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뵈니까 너무 좋습니다.”(한덕수 국무총리)
“(총리 공관이 있는) 삼청동으로 한 번 초청하세요.”(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실 저는 (박 의원이 문재인 정부 국가정보원장을 할 때) 국정원장실에서 한 번 부를 줄 알았습니다.”(한 총리)
지난 9월 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선 난데없는 ‘브로맨스’(남성 간의 깊은 우정) 장면이 펼쳐졌다. 김대중(DJ) 정부 당시 실세 중의 실세였던 박 의원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한 총리가 20년도 훨씬 지난 일을 꺼내며 서로를 추켜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날도 두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관해 말을 주고받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싸우라고 할 때 제가 싸우던가요?”(한 총리), “좋은 한덕수가 왜 지금은 나쁜 한덕수에요?”(박 의원)라고 치고받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래도 정치권에서 두 사람은 친분이 꽤 두터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나이는 박 의원(82세)이 한 총리(75세)보다 일곱살 많지만 30일 SBS 라디오에 출연한 박 의원은 한 총리를 “친구”로 표현했다. 총리실 관계자도 “두 사람이 부부 동반 모임을 할 정도로 그동안 가깝게 지내왔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두 사람은 함께 대취(大醉)한 일도 있었다. DJ 집권 4년차인 2001년 11월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쇄신파가 ‘DJ의 오른팔’로 불리던 박 의원을 집중 공격하자 박 의원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맡은 지 한 달여만에 사퇴했다. 박 의원을 위로하기 위해 당시 이상주 청와대 비서실장은 환송 만찬을 열었고, 이 자리엔 박 의원의 후임자였던 한덕수 당시 정책기획수석도 참석했다. 두 사람을 비롯해 참석자들은 수차례 돌린 폭탄주 탓에 결국 잔뜩 취한 상태로 자리를 끝냈다고 한다.
이듬해 1월 박 의원이 DJ 정책특보로 복귀할 때 박 의원은 한 총리를 경제수석으로 추천했고, 석 달 뒤 박 의원이 비서실장이 된 뒤로는 실장과 수석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그렇게 인연이 깊은 사이지만 최근 박 의원은 ‘한덕수 저격수’를 자처하고 있다.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뒤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가 불거지자 그를 압박했고, 지난 27일 한 총리가 탄핵소추된 뒤에도 계속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박 의원은 30일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진행자가 ‘(한 총리가) 왜 임명 안 한 거라고 보시느냐’고 질문하자 “제가 친구로서 인간적인 고뇌가 왜 없었겠느냐”며 “나는 한 총리마저도 윤석열, 김건희, 자기 부인처럼 주술 속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본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또 “(한 총리) 부인도 김건희 여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러한 주술 속에서 살지 않으면 그 현명한 한덕수 전 권한대행이 그러한(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판단을 했겠느냐”라고도 했다.
박 의원의 ‘무속 공격’에 총리실은 공식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 한 총리가 직무정지되면서 총리실 조직이 한 총리의 입장을 대변하긴 어려운 상황인 탓이다. 다만, 내부적으론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가까운 사이라면 가까운 사이인데, 저렇게까지 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씁쓸해했다.
정치권에선 과거 ‘민주당 사람’으로 분류되던 한 총리가 최근 민주당과 극한 대립을 이어가자 박 의원이 총대를 멨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지금 한 총리는 민주당의 공적인데, 박 의원으로선 선명성을 보여줄 기회 아니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