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입해 총격전 끝에 붙잡히고, 평양 억류됐다 생환하고...진짜 '간첩'들 파란만장 실화[BOOK]

2025-04-04

남북 스파이 전쟁

고대훈·김민상 지음

중앙북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간첩’을 입에 올리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중국 간첩이 한국의 선거에 관여했다”는 주장부터 “사상 최악의 영남권 산불은 중국 또는 간첩 소행”이라는 음모론까지 실체 없는 간첩 담론이 판친다.

반면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았지만 현재 재판중인 간첩 혐의 사건들이 있다. 제주 ‘ㅎㄱㅎ’(‘한길회’의 초성으로 추정), 창원 ‘자주통일민중전위’, 청주 ‘자주통일충북동지회’ 등이다. 가짜와 진짜 간첩 혐의를 구분해 실체를 밝히는 노력이 중요해진 이유다.

『남북 스파이 전쟁』은 그런 노력에 여러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남과 북에서 양성한 두 스파이를 추적해, 분단이 지속되는 한 실존적 문제일 수밖에 없는 남북 간첩전쟁의 진정한 속살을 보여준다.

남파간첩 김동식(63)과 대북공작관 정구왕(66)은 각각 남한의 체제 전복을 꾀하고, 북한의 붕괴를 도모하며 하루하루 생사의 줄타기를 탔다. 이들의 파란만장한 발자취와 절절한 육성을 담은 건 이 책이 지닌 큰 미덕이다. 각각 37년, 17년간 일간지 기자로 일하며 대형 사건을 취재해 온 저자들은 간첩 잡는 수사관 등 50여 명을 만나 간첩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발굴한 뒤 두 스파이의 인생 역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김동식은 28세에 북한에서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던 인물이다. 1990년대 서울에 잠입해 지하당을 구축하고 여성 거물 고정간첩 이선실을 북한으로 복귀시킨 공적을 인정받았다. 김일성은 “지난 40~50년보다 더 큰일을 했다”고 치하했다고 한다.

그러나 35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한국에서 간첩 잡는 일을 돕는 전문가로 일한다. 두 번째 남파 때인 1995년 이인영·함운경·우상호 등 유명 운동권 인사와 고은 시인을 포섭하려다 실패한 후, 총격전 끝에 붙잡혀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정구왕은 정보사령부 중령 출신이다. 1998년 중국 단둥에서 블랙 공작원으로 활동하던 중 북한에 납치돼 평양에 220일간 감금됐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이중스파이를 자처하며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그의 이름 이니셜을 따 ‘CKW 사건’으로 알려진 그의 탈출기는 정보 세계의 치부가 담겨 이제껏 금기로 통했으나 이 책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 책의 백미는 스파이라는 가면 뒤에 있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김동식이 전하는 ‘맨땅에 헤딩’식 포섭 방식은 의외의 허술함과 동시에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유효할 첩보전의 본질을 보여줘 흥미롭다. 정구왕이 귀환 이후 한국에서 받은 대우는 가혹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블랙 요원으로 남지 못한 미안함을 동료 공작관들에게 전한다.

할머니 간첩 스토리, 북한이 남파간첩들에게 여성을 대할 때 소련의 전설적인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처럼 하라고 교육하는 이유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이들의 증언은 우리가 모르던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최근 정국으로 간첩에 관심이 많아진 이들이나, “요즘 간첩이 어딨냐”고 말하던 이들 모두에게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재미를 선사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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