성과와 장단점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내년 이후로 계속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하고, 재판의 독립을 이루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법부가 당연히 경계하고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만, 오늘 현재 우리 헌법재판소가 다시 한 번 새겨보아야 할 원칙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권한쟁의심판, 탄핵심판과 같은 유형의 심판사건이 크게 증가하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정치적 성격의 분쟁이 사법부에 많이 제기되는,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나타나면 뒤이어 사법의 정치화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것은 많은 정치학자와 법학자들이 지적하는 바입니다. 물론 저를 포함한 재판관들 모두가 이러한 우려를 잘 알고 있어서 오로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하려고 노력하여 왔고, 앞으로 구성될 재판부에서도 당연히 그러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국민들께서 우려하시는 바가 크고, 사법의 정치화 현상은 결국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여 헌법재판소의 권위가 추락할 것이며, 이는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질서를 해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 헌법재판소 가족 모두는 우리 자신의 마음가짐과 의지를 굳게 하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지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6년 전 이 무렵 헌법재판소의 상징인 백송을 처음 보았을 때 남다른 감회를 느꼈습니다. 6년 후 지금도 백송은 의연하게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도 백송과 같이 우리 사회와 국민을 한결같이 의연하게 지키는 역할을 다 할 것이라 믿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여야 할 사명과 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헌법재판소 가족 여러분!

이제 저는 이곳 헌법재판소와 가족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 그 동안 저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헌법재판소가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지키는 튼튼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10월 17일

헌법재판소장 이 종 석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