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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직장 상사로 치면 ‘똑부’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그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가 똑똑하고 부지런한 건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는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아침저녁으로 메시지를 올리는데,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자신 있게 설명한다. 주변 사람들이 동의하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일 욕심을 주체할 수 없는 전형적인 똑부의 모습이다.
요즘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트럼프에겐 전통적인 적대국과 우방국에 대한 구분도 없고, 동맹이라고 봐주는 것도 없다.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한 통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사실상 끝내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만난 자리에선 “내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잘 지내는 것은 모두에게 매우 큰 자산”이라고 자랑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시진핑 국가주석과 아주 좋은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 뒤집는 트럼프 일방주의
미국 이익이라면 우방도 안 봐줘
핵심 제조업 초격차 지켜야 생존
그간 증폭되던 신냉전 우려는 쏙 들어간 형국이지만, 전 세계의 긴장도는 높아지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트럼프의 일방적 요구가 무차별적으로 세계 각국을 두들기고 있어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점령된 영토를 자칫 찍소리 못하고 빼앗기게 생겼고, 서유럽은 미국에 의탁했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안보 체제에 더는 기댈 수 없게 된 모양새다.
한마디로 세계는 지금 각자도생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미국 최우선(America First)’이라는 트럼프노믹스가 국제 질서를 뒤흔들면서다. 트럼프가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중시한다고 했지만, 미국 최우선주의 앞에서는 한국도 풍전등화의 처지가 될 판이다.
미국 최고의 동맹인 일본조차 예외가 못 된다. 이시바 총리는 1조 달러(약 1456조원) 투자 보따리를 바치고서야 트럼프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베트남의 억만장자 여성 기업인 응우옌 티 푸옹 타오 소비코그룹 회장 가족은 미 대통령 취임식 직전 플로리다 마러라고에 초청받아 트럼프와 골프장을 거닐며 환대를 받았다. 트럼프 1기부터 거액의 투자 선물을 풀어온 덕분이다.
한국은 ‘리더십 공백 사태’로 상황이 더 어렵다. 마땅한 선물 보따리가 없다면 이시바처럼 ‘아부의 기술’이라도 써야 할 텐데 전화 통화조차 기약할 수 없다. 그 사이 트럼프의 관세 펀치가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무역 적자국 8위에 올라 있다. 한국에 대해서도 보편관세·상호관세는 물론 철강·알루미늄·자동차·반도체·의약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 부과를 벼르는 이유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선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위기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이번 관세전쟁의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미 정부가 2만 개 품목의 관세율을 최고 400% 인상했던 1930년 스무트-홀리법의 결과가 소환되기도 한다. 당시 영국 등 20여개 국도 미국산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자 대공황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있다. 이번에도 관세 폭탄이 미국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미국 내 마트에선 가격이 뛴 수입품에 ‘트럼프 때문이야(Trump did it!)’라는 딱지가 붙기 시작했다. 다만 1930년엔 농산물 비중이 높았고, 이번엔 첨단기술이 중심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이번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공세는 미국과 중국 간 세계 질서의 주도권이 걸린 문제라는 점이다. 총만 쏘지 않을 뿐 지금은 경제 패권을 놓고 헤게모니를 지키려는 미국이 사활을 걸고 첨단기술과 제조업 능력 회복에 나섰다. 트럼프는 “관세를 부과할수록 외국 기업들이 미국 땅에 공장을 짓고 미국인에게 일자리가 쏟아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외국 기업들이 관세 폭탄을 피하려고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한국의 공장이 계속 해외로 나가면 청년 취업은 더 어려워진다. 물론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따라 무역이 이뤄져 왔고, 기축통화국은 무역적자가 불가피해지는 ‘트리핀의 역설’로 보면 트럼프노믹스는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 그게 현실이 되면 트럼프가 멍청해서 부지런만 떤 ‘멍부’로 판명되는 순간이 올 텐데 한국은 그사이 상당한 타격을 입은 뒤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반도체 초격차를 회복하고, 배터리는 캐즘의 고비를 넘어야 한다. 늘 그랬듯 좋은 제품을 빠르고 값싸게 만드는 게 한국의 위기 탈출구다. 미국이 취약한 조선업은 트럼프와의 협상에서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는 데도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정치권은 뒷다리만 안 잡으면 된다. 그래도 주 52시간제 족쇄를 푸는 건 정치권이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