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업계가 이번 관세 전쟁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마지막 골든타임으로 여기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촉구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와 팹리스(설계전문) 회사들은 이 같은 취지를 담은 입장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했다. 반도체 소재업체의 한 고위관계자는 “상황만 보면 위기가 분명하지만 기회가 많다” 면서 “정부가 절박함을 가지고 반도체 인력부터 설계, 생산, 후공정에 이르는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첨단 공정에 자원을 투입해 후발 주자들과 격차를 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반도체에 대한 품목 관세 도입을 예고하며 산업 전반의 위기감이 높은 와중에도 업계가 희망 회로를 돌리는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최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간한 ‘반도체 기술 수준 심층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 등 반도체 주요 기초기술 역량에서 모두 중국이 한국을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한국이 우위에 있는 분야는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기술과 반도체·첨단패키징기술 등에 그쳤다. 중국은 그간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내수 시장을 기반 삼아 반도체 사업 역량을 키워온 것이다.
반도체업계는 미중간 격화하는 무역 전쟁이 기존 양상과는 달리 중국에 상당한 충격을 주면서 ‘반도체 굴기’에 족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상호관세를 석달간 유예하면서 중국만 제외했듯 강력한 대중 견제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 이라며 “대규모 국가 부채와 내수 침체로 중국의 대응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반도체 생태계 발전 속도는 늦춰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반도체가 중국에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며 다시 앞서나갈 마지막 기회라는 게 업계 전반의 공통된 인식이다.
반도체업계는 첨단 제조 공정 관련 생태계 전반의 기초 체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팹리스와 후공정 등 AI칩 생태계 분야는 고급 인재 확보와 인프라 확충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같은 대형 생산 업체는 세제와 금융 지원을 통해 국가 간 경쟁에서 밀리지 않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