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건 다룬 에세이 교정을 놓고
작가와 잡지사 팩트체커의 열띤 공방
‘대니엘 래드클리프’ 주연 연극으로도

사실의 수명
존 다가타·짐 핑걸 지음 |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160쪽 | 2만원
“이에 대한 자료는 없었고, 이런 내용이 담긴 문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 사람은 명확한 사실을 원한다. “사실에 천착할 때보다 실제로 더 좋은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또한 그로써 독자에게 더 훌륭하고도 진실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자부하거든요.” 한 사람은 어느 정도 변형된 사실이 사건의 실체와 더 가까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목표는 하나다. 독자에게 진실한 글을 제공하는 것. <사실의 수명>은 진실에 다가서려는 이들의 시도를 흥미롭게 담았다.
2002년 7월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호텔에서 16세 소년이 투신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서정적 에세이를 주로 써왔던 작가 존 다가타는 2003년 잡지 ‘하퍼스’의 의뢰로 이 사건에 관한 에세이를 집필했으나 게재를 거부당한다. 사실 오류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작가는 글을 일부 손봐 ‘빌리버’라는 잡지에 투고한다. 잡지는 게재를 허용하지만 하나의 조건을 단다. 바로 내부 팩트체크 관문을 거칠 것.
책은 작가의 원고를 각 페이지의 한가운데 두고 이를 둘러싼 팩트체커, 작가, 편집장 세 사람의 실제 논쟁을 글로 옮겨 실었다. 팩트체커가 글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편집장에게 알리면, 편집장이 작가에게 확인하라고 지시한다. 작가는 팩트체커의 집요한 물음에 처음엔 별것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취하다 어느 순간 화를 내기도 한다.
“열여섯 살 레비 프레슬리가 스트래토스피어 호텔앤드카지노의 350미터 높이 타워 전망대에서 뛰어내린 그날,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시 당국이 영업 허가를 받은 관내 스트립 클럽 서른네 곳에 대해 한시적으로 랩댄스를 금지시켰고, 고고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타바스코소스 병을 버키츠 오브 블러드라는 술집 지하에서 발굴했으며, 미시시피에서 온 한 여성은 진저라는 소녀를 상대로 35분 동안 틱택토 게임을 한 끝에 승리를 거뒀다.”
원고의 초입에서만 오류가 여럿 발견된다. 스트립 클럽 수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고, 당시 랩댄스가 금지되지도 않았다. 타바스코소스 병이 발견된 술집 이름도 실제로는 보스턴 설룬이다. 팩트체커가 묻는다. “(틱택토 게임의 승자는) 미시시피 사람이 아니라 라스베이거스 지역 주민이었던 것 같거든요.” 작가는 답한다. “그건 저도 알지만,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의 일과성 - 즉, 거의 모든 사람이 타 지역 출신이라는 점 - 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설정한 겁니다.”

단순해 보이는 오류를 수정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대응이 처음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작가는 해당 글이 사실 전달만을 목표로 하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닌 피처형 에세이라는 것에 집중한다. 그는 “모르긴 해도 독자들의 대체적 관심사는 이 복합적 사건들이 암시하는 의미”일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소년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극대화해 사람들이 이 문제에 집중하길 바란다. 글이 진행되며 작가의 항변이 그저 고집이 아니라 사건을 대하는 예술가의 윤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을 조합해 새로운 진실을 만들어낸 예술가들의 노력은 국내에서도 찾을 수 있다. 광주의 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특수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다룬 <도가니>, 이른바 판사에 대한 석궁 테러 사건을 다룬 <부러진 화살> 등이다. 허구성 문제와 과소·과장 반영이 문제가 되기도 했으나 이런 작품들은 사회의 정의란 무엇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은 2012년 개봉 이후 작품에 대한 허구성 논란이 벌어진 것에 대해 “영화가 사회적 발언과 소통의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은 어떤 각도에서 논란이 된다 해도 기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작가의 글이 픽션도 아닌 논픽션이라는 점이다. 독자에게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잡지의 편집자로서 팩트체커는 “논픽션은 현실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글은 온통 수정을 위한 붉은 펜으로 뒤덮인다. 그런데 작가는 장르의 한계가 저자가 의도하는 글의 목적을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논픽션이라는 장르에 대한 고찰로까지 이어진다.
두 사람은 어떤 결론에 다다를 것인가. 독자가 궁금해하는 결말이겠으나 정확한 답은 없다. 사실과 그것을 글로 옮기는 작업의 윤리는 무엇이며 어떤 것이 진실을 향한 옳은 길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결국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2018년, 책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팩츠체커 역은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해리 포터를 연기했던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