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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쥐다!"
서울 한강공원 등지에서 간헐적으로 목격되던 쥐가 이제는 도심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강남역, 광화문, 홍대입구 같은 유동인구 밀집 상권은 물론 변두리 주거지에서도 “쥐를 봤다”는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쥐 출몰 신고 2000건 돌파...강남·마포·관악 집중
21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서울 시내 쥐 출몰·목격 민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279건이던 관련 민원은 지난해 2181건으로 70% 이상 급증했다. 올해도 7월까지 1555건의 민원이 접수돼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자치구별로는 강남·마포·관악구 순으로 민원이 집중됐다.
서울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쥐 서식 밀도가 낮다고 평가한 바 있다. 2020년 시가 3000개의 포획틀을 설치해 조사한 결과 잡힌 쥐는 88마리(포획률 2.9%)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출몰 민원이 급증한 것은 실제 개체 수 증가뿐 아니라 하수도 정비와 저층 주거지 재개발로 서식지가 줄어든 쥐들이 지상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방역 당국은 상업지역에서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쥐는 법정 3급 감염병인 신증후군출혈열·렙토스피라증 등을 옮긴다. 쥐의 분변이나 체액 속 바이러스가 사람의 호흡기나 점막을 통해 침투하면 고열과 근육통 등을 유발한다.
이에 따라 서울 자치구들은 잇단 민원에 대응해 ‘쥐 소탕 작전’에 나섰다.
강남구는 쥐 출몰이 잦은 전통시장과 하수구 주변, 아파트 음식물쓰레기 수거장 등에 스마트 트랩(지능형 쥐덫) 50대를 설치했다. 트랩에 쥐가 들어오면 자동으로 센서가 작동해 수거 신호를 보낸다. 방역기동반도 투입돼 공원·하천변 등에 쥐약을 집중 살포했다.
관악구는 ‘방역 종합대책’을 마련해 쥐덫 47대를 설치하고, 주·야간 순환청소를 강화해 쥐의 주 먹이원인 음식물쓰레기 자체를 남기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서울만의 일 아냐"...전 세계 주요 도시도 ‘쥐 급증’
이 같은 쥐의 도심 침투는 서울만의 현상이 아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미국·일본·네덜란드 등 16개 도시 중 11곳에서 지난 10년간 쥐 개체 수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특히 워싱턴 D.C.·샌프란시스코·토론토·뉴욕·암스테르담에서 증가폭이 두드러졌다. 연구진 분석 결과 지난 10년간 쥐 개체 수는 △워싱턴D.C. 390% △샌프란시스코 300% △토론토 186% △뉴욕 162% 늘었다.
연구를 이끈 조너선 리처드슨 버지니아 리치먼드대 교수는 "이런 추세가 다른 도시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쥐 개체 수 증가와 도시 기온 상승 간 밀접한 연관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쥐는 추 위에 약한 소형 포유류로 기온이 높을수록 번식 가능 기간이 길어지고 먹이활동이 활발해진다.
리처드슨 교수는 “쥐 개체 수가 가장 빠르게 증가한 도시가 동시에 기온이 가장 빠르게 상승한 도시라는 점이 이번 연구의 가장 우울한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캐나다 토론토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완벽한 쥐 폭풍(perfect rat strom)' 도시로 꼽힌다. 캐나다 최대 해충 방제업체 오킨의 수석 곤충학자 앨리스 시니아는 "토론토 거리 아래 하수도에는 쥐가 들끓고 있다"며 "공사나 홍수로 밀려난 쥐들이 지상으로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토론토 시청이 운영하는 신고 전화는 2019년 940건에서 2023년 1600건으로 늘었다. 오킨 역시 같은 기간 방제 요청이 폭증했다. 시니아 박사는 “과거에는 혹독한 겨울이 ‘자연의 해충 방제’ 역할을 했다”면서 “최근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면서 쥐들이 계속 번식하게 됐다”고 밝혔다.
프랑스 파리는 ‘쥐와의 공존’ 논의 중
한편 프랑스 파리에서는 쥐를 혐오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자는 움직임이 확산 중이다.
파리 11구의 그레고리 모로 부구청장은 반려 쥐 ‘플룸(Plume)’을 어깨에 올린 채 파리 시내를 함께 걸으며 ‘쥐 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 동물권정당 소속인 그는 AFP에 “쥐는 과거 14세기 흑사병을 옮겼다는 이유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며 "오늘날 쥐가 질병을 옮기는 일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쥐는 도시 환경적 측면에서도 쥐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처리해 하수도가 막히는 일을 방지하고 있다”며 생태적 역할을 언급했다.
'쥐와 인간'의 저자 피에르 팔가이라크도 과거 한 프랑스 방송에서 "도시 쥐 한 마리가 1년에 약 9kg의 쓰레기를 먹어 치우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모로 부구청장은 쥐약을 설치해 쥐 개체 수를 무분별하게 줄이는 대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쥐약은 쥐의 고통을 유발할 뿐 아니라 내성을 키워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동물권 단체들도 같은 입장이다. 파리애니모동물원은 "치명적인 방식의 설치류 방제 방식을 종식해야 한다"며 “특히 항응고제(쥐약 성분 중 하나)를 사용하는 방식을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파리 내에서는 이에 대한 찬반이 맞선다. 17구 구청장 조프루아 불라드는 “쥐와 공존해야 한다는 건 환상”이라며 지난해 뉴욕에서 열린 ‘제1회 전국 도시 쥐 정상회의(쥐 개체 수 조절에 관한 회의)’에 참여해 강력한 퇴치 정책을 촉구했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쥐(rat)’ 대신 ‘갈색쥐(surmulot)’로 명칭을 바꾸자는 제안도 나왔다. 과거 흑사병을 옮긴 검은쥐와 구분해 쥐에 대한 혐오를 줄이자는 취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