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라운드의 기적’ 성영탁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2025-06-25

1라운드 1순위부터 95명이 차례로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는 동안 부산고 성영탁의 이름은 없었다. 10라운드 6순위 전체 96번, 막차의 막차로 KIA가 그를 지명했다. 2024 KBO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도 초대받지 못했던 성영탁이 프로 무대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간신히 프로 지명은 받았지만 성영탁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상위 라운드 신인도 프로 세계에서 고전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10라운드 신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그런 성영탁이 입단 2년 차인 올해 마법 같은 한 달을 보냈다. 지난달 20일 1군 첫 등록 당일 KT전에 등판해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첫 이닝 안타와 볼넷을 하나씩 내줬지만 침착하게 위기를 넘겼다. 다음 이닝은 삼자범퇴로 처리했다.

성영탁의 무실점 행진은 계속됐다. 지난 21일 SSG전 1.2이닝 무실점까지 13경기 17.1이닝을 던지는 동안 평균자책 ‘0’을 지켰다. 조계현이 보유하고 있던 데뷔 후 연속 이닝 무실점(13.2이닝) 구단 기록을 갈아치웠다. 팀 내 부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10라운드 2년 차 신인의 깜짝 활약은 기록 그 이상으로 공헌도가 컸다.

성영탁은 부산고 3학년 때 15경기 56이닝 동안 평균자책 1.45를 기록하며 에이스로 활약했다. 하지만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시속 130㎞대 느린 구속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KIA는 그러나 다른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다. 안정된 제구를 갖췄고, 선발로 자주 등판한 덕에 그 나이 또래들과 비교해 마운드 위 경험도 풍부한 만큼 구속만 올린다면 프로 무대에도 통할 수 있다고 봤다. 구속을 올릴 수 있을 거라는 근거는 성영탁 본인에게서 찾았다. 워낙 성실하다는 칭찬을 두루 들었고, 그런 선수라면 기대할 만하겠다고 판단했다.

프로 입단 후 성영탁의 구속은 기대대로 올랐다. 전략적으로 투심 패스트볼을 집중 연마했는데 구속이 140㎞를 넘었다. 포심 구속이 130㎞대였는데 오히려 투심이 더 빠르게 나왔다.

투심을 장착하면서 성영탁은 구속은 물론이고 ‘피칭 터널’ 효과까지 누리게 됐다. 같은 폼에서 나오는 투심과 커터가 홈 플레이트 앞에서 반대 갈래로 휘어 들어가면서 상대 타자들의 대처를 어렵게 만들었다. 성영탁이 1군에 올라오자마자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투심과 커터가 제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성영탁의 연속이닝 무실점 행진은 17.1이닝에서 막을 내렸다. 24일 고척 키움전 6-6 동점이던 6회말, 1사 1·2루 위기에 등판했는데 임지열에게 3점 홈런을 맞았다. KBO리그 기존 기록인 키움 김인범의 19.2이닝까지 아웃 카운트 4개를 남기고 첫 실점을 했다. 경기는 그대로 6-9 KIA의 패배로 끝났다.

홈런을 맞았고, 실점했지만 성영탁은 좋은 공을 던졌다. 시속 134㎞ 커터가 낮은 쪽으로 파고 들어갔는데, 상대가 워낙 잘 때렸다. 홈런을 친 임지열도 경기 후 “좋은 공을 던졌는데, 제가 좀 더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성영탁의 공을 칭찬했다.

성영탁의 본격적인 프로 생활은 이제 시작이다. 첫 실점 후 얼마나 빠르게 다시 안정감을 찾느냐가 중요하다. 성영탁의 기록이 깨지기 전, 이범호 KIA 감독은 “언젠가는 연달아 실점할 수도 있고, 또 몇 경기 연속으로 실점을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은 분명히 올 테지만, 그래도 기죽지 않게 1군에서도 성장할 수 있도록 챙겨야 할 것 같다. 아직 어린 선수고,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영탁도 꿋꿋하다. 기록 무산 후 그는 “상대 타자가 잘 쳤고 나 또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홀가분하기도 하다”면서 “이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하던대로 마운드에서 씩씩한 모습을 보이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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