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최전선

2025-02-24

트럼프 2기 정부가 공격 대상으로 삼은 소수자 집단은 트랜스젠더다. 지난 21일 전미 주지사협의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재닛 밀스 메인 주지사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트럼프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자부 스포츠 참가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했는데,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이끄는 메인주가 이에 따르지 않으면 연방정부 지원을 끊겠다며 위협했다. 이에 대해 밀스 주지사가 ‘법정에서 보자’고 맞받아치며 화제에 올랐다.

트랜스젠더는 지난 미국 대선의 주된 쟁점이었다. 스포츠에 국한하면 논의할 부분은 있겠다. 그랜드슬램 우승 23회에 빛나는 여자 테니스의 전설 세리나 윌리엄스는 남자부 랭킹 200위 정도는 이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203위 선수와의 대결에서 완패했다.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도 기량으로 극복되지 않는 피지컬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사안별 맞춤형 규율이 아니라 트랜스젠더의 권리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트랜스젠더 신병 모집 금지, 여성과 남성 외의 법적 성별은 인정하지 않는 조치 등이 행정명령으로 시행되었다. 민주당 소속 새라 맥브라이드가 최초의 트랜스젠더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의사당 여성 화장실 사용을 금지했다.

트랜스젠더 인권에 대한 이런 인식과 입장은 다른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2기의 인권 정책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에 대한 전면 부정으로 규정할 수 있다.

트럼프는 60년 전 린든 존슨 대통령의 ‘행정명령 11246’을 폐지했다. 이 행정명령은 연방정부와 연간 1만달러 이상의 계약을 하는 당사자가 고용 관계에서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또는 출신 국가를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해 왔다. 1월29일 워싱턴 인근에서 여객기와 블랙호크 헬리콥터가 충돌하여 탑승자가 전원 사망한 참사에 관해서도, 바이든 정부가 DEI 기조에 따라 항공안전 인력 채용 기준을 낮추고 지적·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채용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했다.

미국에서 매년 2월은 ‘흑인 역사의 달’로 기념한다. 하지만 트럼프 2기의 국방부는 DEI 철폐 정책의 일환으로 ‘흑인 역사의 달’ 행사를 중단했다. 트럼프는 지난 21일 찰스 브라운 합참의장을 전격 경질했는데, 바이든 정부에서 임명된 그 스스로가 흑인이고 군대 내 DEI 정책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1963년 애리조나주에서 체포된 에르네스토 미란다는 잔혹한 성범죄자였다. 하지만 1966년 연방대법원은 체포 당시 진술거부권, 진술이 재판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점, 변호인 선임권 등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란다의 유죄판결을 파기했다. 미란다 고지는 법체계가 다른 한국까지 건너와 무고하게 체포되는 사람부터 내란 우두머리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보장되는 권리가 되었다.

인권은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원칙이다. 보호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경우인지 아닌지 따지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인권이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자부 스포츠에 참가할 때 혹여 나타나는 부작용이 있어도 법 앞의 평등을 부정하면 안 되고, 미란다 고지를 누락한 후의 진술을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더라도 피의자의 법적 권리 고지라는 원칙 자체를 부정하면 안 된다. 그런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트랜스젠더부를 신설하거나 다른 증거로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것이 해법이다.

인권 운동가나 연구자들이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옹호하는 이유는 정체성 정치에 함몰됐거나 실생활과 무관한 화제성 이슈를 찾아다니기 때문이 아니다. 인권을 연구하고 실현하려는 사람들은 인권의 최전선 즉 인권이 가장 취약한 지점을 찾아간다. 트랜스젠더의 권리가 이론의 여지 없이 보호되는 세상이 오면 그들은 인권의 다른 최전선에 있을 것이다.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기본권이다. 부작용이 우려되는 영역이 있으면 그 부분만 한정해서 규율하면 된다. 일부 문제가 있다고 원칙과 예외를 뒤바꾸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미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인권이 아니게 된다. 트럼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어느 영역에서 인권을 부정하는 정치 세력은 거기 그치지 않고 다른 영역까지 건드리게 되어 있다. 그렇게 인권이 축소되면 그 여파는 언젠가 모두에게 무엇보다 나에게 돌아오게 된다. 서로 밀접하게 엮여 있는 세계에서 어느 나라의 인권 문제는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트럼프 2기의 정책을 깊은 우려를 가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