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사람은 일본에서 구하고, 기술은 중국에서 베껴야 한답니다.”
어느 대기업 임원이 말했다. 한국이 일본에서 첨단 기술을 배워 오고, 중국을 생산기지로 쓰던 때는 고릿적이다. 새삼 눈길이 가는 건 기업들이 일본 젊은이들에 눈을 돌리는 이유다.
한국보다 대졸자 초임이 낮은데 인재 수준은 높아 인건비의 효율이 좋다는 것이다. 일본 청년들도 일본 기업보다 임금이 높은 한국 기업을 선호한다. K컬처 영향으로 한국에 호감도가 높아진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첨단기술 분야 대기업들도 일본에 R&D 기지를 두고 이공계 석박사급 인력을 찾는 곳이 늘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인도나 베트남에 인공지능(AI) R&D 센터를 마련한 대기업들도 이미 많다.
‘쉬었음’ 청년 50만 명 넘어서
청년 고용의 질 올릴 대책 절실
‘정년연장’ 공약 재검토해야
중국 추격자 신세가 된 한국 기업들이 전 세계에서 인재를 찾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기술 경쟁력도, 고급 일자리도 다 지키지 못하고 있는 2025년 한국의 현 주소 때문이다. 그 와중에 한국 중산층을 배출해온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마저 미국이 빨아 들이고 있다. 2030 또는 그 이후의 세대가 그들의 부모, 조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
당장의 숫자부터 암울하다. 지난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일하는 청년은 줄고 일하는 노년은 늘고 있다. 전체 고용률(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은 63.8%로 1년 전보다 0.3%포인트(p) 올랐는데, 환갑 넘어서도 일하는 노년이 처음으로 700만명을 넘어선 결과였다. 하지만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6.2%로 1년 전보다 0.7%p 떨어졌다. 대학 졸업자 취업률로 범위를 좁혀봐도 한국(64.6%, 2024년 12월 발표)은 일본(98%, 2025년 4월 발표)과 대조적이다.
더 심각한 건 내용이다. 얼마 전 그냥 ‘쉬었다’는 청년층이 50만명을 돌파했다는 발표(2월 고용동향)에 놀란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경기 위축 등으로 기업들이 신입 채용을 줄인 영향이 크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한국은행이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25~34세 청년층만 집중 분석해 보니, 이 연령대의 ‘쉬었음’ 인구가 지난해 초부터 추세적으로 상승세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이다. 특히, 취업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갔다. 이들은 왜 이탈을 결심했을까.
일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 전업으로 삼기 힘들거나, 지위가 불안하고 실직 위험이 큰 일을 계속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데 25~34세 청년층 고용의 질을 따져보니 윗세대(35~59세)보다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은행). 실제 한국고용정보원 설문조사에서 1년 이상 ‘쉬었음’을 경험한 청년의 38.1%는 그 이유를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라고 답했다. ‘고용의 질’이 문제, 즉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단 얘기다.
한때는 이런 ‘일자리 미스매치’를 ‘요즘 애들이 눈만 높아져서 문제’라고 호통치기도 했다. 그러나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뉜 이중구조를 유지한 채 제자리만 지켜온 세대가 할 소리는 아니다. 조선업이 오랜만에 호황이라 일손이 부족하다지만 ‘고위험 저임금’ 일자리로 묶어두고 하청업체를 통해 외국인에게 떠넘긴 지 오래라 한국 청년들에게 남의 나라 얘기나 다름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번 대선 과정에서 청년 일자리 문제로 목소리를 높인 후보는 없었다. 이미 직장 있는 사람들을 위한 주 4.5일제나, 5060세대 관심사인 정년연장만 떠들썩했다. 일자리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경제적·정서적 안전망이다. 청년들을 이렇게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비극과 비용으로 돌아올 게 뻔하다.
청년 일자리를 압박할 정년 연장은 대통령의 공약이더라도 재고해야 한다. 법정 정년을 65세로 늘릴 경우 기업이 대상자 59만 명을 5년 더 고용하는 데 써야할 비용(약 30조2000억원, 한국경제인협회 추산)은 25~29세 청년 90만2000명(평균 임금 279만1000원 적용)을 고용할 수 있는 규모다. 정년연장이 아니더라도 재고용 등으로 살 길을 찾을 수 있는 세대와, 아예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못하는 세대 중 어디에 정책의 무게를 둬야 할까.
경기가 좋아지면 일자리도 늘어날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는 부족하다. 문재인 정부 때처럼 저임금 공공 일자리 확대나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만든 광주형, 군산형, 구미형 일자리 등은 이미 길을 잃었다. 이제라도 청년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신산업이 무엇인지를 찾으려는 민간의 실험과 투자, 정부의 고심이 만날 공간을 열어야 한다. 새 대통령이 1400만 개미들에게 쏟는 에너지 이상을 일자리를 기다리는 청년들에게 쏟는 게 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