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반도체업계가 수입 반도체의 원산지를 웨이퍼 제조국이 어딘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미국과의 관세 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내린 결정이다.
1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반도체산업협회(CSIA)는 지난 11일 소셜미디어 위챗을 통해 반도체 원산지 기준에 대한 공지를 올렸다. CSIA는 공지에서 “패키징 공정을 거쳤든 거치지 않았든 모든 집적회로 제품의 수입통관 시 원산지는 웨이퍼 제조 공장 위치를 기준으로 신고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미국에 맞서는 중국
고도로 전문화·다국가화 돼 있는 반도체 공급망 특성상 그동안 업계에서는 반도체 수입 시 관세를 적용하는 원산지 기준이 불분명했다. 미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는 주로 최종 생산지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해왔다. 미국 등 공장에서 웨이퍼를 생산한 후 동남아로 옮겨와 패키징을 하면 최종생산지는 동남아로 간주했다.
반도체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고는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 사이 무관세 적용을 원칙으로 하기에, 중국의 이번 조치는 미국에 제조공장을 둔 기업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에 웨이퍼 제조 공장을 둔 기업을 골라 고관세를 부과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지난 12일부터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84%에서 125%로 인상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인텔과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글로벌파운드리,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 등이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결국 중국 시장에서 팔 반도체는 미국 공장에서 만들지 말라는 의미”라며 “반도체 시장에서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의 소비 시장을 무기로 미국을 공격한 셈”이라고 말했다. SCMP는 반도체 시장조사 업체 ‘IC와이즈’를 인용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미국을 다시 아웃소싱하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파운드리 성장하나
SCMP는 이 조치로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가 성장의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내 파운드리에 제조를 위탁하려는 물량 일부를 중국 기업이 흡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협회의 공지가 나온 후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중신궈지)는 전날 10일 홍콩 증시에서 주가가 5.9% 상승했고 화훙반도체는 14% 급등했다.
중국의 이러한 반격이 실제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퀄컴·AMD 등 미국기업이 대만 업체에 제조 아웃소싱하는 경우에는 대만으로 원산지가 분류돼 관세 영향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의 반도체 리서치 책임자 허후이는 지난 11일 웨비나에서 중국이 수입하는 칩 대부분이 미국에서 직접적으로 제조·출하되지 않기 때문에 즉각적인 관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