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립, 독립, 민주주의

2025-02-23

3개월째 이어지는 계엄과 탄핵 시국은 시민들이 민주주의 국가의 통치권 구성 원리인 삼권 분립, 그리고 작고 강한 독립 기구의 의의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삼권 분립은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신속한 해결을 위한 분업의 원리가 아니라 국가 권력을 쪼개고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원리다. 그러다 보니 문제 해결 요구가 강해지면 권력의 비효율적 작동을 의도하는 삼권 분립은 늘 흔들렸다. 동시에 삼권 분립은 아이러니하게 대중에 대한 불신에도 기반해 있다. 국가 권력이 한 군데 집중되어 있을 경우 응집력 있는 소수 집단이 등장해 그 전체를 쉽게 장악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고안한 안전장치인 것이다. 계엄 선포권과 해제요구권이 분리되고, 그 위법성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 삼권 분립은 권력에 목마른 이들에게는 참으로 불편한 원리지만, 그렇기에 시민은 국가의 자의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삼권 분립은 긴장과 역동으로 가득한 원리다.

국가 통치권의 또 다른 현대적 구성 원리는 독립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전통적인 삼권 분립 체제에서 삐져나온 ‘작고 강한 독립적 기구’들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현재 시국에서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 국가인권위원회 등이다. 이들은 삼부(입법·행정·사법)처럼 포괄적인 관할권을 행사하는 기구들이 아니라 선거, 감사, 인권 보장 같은 특정 영역에서 타 국가 기구 전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본질적으로 이들의 역할은 국가 권력의 작동을 불편하게, 투명하게,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고대 로마의 호민관처럼 국가 기구이면서 국가 권력을 견제하는 역설적 역할을 부여받았기에 ‘철저한’ 독립성을 인정, 그리고 요구받는다. 그런데 이들의 독립성은 시민의 직접적 통제로부터도 자유로운 관료 기구라는 다소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신뢰 없이는 작동하기 어려운 원리다.

이러한 기구의 독립성은 사실 매우 취약하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국가에서는 이런 독립적 기구들, 특히 헌법재판기구와 선거관리기구가 폭력에 의해 우선 무력화된다. 평시에는 기구의 법적 독립성에도 불구하고 행정 수반의 인사권 행사에 따라서는 기관장을 통로로 외부의 통제력이 깊숙이 침투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폐쇄적이고 긴밀하게 연결된 엘리트 집단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늘 우려되는 일이다. 또한 행정 수반이 기관의 운영 예산을 삭감하거나 장기간 기관장 인선을 하지 않는 등의 간접적 방법으로 사실상 해당 조직을 무력화하는 일도 발생한다. 외피상으로는 독립성을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기구의 기능 자체를 고사시키는 것이다. 여론 조성을 통해 해당 기구의 정치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전략도 흔히 사용된다. 바로 지금 헌법재판소와 선거관리위원회가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견제의 원리를 통한 기본권 확보가 아니라 당장 눈에 보이는 정파적 결과를 원하는 집단은 민주성의 결여를 이유로 이러한 기구들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한 법률을 국회가 개정하지 않는 경우다.

실제로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사례는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내란 혐의를 받는 이들에게도 조사 과정에서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인권의 본질상 형식 논리로는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가의 폭력에 희생되고, 사회의 편견에 소외되어온 시민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제도적 취지와 역사적 유산, 그리고 여전히 산적한 기본권 침해 사례들을 생각해볼 때 과연 이것이 민주주의를 위해 최선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권의 보루로서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이상을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은 민주주의가 얼마나 지독한 역설 위에서 작동하는지 실감하게 한다.

국가 권력의 분립과 독립의 구현은 문서가 아니라 달리는 자전거처럼 역동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시민들의 신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떤 국가 기구는 투표로 선출된 대표자나 시민들의 직접적 통제가 미치지 않도록 설계됨으로써 오히려 국가 권력을 제한하고 시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도 있다는 현대 관료국가의 역설적 가정을 현실화하는 것은 해당 기구와 공직자의 이성과 윤리만이 아니라 그 가정을 기꺼이 실험해보기로 하는 시민들 자신이다. 기대에 반하는 경험들, 효율적 권력을 향한 갈망, 역설을 수용하는 데 따르는 심리적 피로감을 넘는 의지가 역사를 나아가게 할 것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