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지 별안간 없어지는 일 빈번”…직원 마른걸레 짜듯 일 시켜
MBK의 차입매수 태생적 한계 탓…8년 사이 직원 5000명 줄기도

[주간경향] 3월 22일 오후 3시 경기 북수원 홈플러스점. 식품코너가 있는 지상 2층은 주말을 맞아 마트에 온 사람들로 분주했다. 주차장도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물건을 정리하는 직원도, 카트를 정리하는 아르바이트생도 자신이 맡은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는 그런 주말과 같았다. 일하는 사람들의 속내만 빼고 말이다. 홈플러스 건물에 입점한 안경가게 사장 강경모씨는 말했다.
“인근에서 오늘 프로야구 개막 경기가 있어서 바빠 보이는 거지, 최근 오는 손님들은 상품권을 소진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홈플러스가 지난 3월 4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개시한 지 약 한 달이 됐다. ‘선제적 구조조정’이란 명목하에 법원에 자금 부족 상태를 스스로 알리고 채무를 탕감하거나 조정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홈플러스는 6월 3일까지 회생계획안을 제출한다.
홈플러스에 빚이 있는 모든 채권자가 황급히 모였다. 이들 중에는 담보채권(신탁) 약 1조2000억원의 메리츠금융그룹(화재·증권·캐피털), 약 1100억원을 빌려준 은행권뿐만 아니라 지난 1월 거래대금을 정산받지 못한 이불가게 사장, 임대료를 받지 못해 발을 구르는 매장 건물 임대인 등도 있다. 언제 폐점으로 정리해고에 놓일지 모르는 홈플러스 정규직원들은 향후 임금 채권자가 될 수 있다. 채권자 다수는 말한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망하도록 방치했고, 부도는 시간문제라고.
MBK가 영국 테스코(TESCO)로부터 홈플러스 지분 100%를 인수한 2015년은 돌이켜보면 ‘악연’의 시작이었다. 당시 거래와 관련해 확인된 사실만 나열하자면 이렇다. ①MBK는 2015년 9월 홈플러스를 6조원을 투자해 인수했다. ②그중 3조2000억원은 펀드 및 투자금을 통해 조달했다. ③나머지 약 2조7000억원은 홈플러스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한마디로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전체 6조원의 50%에 육박하는 돈(2조7000억원)을 홈플러스의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대출받았다는 말이다. 인수기업이 인수되는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인수하는 M&A 기법을 차입매수(LBO)라고 한다. 부채를 활용해 자본의 수익률을 증폭시키는 지렛대 효과로 M&A 시장에선 각광받지만, 단기적 재무구조 개선 활동에만 치우치게 할 수 있어 투기적이란 비판도 많다.
이 LBO는 차입금이 높았던 만큼 이자 비용이 막대했다. 2016년 홈플러스의 영업이익이 2938억원이었는데 대부분이 이자로 나갔다. 이러한 고질적 문제와 함께 시작된 MBK의 홈플러스는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2016년 영업이익 2938억원에서 이듬해 2572억원으로 고꾸라졌고, 2023년 기준 1994억원 적자를 봤다.
MBK에 이자 부담과 차입금을 해결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영업 능력을 월등히 키워 마트 매출을 올리는 정공법과 홈플러스가 가진 부동산 자산을 팔아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쉬운 길은 두 번째였다. MBK는 2020년부터는 매출이 높은 점포까지 팔아치웠다. 2020년 4300억원에 매각한 안산점이 대표적이다. 이후 안산을 비롯해 전국 매출 순위 톱인 가야, 둔산, 탄방, 대구점 등 주요 점포 14곳이 폐점 수순을 밟았다.
홈플러스 대형매장에서 캐시어 등으로 일하는 김연수씨(가명)는 지난 3년 동안 근무지를 세 번 이동했다. 폐점 결정으로 근무지가 별안간 없어지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첫 근무지였던 가야점이 자산유동화 결정으로 폐점했던 2021년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가야는 인근 서부산점이 먼저 폐점을 하고, 그곳 직원들이 넘어와서 일할 만큼 매출이 잘 나오던 곳이었다. 갑자기 회사가 폐점을 결정하면서 직원들에게 이동하고 싶은 지점 3순위를 받기 시작했다.” 현재 그가 일하는 지점은 집에서 출퇴근만 2시간 걸리는 점포다.

MBK 측은 “인위적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한 적이 없다”고 했으나 수많은 직원이 매장 폐점 등과 함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나가야 했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홈플러스 직원 수는 MBK가 인수한 해인 2015년 12월 2만5359명에서 2023년 2월 2만456명으로 4903명이 줄었다. 같은 기간 외주 협력직원 등 간접 고용직원도 5056명이 떠났다.
마트 경쟁력 흔들…노동자도 떠나
매출 상위 점포까지 매각해 돈을 쥔 홈플러스의 결정에는 장단점이 존재했다. 노조에 따르면 부동산 매각을 본격화한 2016년부터 최근까지 홈플러스의 장단기 차입금 2조7112억원이 줄었다. 이는 홈플러스의 매각 부동산자금 2조2111억원과 비슷한 규모다.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영업이익으론 이자 비용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어 홈플러스 자산 매각을 통해 부족한 이자와 차입금을 상환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MBK는 차입금을 줄여나갔지만 과중한 재무 부담은 지속됐다. 세일앤리스백으로 생긴 임대료가 특히 발목을 잡았다. 점포 부지를 펀드 등에 매각한 뒤 재임대를 하는 세일앤리스백은 투자금 회수에 필요한 급전을 마련하는 데는 용이했다. 하지만 임대료가 문제였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를 보면 MBK는 홈플러스 인수 이듬해인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매장 총 15곳에서 세일앤리스백 방식으로 매각대금 1조8640억원가량을 얻었다. 이로 인해 홈플러스는 2016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15개 매장을 합쳐 총 6962억원의 임대료를 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출 상위 점포가 폐점되면서 홈플러스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지역 거점으로서의 경쟁력은 약해졌고, 고객과의 접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사이 신선식품과 대량 구매에 집중했던 대형마트 중심 시장은 ‘새벽배송’을 앞세운 온라인 유통업체로 재편됐다.
그럼에도 MBK는 홈플러스의 실적 부진을 해결할 의미 있는 투자를 하지 않았다. 북수원점에서 주얼리 가게를 하는 이미숙씨(가명)는 “겨울에 추워도 난방이 안 들어와 입점업체들끼리 십시일반 난방기구를 가져온 적이 있다. 여름에 천장에서 에어컨 물이 떨어져도 보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강씨도 “일부 업체들은 한 달 매출의 3분의 2가 사나흘 진행하는 할인행사 때 나온다고 할 만큼 평소엔 어렵다”고 말했다. 직원들을 마른걸레 짜듯 일을 시키기도 했다. MBK는 계산대, 고객센터, 장난감, 문구, 가정 등 세분화해 나눠 맡던 업무 체계를 ‘통합부서’로 운영한다며 한 사람이 동시에 맡도록 조정했다.
임대료와 이자 비용은 늘어가는데 계속된 업황 불황, 경쟁력 약화로 영업이익이 급감하면서 홈플러스의 신용도가 떨어지고 재무 건전성은 크게 악화했다. 지난 1월 말 기준 홈플러스의 총부채는 약 8조5000억원에 달한다. 임차료 등 리스부채가 약 2조4000억원이고, 이중 1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유동성리스부채가 1조88억원이다. 빚더미에 허덕이던 홈플러스는 지난해 메리츠금융그룹에서 1조2000억원 한도의 부동산담보대출까지 받았다.
MBK는 지난 3월 4일 법원에 제출한 회생절차 개시명령 신청서에서 리스부채를 없애기 위해 세일앤리스백 점포를 대상으로 임대료 조정에 나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 응할 임대인들은 사실상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 매장 4곳을 세일즈앤리스백 방식으로 매입한 A부동산펀드 관계자는 “임대료는 애초에 세일앤리스백으로 매매할 때 우리가 금융권에서 빌린 대출금리에 맞춰 책정해놓은 것”이라며 “임대료 조정에 절대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허가청과 접촉해 주상복합 부지로 마트 부지를 변경하는 안을 추진 중”이라면서도 “개발까지 펀드의 자체 유동성이 받쳐져야 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미 세일앤리스백 형태로 홈플러스 점포를 운영 중인 일부 자산운용사들은 해당 부지를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업’ 용도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MBK도 추가 매각을 사실상 유일한 출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4일 채권단에 제출한 MBK의 문서를 보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 4개 점포 추가 매각(2025년 1월 기준), 매출 하위권 점포 면적 축소 계획 등이 나와 있다.
전방위적인 매각과 축소 움직임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속 노동자와 입점업체들에게 돌아간다. 안경가게 강씨는 입점업체들이 자발적으로 폐점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개별 점주들은 보증금을 홈플러스와 계약을 맺은 브랜드에 줬는데, 이 브랜드가 그 돈을 홈플러스에 줬다면 보증금 회수가 될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안수용 마트노조 홈플러스 지부장은 “MBK는 홈플러스 인수를 통해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라는 명성을 쌓고 이를 지렛대로 3, 4, 5호 펀드를 만들어 이득을 다 챙겼다”며 “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지금이라도 실행하고 홈플러스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MBK는 홈플러스 경영권을 인수한 3호 펀드를 통해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 두산공작기계, 네파, 대성산업가스 등을 인수하거나 투자해 수조원의 매각 차익을 거뒀다. 3호 펀드에서 홈플러스 등의 손실이 확정돼도 펀드의 전체 내부수익률(IRR)은 최소 15% 이상일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높은 차입비율의 LBO가 지금의 홈플러스 사태를 낳았다고 본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애당초 테스코가 지배권을 악용, MBK가 홈플러스 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차입한 돈을 받고 떠나버렸기 때문에 회사는 빚더미에 올라앉고, 여기에서 탈출 못 한 소액주주는 껍데기만 갖게 된 것”이라며 “미국에선 (이런 유형의) LBO가 ‘사기적 가치 이전’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높아 그에 대한 법적 제재 사례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해외에선 LBO를 할 때 이사회 주총 등 신용 공여 요건을 강화하거나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 쪽에서 건전성 관리, 신용 공여 한도 관리를 한다”며 “LBO 레버리지의 적정 수준을 관리하는 사전·사후 규율이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