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서 ‘여사님’을 붙일 수 없는 이유 [서아람의 변호사 외전]

2025-11-03

재판부의 비공식 자리 예우 호칭

‘호의’일 뿐 권리나 법적 의무 아냐

증인 호칭도 하대 아닌 중립 표현

법정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

체포 방해 혐의 재판에 출석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상당히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바로 특검 측에서 전 영부인 김건희 여사를 언급하면서 ‘김건희 여사’라고 하지 않고, 단순히 ‘당시 영부인이던 김건희’라고 칭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은 “아무리 그만두고 나왔다고 해도 김건희가 뭡니까, 뒤에 여사를 붙이든지 해야지”라고 언성을 높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장기간 체포를 불응하면서 수사기관이 선례에 따라 해오던 여러 종류의 전직 대통령 예우가 사라졌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호칭 문제였습니다. 특검 측은 2차 강제구인 이전까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었으나, 2차 강제구인 직후부터는 공식 호칭을 ‘피의자 윤석열’로 전환했고, 언론 브리핑에서도 동일한 호칭을 사용했으며, 이에 대해 “법적으로 구속된 피의자에 불과한 이상, 특수한 호칭이나 처우는 불필요하다”며 “향후에도 동일하게 대응할 방침”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진행되는 재판 과정에서도 ‘전 대통령’ 호칭 없이 ‘피고인’으로 불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전직 대통령이나 영부인에 대하여 법정이나 수사기관에서 예우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 게 인권 침해에 해당할까요? 답은 ‘전혀 아니다’입니다. 형사소송법, 형사소송규칙, 법원조직법 어디에서도 피고인이나 증인에 대한 별도의 호칭 방법을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즉, ‘피고인’, ‘증인’, ‘참고인’, 그리고 그 외에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는 나이와 성별, 직업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새파랗게 젊은 검사나 변호사가 90살 넘은 증인에게 ‘김갑동씨’라고 부르면 듣는 김갑동씨는 불쾌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증인이 증언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칙적으로 ‘피고인’, ‘피해자’라고 지칭하고, 그 외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대표님’ 등의 호칭을 붙일 수는 있으나, 붙이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은 아닙니다.

몇 년 전 법원에서 제창한 ‘법정언행연구소위원회’에서는 이전에 지적되었던 ‘법정 막말’을 근절하기 위해 판사들에게 올바른 언어 사용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 주었는데, 해당 지침에도 예우 호칭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검사와 변호사, 증인, 피고인에게 적절한 호칭을 사용하고 법정 질서가 흐트러지거나 당사자가 장황한 주장을 하더라도 평정심을 잃거나 짜증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핵심이었습니다.

요즘은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을 국민의 복지와 공익을 증진하기 위한 서비스 제공 주체라고 보기도 합니다. 또한 권위주의 탈피와 인권 존중이 강조되면서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에 소속된 법 집행자들이 법규와는 상관없이 예우 호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가령 피의자나 피고인, 증인을 ‘선생님’, ‘여사님’, ‘대표님’, ‘사장님’, ‘할머님’, ‘할아버님’,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른다든가, ‘김갑동님’이라고 부르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호칭은 보통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합니다. 가령 소환 전화를 할 때, 조사 시작 전 면담하거나 안내할 때, 수사 결과를 통지할 때 등 부차적인 절차에서 이러한 호칭들을 사용하고는 합니다. ‘선생님’, ‘할아버님’ 같은 호칭을 정식 재판, 특히 신문 과정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예를 들어서 재판장이 증인신문 직전까지는 “할아버님, 그쪽에 서시면 됩니다”라고 하다가도, 신문이 시작되고 나면 “증인은”이라고 호칭을 바꾸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는 사람을 ‘범죄자 취급’ 또는 ‘하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 ‘공평의 원칙’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법정이라는 존엄한 공간 앞에서 평등합니다. 법대 앞에서는 그 누구도 그 어떤 형태의 예우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그 어떤 가치나 평가도 들어가 있지 않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호칭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일부 재판장들은 검사나 변호사들에게도 ‘검사님’, ‘변호사님’ 호칭 대신 ‘검사’, ‘변호사’ 호칭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검사나 변호사들이 ‘님’ 자를 붙여달라며 우르르 들고일어나 불평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검사’, ‘변호사’로 부른 재판장이 ‘기수’가 까마득하게 어린 법조계 후배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우 호칭은 그야말로 ‘호의’일 뿐, ‘권리’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원칙이 무너지면 법정은 망가질 수 있습니다. 예전에 브로커와 부정한 돈거래를 한 혐의로 기소된 검찰 고위 간부의 재판에서 공판 검사가 피고인을 ‘피고인’이 아닌 ‘변호사님’이라고 호칭하면서, 동일한 사건으로 기소된 전직 경찰 간부에게는 ‘피고인’이라고 호칭하여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만일 검사나 판사가 경제범죄로 기소된 40대 대기업 회장은 ‘회장님’이라고 깍듯하게 부르면서, 무전취식으로 기소된 80대 아파트 경비원에게는 ‘피고인’이라고 부른다면, 그걸 보는 사람들은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우 호칭이 올바르게 사용될 경우, 이는 사건 당사자의 인권에 대한 존중으로 매우 바람직하게 비추어질 수 있습니다. 1964년 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었다가 중상해죄로 유죄 판결을 선고받고, 61년 만에 재심을 받은 이른바 ‘혀 절단 정당방위’ 사건에서 검찰은 매우 이례적인 ‘무죄 구형’을 하면서, 피고인 지위에 있던 최말자 여사를 향해 ‘최말자님’이라고 정중히 지칭하였습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또 다른 아픔과 상처를 준 것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제스처로 받아들여지면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예외일 뿐, 원칙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법정은 ‘계급장’을 따지는 공간이 아닙니다. 법정에서 의미 있는 언어는 오직 법률 조항뿐입니다.

서아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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