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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시대의 왕에게 부족함이 많을수록 백성들은 다음 왕에 대해 큰 기대를 건다. 그러나 백성들의 기대가 너무 크면 새 왕은 오히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백성의 성화에 치어 서두르다가 나라를 더 어지럽힐 수도 있다. 백성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공자도 왕다운 왕의 선정이 30년은 이어져야 어진(仁) 세상이 된다고 했으니 이 시대의 대통령도 방향조차 잘못 잡았다면 탄핵해야 하지만, 방향을 잘 잡았다면 성과를 낼 때까지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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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나 국민이나 모두 어떻게 하는 것이 내게 이로울까를 생각하기 전에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목전의 이익에 눈이 멀어 바른 가치관을 저버리면 대통령도 국민도 다 불행해진다.
12·3 계엄령 이후, 우리나라는 극심하게 편이 갈려 거세게 싸우는 혼란에 빠져있다. 진영 간의 골이 너무 깊어서 이 혼란이 단기간에 수습될 것 같지 않다. 그럴수록 분노도 원망도 편 가름도 내려놓고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나서서 정치를 바꿔나가야 한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대통령다운 대통령이 나타나면 독촉하지 말고 기다리는 여유도 가져야 한다.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무모한 짓은 대통령도 국민도 하지 않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