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근로자 본지 인터뷰서 주장
“처음엔 B-1 비자 소지자들 ‘통과’
다시 들이닥쳐 끌어내 손 묶어”
“변기 4개 72인실서 생리현상 참고 버텨… ‘노스코리아’ 조롱도”
체포 당시 ‘미란다 원칙’ 고지 없어
설명 없이 서류 빈칸 채워라 지시
“다 쓰면 풀려나는 줄 알고 제출해”
ICE요원도 “체포이유 모른다” 답변
곰팡이 침대·공개된 형태의 화장실
구금 근로자 인권 침해 피해도 심각
미국 조지아주 구금시설에 구금됐던 한국인 316명을 포함한 330명이 가까스로 전세기를 타고 한국 땅을 다시 밟은 가운데 구금 근로자들 사이에선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단기상용(B-1)’ 비자 소지자까지 체포한 게 “200명으로 정해진 목표 인원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ICE 요원이 체포 당시 B-1 비자 소지 인원들에게 ‘신분 확인 완료’를 통보했다가 체포 인원이 부족한 사실을 알고 얼마 안 가 그 말을 뒤집고 체포 절차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B-1 비자는 미 국무부 외교업무매뉴얼(FAM)에 ‘해외에서 제작·구매한 장비를 미국 현장에서 설치·시운전하거나 현지 직원 대상으로 교육·훈련을 수행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구금 사태 이후 한·미 간 해석 논란이 불거진 배경이다.

지난 4일 ICE로부터 체포돼 조지아주 포크스턴 구금시설에 구금됐다 12일 귀국한 근로자 A씨 가족은 14일 세계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ICE의 대규모 한국인 체포가 200명 체포 (인원) 목표를 채워야 하는 작전이었다”며 “(도착한 현장에) 남미 직원이 몇명 있지도 않고 ESTA(전자여행허가) 비자 직원도 채 200명이 안 되니까 그냥 모든 직원을 끌고 가서 체포 인원을 채웠다”고 주장했다.
ICE가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사무실에서 직원들의 B-1 비자 소지 사실을 확인한 뒤 처음엔 철수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A씨 가족은 “사무실에서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ICE가 갑자기 들어왔다. 처음에는 여권과 신분증을 확인하고, 여기 사무실 인원은 모두 B-1 비자를 소지하고 있어 ‘신분 확인이 됐다’고 했다”며 “그러고 ICE가 사무실을 나갔는데 몇 분 후 밖이 시끄럽더니 다른 ICE 요원들이 들어와서 ‘겟 아웃(Get out)’이라고 소리쳤다”고 전했다.
당시 직원들은 절차를 거쳐 합법 신분인 게 확인됐으니 구금시설에 데리고 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A씨 가족은 “(예상과 달리 ICE가) 모두 한 줄로 서게 하더니 손을 묶었다”고 전했다.
다른 B-1 비자 소지 근로자는 구금 이후 진행한 ICE 인터뷰에서 B-1 비자의 합법성을 따지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B-1 비자 소지 근로자 B씨의 ‘구금일지’에 따르면 B씨는 질문에 답하다가 인터뷰 말미에 “나는 적법한 B-1 절차로 들어왔고 그 목적에 맞는 행위를 했는데 왜 잡혀 온 것이냐”고 묻자 ICE 요원으로부터 “나도 모르겠고 위에 사람들은 불법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B-1 비자를 소지한 근로자 중 일부는 이민법 위반 소지가 없는 만큼 ‘자진출국’을 택하지 않고 잔류해 재판까지 갈 뜻도 있었지만, 외교당국이 ‘재판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설득해 자진출국을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A씨 가족은 “(외교부·총영사관이) 자진출국을 하되 자진출국 서류에 서명하는 게 아니라, 아예 가지고 있는 비자를 없애는 방법으로 자진출국하도록 안내했다”며 “구금된 인원은 한국 입국과 동시에 비자가 없어진 것이다. 미국 입·출국 기록 자체가 없고 구금 기록 자체도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B씨 또한 일지를 통해 총영사관 측에서 “다들 집에 먼저 돌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사인하라는 것에 무조건 사인하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B-1 비자로 들어온 게 왜 불법인지에 대해 파악이 안 된 것 같아 화가 났다”며 “자발적 출국 서류에 사인한 후에 우리를 무조건 보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느껴져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고 분개했다.
구금된 한국인 317명 중 미국 잔류를 택한 이는 1명이다. 그는 영주권 신청자 신분으로 구금 상태로 법적 절차를 진행할 예정으로 알려졌는데, A씨 가족은 “주재원(L-1) 비자를 가진 분으로 안다”고 했다.
7일간 구금된 근로자들은 ‘인권 침해’를 몸으로 느꼈다고 한목소리로 전했다.
A씨 측은 “현지 구금시설엔 통역이 없어서 영어를 잘하는 직원들이 소통을 도왔다”고 했다. B씨는 ‘구금일지’에서 체포 당시 ICE 요원들이 외국인 체포영장(warrant arrest for alien) 관련 서류를 나눠 주며 설명도 없이 빈칸을 채우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미란다 원칙’ 고지도 없었다고 한다. B씨는 “근로자들은 이 종이를 작성하면 풀려나는 줄 알고 종이를 제출했다”며 서류 제출 후 손목에는 빨간팔찌를 채웠다고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 B씨는 9시간 넘게 대기하다 손목에 케이블타이가 바짝 채워진 채 호송차에 탑승했다. 다른 구금 근로자인 C(50)씨도 체포 당시 상황에 대해 “무장한 인원 50∼60명이 (건설 현장에) 들이닥쳤다”면서 “수백명이 오전 9시30분쯤부터 밥도 먹지 못한 상태로 새벽까지 공장 안에서 대기하다 구금시설로 이송됐다”고 전했다.
근로자들은 구금 초반에 72인실 임시시설에 몰아 넣어졌다고 한다. 1번부터 5번 방까지 있었고 구금자들은 방을 옮겨 다녔다. 늘어선 이층침대와 함께 공용으로 쓰는 변기 4개, 소변기 2개가 있었다.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 참고 버텼다. 변기 옆에는 겨우 하체를 덮는 천만 있었다고 한다. B씨는 일지에 “생필품, 수건도 지급 못 받은 채 잠이 들었다”며 ”지인이 수건을 하나 줘서 수건을 덮고 잠이 들었다”고 적었다.

구금 3일차에 ICE 인터뷰가 시작됐다.
ICE 요원 2명이 B씨에게 한 첫 질문은 ‘무슨 일을 했느냐’였다고 한다. B씨는 업무 미팅 및 교육을 위한 출장을 왔다고 답변했다. 이후 별다른 질문이 없던 요원은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남한)인지를 물었고 B씨는 맞는다고 답변했다. 이를 들은 직원들은 웃는 표정으로 대화하며 ‘노스 코리아’(North Korea·북한), ‘로켓맨’(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 붙인 별명) 등을 언급했다. B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나를 가지고 농담·장난을 하는 것 같아 열 받았지만, 혹여나 서류에서 무엇인가 잘못될까 봐 참았다”고 일지에 기록했다.

우여곡절 끝에 12일 귀국한 근로자들은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족들을 만나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아들에게서 수갑과 포승줄을 찬 사진을 받았다는 중년 여성 D씨는 지난 일주일에 대해 “생지옥이었다”며 “언론을 통해서만 상황을 알 수 있어 트럼프 입만 바라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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