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끝났다

2025-05-07

한국은 끝났다 (South Korea is over). 전 세계 구독자 2380만명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유튜브 채널에서 올린 영상의 제목이다. 태극기가 녹아서 흘러내리는 섬뜩한 그래픽을 섬네일로 걸고 한국의 초저출산이 경제·사회·문화·군사 모든 면에서 한국을 붕괴시킬 것이며 이미 그 어떤 것으로도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15분 안에 담았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 종말 예언이다.

망국 수준에 이른 초저출산 심각성

국지적 정책보다 구조적 개혁 시급

사람을 갈아넣는 성장의 한계 뚜렷

정치인보다 비전 갖춘 지도자 필요

초저출산 상황을 가져온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이제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간 가장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해 온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출산율만을 국지적으로 공략하는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사회문화적이고 구조적인 대혁신이 필요함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수도권 과밀, 비대한 사교육시장, 공동체 파괴 수준에 이르는 극심한 경쟁주의, 경직된 노동시장 같은 구조적 원인들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 익숙해져서 오히려 무감각해진 지경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면서도 여기까지 와버렸다는 자체가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한국은 끝났다’ 영상에 달린 한국인의 댓글을 보자면 일을 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평범한 생활이 가능하지 않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성역할에 따라 일과 가정을 나누는 차별적인 인식은 이제 과거와는 달리 크게 개선되고 있다. 지난 3월 국민통합위원회가 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결혼한 남성도 가족 상황에 따라 일을 줄일 수 있다”에 대해 남성의 58.2%(여성은 63.4%)가 동의하고 “가족을 돌보기 위해 남성들도 시간을 내야 한다”에 대해서도 남성 68.8%(여성은 83.9%)의 동의율을 보였다. 여성의 경력을 통한 자아실현을 당연시하는 만큼 가정의 영역에서 남성도 함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인식 개선이 이루어진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조건들이 받혀주지 않는다면 출산율의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2023년도 기준으로 저출생 관련 예산은 총 23.5조원이 지출됐는데 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20.5조는 양육비 지원에 쓰였다고 한다. 양육비 지원은 출산장려금이나 아동수당 등 주로 직접적인 현금성 지원이다. 한편 육아기 단축근무 지원이나 육아휴직, 직장 어린이집 등을 지원하는 일-가정 양립 예산은 양육비 지원에 비해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다. 현금성 지원을 줄이더라도 일-가정 양립 사업 투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과감한 예산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이뿐 아니라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의 조정을 통해 중복성 사업을 정리하고 사각지대를 없애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일-가정 양립은 인식이 변하고 정책적 지원과 제도가 있으면 되는 것일까?

정작 문제의 밑바닥에는 사람을 갈아 넣어 성과를 내고자 하는,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조직문화가 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는 마치 늪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것처럼, 열심히 살면 살수록 그 개인은 오히려 피폐해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압축적 성장이 가져온 최대의 부작용은 개인이든, 제도든, 조직이든 모두 끝없는 팽창과 성장을 향해 사람을 갈아 넣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직종에 따라 자조적으로 만들어진 표현들이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문제들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예컨대 청년들의 ‘열정 페이’나 간호사들의 ‘태움’과 같이 구글 번역기를 열심히 돌려도 외국어로는 매끄럽게 번역조차 되지 않는 말이 그것이다. 장시간노동이나 초과근무가 당연시되고 인프라나 자원투입의 부족을 장시간 노동으로 때려 넣는 것이 성실성, 근면, 책임감과 같은 역량으로 포장되기 일쑤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쓰려면 상사의 눈치를 보게 되고, 단축근무를 하게 되면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나아가서 교육이든, 기업의 성과든 스포츠나 한류 문화산업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남김없이 갈아 넣어 성장과 번영을 추구하는 기본모델을 유지하는 한 일-가정 양립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익숙한 행동패턴을 바꾸어야 하는 대전환은 마치 얼기설기 서로 맞물려 돌아가던 톱니바퀴를 멈추는 것처럼 한국 사회 곳곳에 삐걱거림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무조건적인 성장과 팽창을 추구하는 관성적 목표를 내려놓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터져 나올 불만과 갈등, 혼란을 생각하면, 시민이 감내해야 할 고통을 설득할 수 있는 도덕적 권위와 장기 비전을 갖춘 정치 지도자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여론의 풍향을 민감하게 읽어내고 상황 판단과 세력 계산에 능하다고 해서 누구나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능한 정치인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정치지도자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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