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중순 전북특별자치도는 ‘2025년 전북특별자치도 올해의 건배주’로 4종을 선정했다고 발표하였다. 전북도는 건배주로 탁주, 약․청주, 과실주, 증류주 4개 부문에서 선정했다. 2024년에 이어 올해에도 건배주 선정은 참 잘 한 일이다. 선정된 건배주는 모주, 약주, 머루와인, 증류주 4종이었다. 건배주는 전북도가 주관하는 다양한 행사에서 축하 기념하는 의미에서 건배하는 술을 말한다. 전북도가 좀 더 심사숙고하여 선정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술(酒)은 발효주와 증류주 두 종류 밖에 없다. 이 분류는 전 세계적인 기준으로 원칙이다. 발효주(醱酵酒)는 술의 재료를 숙성 발효시키는 술이며, 증류주(蒸溜酒)는 숙성된 발효물질을 소줏고리에 넣고 불을 때어 생기는 땀방울 술, 즉 소주(燒酒)를 말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분류 기준에도 없는 희석식(稀釋式) 술을 마시고 있다. 희석식 술은 막걸리(탁주)와 희석식 소주이다. 탁주는 희석식 막걸리를 말한다. 희석식 술은 원액에 물을 넣어 희석시켜 만드는 술을 말한다. 막걸리의 원액은 모로미(もろみ)이며, 희석식소주의 원액은 주정(酒精:ethanol)이다. 탁주는 모로미에 물을 희석하여 만드는 탁한 술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막걸리는 쌀과 누룩을 섞어 만들어진 술독의 발효물질이 숙성되면 용수를 박고 처음으로 떠내는 술이 청주(淸酒)다. 청주를 떠내고 난 술지게미를 체에 넣고 물을 부어 걸러낸 술이 막걸리이다. 술지게미는 청주를 걸으고 난 술찌꺼기를 말한다. 그 술찌꺼기에 물을 부어서 막 걸러낸 술이 막걸리, 탁한 술이라 탁주(濁酒)다.
청주는 쌀술 본연의 향과 맛이 살아있는 맑은 술이지만, 탁주는 쌀술 본연의 맛이 사라진 탁한 술이다. 청주는 제삿술로 쓰거나 집안의 어른들이 마시고, 탁주는 농삿일하는 농부, 머슴들이 마셨다. 그래서 탁주를 농주(農酒)로 불렸다. 조선후기 풍속화에 농부들에게 새참나갈 때 아예 술독을 지게에 지고 가는 모습이 있다. 술지게미를 걸러 막걸리를 만든 다음에 남은 술찌꺼기를 버리기 아까우니 어머니가 술찌꺼기를 가마솥에 넣고 사카린을 넣어 끓여낸 술이 단술이다. 어머니가 끓여낸 단술을 모주(母酒)라고 불러왔다. 모주를 끓여내고 난 술찌꺼기는 돼지먹이로 사용하였다. 쌀술의 술찌꺼기 재활용은 한국 어머니들의 지혜였다. 등급을 매긴다면 일청주 이탁주 삼모주 사사료로 매길 수 있다. 모주는 분명 탁주도 술도 아닌 음료수에 가깝다. 그런데 이번 2025년 탁주 부문의 모주 선정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왜 갑자기 전주에서 모주가 상업적 바람을 탔는지 알 수 없지만, 막걸리에 몇 가지의 한약재를 넣고 끓여낸 모주를 전북도의 건배주 선정은 잘못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전주 모주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인목대비의 대비모주에서 모주가 만들어졌다는 소설같은 이야기를 인용한 모주를 공신력있는 행정기관에서 건배주로 선정한 것은 가당찮은 일이다. 약․청주 용어도 마찬가지다. 약주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게 청주 이름을 빼앗긴 서러운 용어로서 써서는 안되지만, 현행 주세법에 명시되었기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하루빨리 약주 대신 청주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 요즘 청주와 탁주를 분리하지 않고 혼합형 탁주를 만드는 주조방식도 문제다. 동아시아 쌀술(rice wine)문화권에서는 청주보다 탁주를 선호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한국 술문화의 정체성을 바로 잡아야 한다.
송화섭 전 중앙대 교수·사단법인 호남문화콘텐츠연구원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특별자치도 #건배주 #한국 술문화 #정체성
기고 gigo@jjan.kr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