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의 극진한 ‘아부 외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 부과한 ‘상호관세 폭탄’은 24%였다. 이는 일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주식시장이 바로 직격탄을 맞았다. 3일 트럼프의 상호관세가 발표되자 닛케이 평균 주가는 거래 시작 10분 만에 올해 최대 하락 폭인 1600엔 이상 급락하며 3만5000엔(약 34만8500원) 선이 무너졌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 관세폭탄을 피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이시바 총리는 2월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유세 중 총격을 당한 뒤에도 일어나 주먹을 치켜든 사진을 언급하며 “대통령께선 그 순간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확신을 하셨을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일본에서 제작해 간 무사의 황금 투구도 트럼프에게 안겼다.
회담에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통역을 맡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운 다카오 스나오(高尾直) 외무성 일미지위협정실장을 다시 통역으로 기용하여,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 구축에 총력을 기울였다.

지난달 29일엔 이오지마(硫黄島)에서 열린 미·일 합동 위령식에 이시바 총리가 직접 참석했다. 현직 일본 총리가 이오지마를 방문한 건 12년 만이며, 양국 국방 장관이 함께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해 미·일 동맹의 굳건함을 적극적으로 부각하려 했다.
그러나 일본에 부과된 24% 관세는 EU의 20%보다도 높은 수준이었다. 노무라 종합연구소의 기우치 다카히데(木内登英)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사전에 예상된 최악의 시나리오에 가까운 수준”이라며 “일본의 GDP는 1년 동안 0.59%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이 미국산 쌀에 70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일본 정부는 숫자 오류를 지적했으나 수정되지 않았다”며 그동안의 미·일 간 협의가 실패로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자동차에 대한 25%의 추가 관세도 적용됐다. 2024년 일본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약 6조엔(약 59조원)에 달한다. 자동차 산업 종사자만 약 560만에 이른다.
이시바 총리는 3일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아쉽다. 내가 직접 트럼프 대통령과 이야기하는게 맞다면, 언제든 적절한 시기에 그렇게 하겠다”며 직접 담판을 짓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무토 요지(武藤容治) 경제산업상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관세 발표 전인 3일 새벽(일본시간), 미국의 러트닉 상무장관과 온라인 회담을 했다”며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조치는 극히 유감스럽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그는 또 “미국의 관세 조치가 일본 기업의 대미 투자 여력을 저하시켜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임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며 일본에 대한 관세 적용 제외를 미국에 재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보복 관세 부과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보복전이 양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자칫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할 경우 방위비 추가 증액 등의 요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토 경산상은 상호 관세에 대해 “WTO 협정과의 정합성에 심각한 우려가 있다”면서도 보복 관세 발동 여부에 대해선 “솔직히 말해 어려운 문제다. 무엇이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냉정하게 판단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원래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음에도, 이시바 총리가 총리 관저에 통상 정책 전문가를 배치하지 않아 대책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시바 총리의 전문 분야가 방위 정책에 국한되어 있고, 당내 인맥도 부족한 점이 한계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시바 총리는 최근 초선 의원들에게 10만 엔 상품권을 돌린 문제로 지지율이 떨어진 상태다. 이번 트럼프 관세 폭탄이 설상가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일본에 대한 관세부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언급했다. 트럼프는 “신조는 훌륭한 남자였다. 그는 내가 ‘무역에 관해 해야 할 일 있다’고 얘기했더니 즉각 이해했고, 우리는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칭찬하며 이시바 총리의 체면을 깎아내렸다. 상품권 스캔들과 이번 미국의 관세부과로 자민당 내 우파 세력의 이시바 총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듯 뚜렷한 대응 카드가 없는 일본 정부는 일본에 대한 적용 제외를 지속해서 요청할 방침이다. 우선 3일부터 벨기에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외무장관 회의에서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외상이 미국의 루비오 국무장관과 접촉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와의 공동 대응책도 모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