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을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암기가 목적이 되는 19세기식 교육 방식은 버려야 합니다.”
대학 혁신의 모델로 꼽히는 미네르바대학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벤 넬슨(50)은 “대학이 사고력을 훈련시키는 요람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넬슨은 서울사이버대가 주최하는 세계대학총장협회(IAUP) 창립 6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돼 13일 서울을 방문했다. 15일까지 진행되는 행사에는 세계 각국의 대학 총장, 정부 관계자 등 고등교육계 리더 200여명이 모였다. 이은주 서울사이버대 총장(IAUP 부회장)은 “21개국 대학 총장과 고등교육 관계자들이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에 따라 전 세계 고등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대학의 역할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엔 챗GPT와 같은 AI 애플리케이션이 교사 역할을 대신하는 학교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넬슨은 중앙일보에 “사고력을 키우는데 집중하지 않는다면 겉모습만 최신 트렌드에 따라가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경쟁 관계의 두 카페 중 한 곳이 커피값을 내리면 다른 가게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문제를 통해 챗GPT의 한계를 지적했다.

넬슨은 “챗GPT같은 AI는 우리가 아는 모든 지식을 바탕으로 확률적으로 맞는 답을 제시할 뿐”이라며 “가격을 올려야 할지, 내려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두고 전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결정하는 거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비판적 지혜’를 키우려면 사고력을 훈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미네르바대학은 창의력·비판·교감·의사소통을 ‘사고의 도구’이자 4대 핵심 영역으로 정하고, 학생이 어떤 전공을 선택하든 이를 반복 훈련한다. 넬슨은 골프를 예로 들었다. 그는 "기존 대학은 여러 강사가 스윙·그립·스탠스를 각자 따로 가르치는 방식이었다”며 “학생이 진짜 배워야 할 건 현장에서 소용없는 지식이 아니라 생각하는 도구”라고 지적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출신인 그는 학창 시절에 대해 “어떤 과목은 너무 쉬워 배울 게 없고, 다른 과목은 너무 어려워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학은 그저 학점을 부여할 뿐이었다”며 “점수와 외형에 의해 대학이 돌아간다는 걸 깨닫고 새로운 교육 방식에 관심 갖게 됐다”고 밝혔다.

대학 졸업 뒤 스타트업에서 근무한 넬슨은 벤처캐피탈을 직접 설득해 2500만 달러(약 357억원)를 투자받아 2011년 미네르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네르바대 신입생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두 학기를 보낸 뒤 나머지 3년은 서울·베를린·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세계 도시에서 6개월씩 단체 생활을 한다. 모든 수업은 온라인 기반의 실시간 토론으로 진행된다. 학비는 연간 3만2000달러(약 4575만원)으로 미국 여느 대학의 절반 수준이다.
2020년 미네르바대를 졸업한 학생은 현지 매체에 “아르헨티나에서는 탱고를, 독일에서는 힙합을 배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넬슨은 “첫 졸업생 4명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최고의 액셀러레이터(AC)로 통하던 회사에 동시에 취업했다”며 “창업이나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는 학생도 많다”고 소개했다.
넬슨은 한국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대해 “정부가 아무리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대학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헛돈을 쓰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네르바는 세계 최고의 교육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10년 동안 1억 달러(약 1430억원)를 들였다”며 “정부도 대학을 지원할 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커리큘럼을 짜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