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을 옮길 때마다, 자신의 의료정보임에도 의료진 간에 제대로 공유되지 않아 같은 검사를 반복하게 된 경험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다. 의료 데이터는 여전히 병원마다 흩어져 있고, 환자가 언제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하거나 서류를 챙기지 않으면 중복 진료나 검사로 이어지기 쉽다.
진료 연속성이 끊기고, 의료진은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구조에서는 환자에게 최적의 진료를 제공하기 어렵다. 병력, 복용 약물, 건강검진 기록 등 환자 정보가 단절된 현실은 진료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환자가 병원을 옮길 때마다 같은 설명을 반복하거나, 이전 병원의 결과지를 직접 들고 다녀야 하는 현실은 그 자체로 의료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런 정보 단절은 인공지능(AI) 활용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뛰어난 AI 모델이라도, 학습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조각나 있다면 본래의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환자의 증상 몇 가지와 제한된 병력 정보만으로는 정밀한 분석도, 개인 맞춤형 대응도 불가능하다. 결국 AI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충분하고 맥락 있는 데이터를 전제로 해야 제대로 작동한다. 데이터 기반 의료의 핵심 전제조건이 바로 '마이데이터'다.
마이데이터는 '내 건강정보를 내가 직접 관리하고 통제한다'라는 원칙 아래, 여러 기관에 흩어진 정보를 하나로 연결하고 환자 동의에 따라 필요한 곳에 제공할 수 있게 해준다. 단순한 정보 조회를 넘어, 환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데이터를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의료 시스템 중심을 기관에서 사람으로 옮기는 변화다. 이 데이터가 정밀하게 모이고 흐르기 시작하면서,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의료 서비스들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의료 현장에서의 다양한 진료 방식도 마이데이터 기반 AI 활용으로 정밀도가 높아지고 있다. 환자의 과거 진료 이력과 약물 정보, 건강검진 결과 등이 자동으로 연동되면, AI는 이런 통합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료 과정에서 의료진을 보다 정밀하게 보조할 수 있다.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는 CDSS(임상 의사결정지원시스템) 형태로 AI가 진료의 맥락을 이해하고 판단을 돕는 방식이 점차 확산하고 있으며, 이 역시 신뢰도 높은 마이데이터가 기반이 돼야 가능하다. 의료 AI가 현실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유의미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정확한 정보를 의료진에게 전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마이데이터 기반의 AI 활용은 병원 진료를 넘어 일상 속 건강관리로도 확장되고 있다. 예컨대 건강검진 결과, 진료기록, 약물 이력, 생활 습관 데이터를 통합해 질환 위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고, 그에 맞는 건강관리를 제안하는 서비스들이 현실화하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나 가정용 측정기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신체 상태 변화를 인지하고 생활 습관 개선을 돕는 방식이다. 맞춤형 예측·관리형 서비스는 마이데이터 없이는 구현이 어렵다. 예방 중심 건강관리, 고령자 모니터링, 희소 질환 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가능성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의료·통신·교육 등의 분야와 더불어 본인전송요구권 확대로 마이데이터를 확산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특히 반가운 소식이다. 의료 분야에서 마이데이터 활성화는 국민 건강을 보다 정교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는 민간 의료 기술과 공공 인프라가 손을 맞잡고, 국민 중심의 의료 데이터 생태계를 형성해갈 수 있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데이터의 흐름이 막혀 있던 의료 구조를 개방하고, 기술이 환자에게 닿을 수 있도록 연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선재원 메라키플레이스 공동대표 jaewon.sun@merakiplac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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