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모비스(012330) 램프사업부 매각을 추진하는 건 급증하는 대내외 불확실성 속 경영 효율화 작업 속도를 높이는 행보로 풀이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발 관세 부과 여파에 대규모 미국 신규 투자 비용이 발생했고, 기존 미래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등 효율적 자원 배분이 필요해졌다. 현대차(005380)그룹은 지난해부터 계열사 경쟁력 진단, 핵심·비핵심 사업 분류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대제철(004020)의 단조 자회사 현대IFC 매각, 현대위아(011210)의 공작기계 사업부 매각 등이 모두 이 같은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현대차그룹은 210억 달러(약 30조 원)에 달하는 미국 투자와 미래 모빌리티 기업 전환에 한층 속도를 낼 전망이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특명 아래 계열사 사업재편을 진두지휘하는 건 한석원 기획조정실장(부사장)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한 실장 산하에 투자 전문 인력들도 현재 신규 투자 검토 업무는 2순위로 미루고 계열사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부터 주요 컨설팅 업체들을 통해 계열사 사업 경쟁력 진단 작업을 진행해왔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 램프사업부 매각 추진도 이 같은 맥락에서 결정됐다. 램프사업부는 안정적 수익을 내면서도 미래 성장성까지 갖춘 알짜 사업부로 꼽힌다. 실제 램프사업부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해외 수주 1등 공신이기도 하다. 2021년에는 램프사업부 홀로 1조 원의 수주고를 올려 현대차그룹 전체(3조 원)의 3분의 1을 홀로 담당했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전세계 자동차 램프 시장은 지난해 396억 달러(약 54조 원)에서 2030년 673억 달러(약 92조 원)으로 두 배 가까이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6월 램프사업부가 섀시안전 사업부에서 떨어져 나와 별도 사업부(BU·Business Unit)로 분리, 격상될 당시만 해도 추가 성장을 위한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현대모비스에는 램프 사업부 외에 △전동화·모듈 △섀시안전 △전장 △서비스부품 등 총 5개 사업부가 있다. 당시 램프사업부의 별도 사업부 분리 이유로는 관련 시장의 급속한 성장과 섀시안전 제품과 램프 제품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 꼽혔다.
현대모비스는 첨단 자동차램프 수주를 여러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부터 확보해 세계적으로 높은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주요 고객사로는 미국 스텔란티스(북미 주요 차종의 헤드·리어램프, 유럽 차종의 헤드램프), 일본 미쯔비시(첨단 LED 헤드·리어램프), 일본 스바루·마쯔다(리어램프), 중국 광치미쯔비시(헤드램프) 등이 있다.
램프사업부는 국내 두 곳, 해외 한 곳의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2008년 경북 김천에 준공된 김천 램프공장과 같은 해 지어진 전동화 부품 생산 공장인 진천공장이 있다. 2017년에는 체코 모슈노프시에 1400억 원을 투자해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각 75만 대씩 총 15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체코 램프공장을 새로 지었다.
인수 후보로는 SI들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현대차그룹의 복잡한 노사 관계 문제를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풀어내기엔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장 사업에 신규로 진출하길 원하는 기업과 현대차그룹과 시너지를 낼 만한 기업 다수가 눈여겨 보고 있다는 전언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계열사 내 비핵심 사업 정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 관세 불확실성이 커지며 유동성을 확보해 미국 현지 공장 신설과 신사업 투자에 집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4년 동안 미국에 210억 달러(약 30조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자동차, 부품·물류·철강, 미래산업 등에 관련 재원이 쓰인다.
계열사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제철은 조선용 단조 제품과 단강 등을 제조하는 현대IFC 매각을 추진 중으로 동국제강 등이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힌다. 예상 매각가는 약 2500억 원이다. 현대위아는 공작기계 사업부를 스맥과 릴슨PE 컨소시엄에 3400억 원에 매각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6월 말까지 잔금 납입 및 주식 이전을 마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