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는 많고 기본은 없고” 4성 장군 고개 숙인 오폭의 진짜 문제 [박수찬의 軍]

2025-03-11

공군의 수장인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이 10일 고개를 숙였다. 지난 6일 경기 포천시 지역에서 발생한 전투기 오폭 사고에 대한 대국민 사과였다.

이 총장은 “사고의 모든 책임은 참모총장인 제게 있다”며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통렬히 반성하고 뼈를 깎는 각오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다시는 이런 사고가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민간인이 사는 곳에 폭탄 8발이 떨어져 민간인과 군인 수십명이 다친 초유의 사고는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한국군에서도 엘리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첨단 무기를 대거 운용하는 기술군대로 인식됐던 공군이 실무장 훈련 과정에서 좌표를 잘못 입력하고, 사후 대응도 육군보다 늦었다.

겨울 동안 얼었던 사고 지역의 땅이 약간 녹으면서 MK-82 폭탄이 땅속으로 조금 파고들어 터진 덕분에 화염과 파편이 옆쪽이 아닌 위쪽으로 퍼져서 피해가 다소 줄어든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군이 새 무기를 도입하는데 골몰하는 동안 수십년간 운용했던 임무 체계에 허점이 커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공군 조직 전반에 대한 혁신과 구성원 역량 강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수십조 들여 무기 샀지만, 기본은 안지켰다

한국 공군은 냉전 종식 이후 30여년에 걸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해 첨단 무기를 지속적으로 도입했다.

총사업비 7조4000억원을 들여 F-35A 스텔스 전투기 40대를 미국에서 도입했고, 2028년까지 20대를 추가 구매하는데 4조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된다.

고고도무인정찰기(HUAV) 글로벌호크 4대를 8800억원에 도입했고, 브라질 엠브라에르 C-390 수송기 구매에도 7100억원을 투입했다. KF-16 성능개량사업에도 2조2000억원을 투입했다.

올해 상반기쯤 기종 선정이 이뤄질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추가 도입, KF-21 양산 등에도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혈세를 들여 도입한 공군의 첨단 무기들은 국군의 날 등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위용을 과시했다. 6·25 전쟁 발발 당시 제대로 된 전투기조차 없었던 한국 공군이 70여년 만에 세계적 수준의 첨단 무기를 대량 보유한 군대로 탈바꿈한 셈이다.

하지만 내부에선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었다. 전투기 오폭 사고는 이같은 문제점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눈에 보이는 첨단 무기 도입에 집중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숙련도 향상이나 조직 구성원 관리 등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사고에선 조종사와 관련 인원이 기본조차 지키지 않거나 특정 임무에만 매몰되어 중요한 징후를 무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번 사고도 KF-16 1·2번기 조종사의 부실한 좌표 확인, 사전 점검을 소홀히 한 지휘부의 부실 관리가 원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심각한 인적 문제다. 항공사고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부분이 인적 문제다.

조종사나 관련 인원의 부주의, 피로, 긴장, 기술 미숙, 착각, 무시 등은 치명적 사고를 초래한다. 민간 항공분야에서 발생하는 사고 중 절반 이상이 기본적 운항절차를 지키지 않거나 부조종사의 불충분한 크로스체크 등 인적 문제일 정도다.

이번 사고도 인적 문제의 특성이 드러난다.

공군 조종사는 △비행임무계획장비(JMPS)를 활용한 비행 준비 과정 △비행자료전송장치(DTC)를 전투기에 로딩한 후 이륙 전 항공기 점검 과정 △사격 지점에서 표적 육안 확인 과정에서 좌표 확인 절차를 거친다.

1·2번기 조종사도 훈련 전날인 5일 JMPS에 좌표를 입력했다. 1번기 조종사가 경로 좌표를 불러주고 2번기 조종사가 1·2번기 JMPS에 좌표를 입력했다. 이때 잘못된 좌표가 입력됐다.

훈련 당일 두 조종사는 JMPS에 오입력된 좌표를 DTC에 담고 전투기 조종석 내 슬롯에 저장했다. 2번기 DTC에 장비 오류가 생겨 2번기 조종사는 수동으로 정확한 표적 좌표를 입력했다. 1번기는 좌표를 잘못 입력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륙하고나서 1번기 조종사는 진입 지점 이후 비행경로와 표적 지역 지형이 사전 훈련 때와 다르다고 느꼈지만 정해진 탄착시각 등이 임박한 점을 감안, 표적을 육안 확인 하지 않고 폭탄을 투하했다. 2번기 조종사는 동시 투하 목표를 이행하고자 1번기 지시에 따라 같은 지점에서 폭탄을 투하했다.

작전 수행 전 조종사가 보고하는 실무장 계획서를 지휘부가 검토하는 체계가 있지만, 시행되지 않았다.

전대장은 상부 지시와 연계한 안전 지시 사항을 하달하는 등 전반적인 지휘관리 업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안전 관련 업무를 대대장에게 위임했다. 대대장 역시 일반적인 안전 사항만 강조했을 뿐 실무장 사격에 대한 세부 지도 감독은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유사시 싸워 이길 수 있나

항공기 사고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는 발생하지 않는다. 기체 문제와 인적 문제, 조직 문화, 훈련 수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한 일들이 사고에 복합적 영향을 미친다.

이번 사고도 단순히 1·2번기 조종사와 해당 부대 지휘부 과실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공군의 조종사 훈련 및 관리 체계, 지휘관 리더십 등 항공작전과 관련된 모든 요소에서 잠재적·근본적 문제가 있다.

전투기 조종사는 자신의 기체에 있는 장비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조작하면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러려면 미군처럼 많이 써봐야 한다. 하지만 한국 공군은 그런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육지에서 실무장 사격은 1년에 한 번 정도일 정도로 드물다.

그나마 실사격 훈련도 암암리에 ‘족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사격장 내 표적을 정확히 명중시키는데 필요한 방법이 일선 부대에선 굳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는 돌발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을 떨어뜨리고, 실전 능력 향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1번기 조종사가 비행 도중 이상 징후를 느꼈음에도 그대로 비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조종사의 심리적 문제도 지적 대상이 될 수 있다. 1번기 조종사는 지상 표적을 육안 확인하지 못했는데도 사격장 내 최종공격통제관(JTAC)에게 ‘표적 확인’ 통보 후 폭탄을 투하했다.

공군 관계자는 “표적이 잘못됐다고 판단, 임무 중지하고 돌아오면 어떤 처분도 없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도 그럴지는 불확실하다.

조종사가 비행 도중 특정 임무나 목표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그에 반대되는 신호나 징후가 나타나도 인지하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위험이 생긴다. 시야가 매우 좁아지기 때문이다.

해당 KF-16들은 김명수 합참의장, 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군사령관 등 양국 군 수뇌부가 지켜본 가운데 열린 한·미 연합·통합화력훈련에 참가했다.

군 수뇌부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조종사로선 심리적으로 ‘무조건 임무 완수’라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1번기 조종사는 정해진 탄착시각(TOT)을 지켜야 하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속도를 높였고, 잘못된 비행 정보를 믿고 임무를 강행한 것도 심리적 압박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다.

공군이 과거부터 조종사의 압박감을 덜어줄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켜왔는지, 관련 교육훈련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일정 관리 문제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빡빡한 일정 또는 부족한 휴식시간은 조종사 피로를 누적시킨다. 피로는 비행기 조종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꼽힌다.

조종사 의사결정 오류 또는 지연, 잘못된 조종기술 구사 등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조종사 피로가 항공사고를 악화시킨 사례도 있다. 따라서 민간 항공사들은 조종사에게 충분한 휴식시간을 주고 일정도 세심하게 짠다.

이번 사고 조종사들은 5일 오전·오후 군산기지를 이륙해 경기 포천시 승진사격장으로 사전연습 비행을 했다. 5일 오후에 사전 연습 비행을 끝내고 6일 실제 비행을 준비하고자 저녁식사 후 다시 출근했다. 사고 전날 1번기 조종사는 오후 9시 40분, 2번기 조종사는 오후 10시에 퇴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요한 훈련이나 작전을 앞둔 시점에선 부대 내에서든 집에서든 충분히 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해당 부대에서 세밀하게 관리를 했을지는 불확실하다.

지휘관의 리더십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휘관은 자신이 통솔하는 조종사와 전투기의 특성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조종사들을 지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초급장교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을 장려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지식과 경험을 쌓은 장교들이 진급해서 전대장이나 비행단장을 맡아 후배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 이번 사고처럼 기본조차 간과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흔히 보는 것에 치중하고 인적 문제를 소홀히 한 조직은 무너진다. 지난 2007년 1월 인도네시아에서 아담 항공 여객기가 추락해 102명이 숨진 참사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인도네시아 신생 저가 항공사였던 아담 항공은 세련된 기체 디자인과 산뜻한 승무원 복장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조종사와 정비사의 숙련도는 형편없었다. 관성항법장치(IRS)가 반복적으로 고장났지만 고치지 않았고, 교육받지 못한 조종사들은 대응법을 몰라 실수를 반복하다 추락했다. 아담 항공은 면허취소 처분을 받고 사라졌다.

한국 공군도 국민들의 눈에 쉽게 띄는 첨단 무기 도입에만 집중하면 내부 역량이 부실해질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공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종사와 지휘관, 지상요원 등의 전문성이다. 인적자원관리를 더욱 치밀하게 하고, 내실을 다지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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