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옭아매 온 세 개의 덫

2025-02-23

자긍심 충만하던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근본 원인은 뭘까. 승자독식의 단순무지한 다수결 정치, 여야의 극한 대결, 이를 따라 갈려 치유가 어려워진 분열. 이 증상의 무한반복은 우리 정치, 사회의 고질적·만성적 병인(病因)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바로 나라를 전진하지 못하게 꽁꽁 옭아매 온 덫들이다. 권력분산 개헌 등 당장의 제도개선도 시급하겠다. 하지만 그 바닥에 깔린 오랜 덫에서 탈출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그 첫째는 ‘개혁 기피의 덫’이다. 정치가, 좁게는 대통령이 무한 권력을 행사해 오던 나라였다. 정권을 쥐면 온전히 그 힘을 즐기려고만 한다. 국가의 거버넌스나 정책·제도의 개혁을 추진하려면 파워 충만한 집권 초여야 했다. 그러나 금세 닥칠 선거가 어른거린다. 당대 정권에 미칠 큰 곤경이 두려워 기회의 소매를 부여잡지 못한 게 최근 정권들의 한결같은 습성이다. 5월 대선 가능성에 ‘자기 편’ 노조 눈치를 봐야 하니 ‘주 52시간제 예외’를 거부하는 게 민주당이다. 정권이 눈앞인 듯하자 ‘제왕적 대통령 해소 개헌’엔 눈조차 마주칠까 모른 척이다. 윤석열 정부도 국민연금 개혁을 총선 이후로 슬그머니 미뤄놓아 하루에 885억원씩 후대로의 부담이 쌓여가는 덫에 걸려 신음이다. 언제부터 김영삼(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김대중(기업 구조조정, 기초생활보장제, 의보통합), 노무현(한·미 FTA)류의 결단과 치적(治積)이 사라진 국가다.

정권만 쥐면 습성이 된 개혁 기피

만연한 ‘형님·아우님’식 후견주의

‘침묵의 다수’에 올가미 친 악인들

만성 고질의 덫 벗어나야 미래 있어

결코 놓고 싶지 않은 권력의 본능이야 알겠다. 기득권을 내놓게 해야 하는 개혁은 늘 큰 저항에 부닥친다. 압도적 승리로 집권한 캐나다 보수당의 멀로니 총리는 만성적 재정적자를 타개하려고 전 업종에 부가세를 확대했다. 그러나 2년 뒤 총선에서 169석이던 의석이 2석으로 궤멸당해야 했다. 일본 역시 2012년 아베 2차 내각 이전까지 국가부채 타개를 위한 소비세 도입·인상은 예외 없이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아베 역시 2019년 10%로 소비세를 인상했다가 지지율이 급락, 이듬해 사퇴의 한 요인이 됐다. 실업급여 축소와 노동시장 유연화(어젠다 2010) 개혁을 추진한 독일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 역시 우군이던 노조의 반발 속에 기민당 메르켈에게 정권을 넘겨야 했다.

‘개혁의 아이콘’이던 대처 전 영국 총리도 11년반 임기 내내 “노동자 고통에 둔감한 신자유주의의 마녀”라는 불만·저항에 시달렸다. 그녀가 세상을 뜬 2013년 4월엔 영화 ‘오즈의 마법사’ 삽입곡인 ‘Ding Dong! The Witch Is Dead

(드디어 마녀가 죽었다)’가 갑자기 영국 음원차트 2위에 오를 정도였으니…. 자기 정파·진영의 이득 연장만을 꾀하는 정치인들이 물론 절대다수다. 그러나 각자도생의 새 국제질서에서 이젠 국가의 미래와 후대를 위해 개혁의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큰 정치가(statesman)가 필요한 시대다. 후대들의 존경과 귀감이 될 개혁의 리더십이 차기 지도자를 고를 으뜸의 잣대여야 한다.

또 다른 고질은 ‘연줄·후견주의의 덫’이다. ‘아는 형님-아우님’ ‘오야붕-꼬붕’ ‘선배님-후배님’의 문화다. 경찰서에 잡혀 온 건달 최익현(최민식)이 “내가 느그 서장이랑 같이 밥도 묵고, 사우나도 가고, 다했어”(영화 『범죄와의 전쟁』)라 외치는 이유다. 대선 직전 부산 초원복집에서 관권선거를 결의한 PK 출신 법무장관·기관장들의 “우리가 남이가”다. 복종·충성과 인사·이권 등 따뜻한 보상의 맞바꿈이다. 대개는 청탁·폐쇄·특혜·정실로 이어져 공정·다원화·기회·효율의 보편적 가치와는 거꾸로다.

헌재 심리에선 윤 대통령의 충암고 선후배(김용현·이상민·여인형)들이 “대통령 보호를 위해 입맞추기 증언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난데없는 비상계엄도 결국 연줄·후견주의의 귀결이 아니었을까. 대통령·제1 야당 대표부터가 ‘형님-아우님’ 인사·공천으로 일관했으니 도대체 우리 사회는 무얼 배우고 따라왔겠는가. 그러니 구청장 바뀌면 동네 배드민턴 회장까지 바뀐다.

탄핵 정국 속 왜곡·거짓으로 ‘침묵의 합리적 다수’를 선동하려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나 여야 정당 내에서 극단의 목소리로 ‘반탄’ ‘찬탄’ 최전선의 피리 불어대는 이들이다. 목적? 자기 입지와 이권 확대다. 심지어 대선주자급이나 자칭 종교인들도 노골적 가담 추세다. 난세일수록 늘어난다는 ‘악인의 올가미’다. 마치 “악인들이 나를 잡을 덫을 놓았으니 통찰력을 주시어 탈출하게 하소서”(구약 시편)의 재현 같아진 세상이다. 성경이 규정한 ‘악인’은 이렇다. ‘교만·거짓된’ ‘남을 늘 비난·모욕·조롱하는’ ‘이유없이 선한 이들 핍박하는’ ‘둔하고 무감각한’ ‘통치자들과 함께 선한 이들을 칠 음모 꾸미는’ 자들이다.

진실을 추구·제시해야 할 사법부와 정통 언론의 책무가 어느 때보다 커진 이유다. 모두가 힘든 시간이지만 우리 사회의 이 오랜 병인들을 깨우치는 건 동시에 치유의 출발점이기도 하겠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란 간구가 꼭 저 높은 곳에 닿아야 할 시간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