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조원이 넘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확정됐지만 무기질비료 가격보조 예산만 일부 반영돼 농업계에선 ‘반쪽짜리’ 추경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농업계가 요구한 농사용 및 도축장 전기요금, 사료 구매자금 등 농가 생산비 지원 예산은 한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예산당국의 예산편성권 독점과 국회의 예산심사권 한계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기질비료 가격보조를 비롯한 농가의 생산비 지원 예산은 해마다 예산당국의 예산편성에서 퇴짜를 맞고 국회 예산심사 과정에서 끼워 넣는 형태로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계엄 파동으로 국회가 감액예산안을 처리해 올해 관련 예산이 쏙 빠져버렸다. 국회라는 마지막 기댈 언덕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국회도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농어업경영체육성법’을 개정해 “원자재 공급망 위협, 에너지 가격의 급격한 상승 등에 따라 경영 부담이 급증한 농어업경영체에 대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예산 범위에서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예산 범위에서’라는 재량권과 ‘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은 지갑을 움켜쥔 예산당국의 ‘뜻대로’만 재확인해주는 법이 되고 말았다.
미국은 5년 주기의 ‘농업법(Farm Bill)’ 제정을 통해 정책과 실행계획, 그리고 예산을 법으로 규정한다. 농가소득 지원을 비롯해 작물보험, 영양 지원 프로그램 등 핵심 정책의 실행에 따른 5년간의 예산이 확정돼 정책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보장된다. 반면 우리는 대통령이 공익직불금 5조원을 약속해도 예산당국이 예산을 짜지 않으면 그만이다. 예산을 법이 아닌 예산당국의 재량에 맡겨둔 까닭이다.
마침 이번 6·3 대통령선거 정국에서 농가 생산비 지원을 의무화하는 입법이 공론화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약에 ‘필수농자재 지원법’이 담겨 핵심 정책에 대한 예산의 법제화가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국민의힘 역시 농업예산이 번번이 예산당국의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문제점에 대한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런 만큼 농가소득 안정과 농업재해 대응, 식량주권 확보를 위한 농지 보전과 청년농 육성 등 중장기 핵심 농정과제는 정책과 실행 예산을 법제화해야 한다. 예산당국에 외면당하고 국회만 바라보는 농업예산은 더이상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