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취임한 후 한 달간 쏟아낸 말과 문서는 굉장했다. 대부분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한 것들이었다.
트럼프는 수입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계획으로 포문을 연 뒤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개발하겠다’는 전무후무한 중동 구상을 내놔 세계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약 80년간 이어진 국제 질서도 다시 그리고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와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했는데, 이는 미·러관계의 해빙이자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고립돼 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다시 국제무대로 불러낸 일로 평가된다. 그는 또 종전을 논의할 때 유럽과 우크라이나를 배제함으로써 대서양 동맹 유럽과의 결별을 사실상 선언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외교 정책 부문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있을까 말까 한 변화를 만들고 있다”고 썼다.
미국 국내에도 트럼프발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실세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연방기관 구조조정을 시작하면서 멀쩡한 기관이 문을 닫고 공무원들이 실직했다. 지난 13일 기준 연방 공무원 7만5000명이 사의를 밝혔고, 연방 기관의 수습 직원 22만명에게 해고 통지가 날아갔다. 트럼프 행정부는 핵무기 관리·감독 기관인 국가핵안전청 수습 직원 300여명을 해고했다가 이들이 필수 인력인 것을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해고 취소 전화를 돌리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시민들의 삶도 달라졌다. ‘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을 폐지한 트럼프는 트랜스젠더가 여성 스포츠 경기에 출전하는 것을 금지했고, 여권 신청서의 성별 표시란에서 ‘제3의 성’을 삭제했다. 장학금 수여자를 정할 때 인종을 고려하는 학교에는 연방 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트럼프가 폭주하는 사이 민주당은 의아할 정도로 조용하다. 소수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은 견제는커녕 저항의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가 명령한 연방기관 폐쇄, 1센트 동전 주조 중단 등은 행정부가 아닌 의회 권한이라 위법성 논란이 일고 있으나, 지난해 상·하원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은 무력하다. 외신에선 민주당이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강도와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는지를 조율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의 패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합의를 보지 못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심지어 단일대오를 이루기 쉬운 사안인 장관 후보자 인준 동의안 표결에서도 자유분방하게 찬성표를 던진다. 화석연료 옹호자인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 3일 찬성 59표, 반대 38표로 연방 상원 인준을 얻었는데 찬성 중 7표가 민주당 표였다.
민주당 내 진보 성향 의원들의 간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연방 하원의원은 소셜미디어 라이브방송을 통해 “우리는 정당으로서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정부에 혼란을 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막을 책임이 있다”며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좋은 사람인 척하지 말고 트럼프 정부의 후보자들에게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물론 민주당이 결집해도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 내 표 대결에서 이기기는 어렵다. 하지만 민주당이 견제의 시늉조차 하지 않는 것은 지지자들에게 좌절감을 주고 있다.
민주당의 무기력은 자금줄이 끊기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성소수자 권리 옹호, 이민자 지원 등에 거액을 댔던 자선재단, 민주당에 큰돈을 기부했던 기업가들이 방향성 없이 표류하는 민주당에 실망해 후원을 중단하고 있다. 민주당 후원가들은 대선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이 약 4개월간 선거 운동을 하며 기부금 15억달러(약 2조1500억원)를 쓴 것에 아연실색했으며 그렇게 많은 돈을 쓰고도 이기지 못한 것에 분노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엔 되레 민주당에 후원금이 몰렸다는 사실은 현재 지지자들이 민주당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민주당 소속 주 검찰총장들이 법원에 트럼프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를 제기하면서 그의 칼춤을 멈추려 애쓰고 있다는 소식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최근 위원장을 새로 선출하고 대선 패인과 당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의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답을 찾아야 한다. 지리멸렬하고 존재감도 없는 야당에 돈과 표를 줄 유권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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