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나치’ 세상…‘육식인’의 분투

2025-05-02

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 박경희 옮김

문학동네 | 136쪽 | 1만5000원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다. 주인공이 어떤 범죄를 저지른 뒤 체포되어 형사 앞에서 털어놓는 이야기가 소설의 전부이다. 소설에는 ‘톰 두부’와 ‘육수맛내기69’라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 각각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를 대표한다.

배경은 가까운 미래의 독일로 채식주의가 지배적인 세상이다. 맥도널드는 채식 파동으로 큰 타격을 받은 뒤 사주가 세 번이나 바뀌면서 손님의 발길이 끊어졌다. 몇곳 남지 않은 정육점은 미성년자가 출입할 수 없는 유해시설로 분류돼 있다. 주인공 ‘나’는 사회로부터 미개인 취급받는 것이 싫어 고기를 끊기로 한다. 하지만 힘이 들어 채식주의 블로거 ‘톰 두부’로부터 조언을 얻고 때론 종교 교리와도 같은 지시를 따르면서 채식 생활을 이어 나간다. 그러나 곧 여러 문제에 부닥친다. 변비에 시달리는 건 익숙해졌지만 한 달 만에 치아 2개가 빠지고 발기부전도 겪는다. 당연히 웃음도 잃게 됐다. 그러던 중 인터넷 게시판에서 ‘육수맛내기69’가 쓴 글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빠져든다. 그는 은밀하게 활동하는 육식 지하조직의 수장이었다. 주인공이 지하 육식파의 활동에 적극 가담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소설 중반부 이후 펼쳐진다.

채식주의의 교조화를 경계하는 풍자소설로 읽히는 이 책의 저자 야콥 하인은 놀랍게도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 의사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로 불리는 것은 거부한다고 한다. ‘○○주의’ 이면에 있을 수 있는 종교적인 강압과 이데올로기화를 비판적으로 보는 듯하다.

저자는 동독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고, 청소년기에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경험한 뒤 현재는 자본주의 통일 독일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념 문제가 삶에 큰 영향을 끼쳤을 법한데 이 소설도 이념에 빠진 극단주의자의 광기를 익살스러운 문체로 다루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나 <동물농장>이 언뜻 떠오르기도 한다.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가상의 세계를 풍자적으로 다룬 설정과 분위기가 그런 느낌을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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