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신혼여행〈26〉 베트남 달랏

날 좋고, 물가 저렴하고, 맛있는 와인까지 있는 달랏은 ‘한 달 살기’ 하기에 좋은 장점만 쏙쏙 모아 놓은 도시였다. 3주간의 여행 뒤 달랏은 우리가 베트남에서 가장 사랑하는 도시가 됐다. 2018년 1월이었다.
아내의 여행

우리가 달랏을 사랑하는 이유. 첫째는 누가 뭐래도 날씨다. 365일 덥지도 춥지도 않은 봄날의 온기를 품고 있어 ‘영원한 봄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다.
달랏은 해발 1500m 고원지대에 자리한 도시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포근하다. 한여름에도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지 않는다. 19세기 후반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는 이 온화한 기후를 알아보고 달랏을 휴양지로 점 찍었다.
둘째는 생활비. 달랏을 찾는 관광객의 90%가량이 베트남 사람이다. 그들에게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꼽힌단다. 덕분에 물가도 현지인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호찌민 같은 대도시에서는 쌀국수 한 그릇에 4000원을 받지만, 달랏에선 절반 가격인 2000원이면 충분하다. 전반적인 외식·숙박·생활비도 호찌민이나 하노이보다 20~30%가량 저렴하다.
셋째는 액티비티 천국이라는 점. 가성비 좋은 골프장이 즐비하고, 랑비앙산(2167m) 트레킹, 급류 타기까지 놀 거리가 널려 있다.

베트남에 갔다. 남부 호찌민에서 침대 형태의 좌석을 갖춘 ‘슬리핑 버스’를 타고 8시간을 달려 중부의 달랏에 도착했다. 베트남은 1883년부터 1945년까지 62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인은 더위를 피해 달랏에 별장을 짓고 포도를 심었다. 지금도 달랏은 베트남의 대표 와인 산지다. 도시 이름을 상표로 내건 와인을 자랑스럽게 판다. 마트에서 사 온 5000원짜리 달랏산 와인을 마시며 시간을 허비하던 그 순간이 지금도 그립다.
프랑스가 남긴 건 와인만이 아니다. 1938년에 완공된 달랏역은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아르데코 양식을 따랐다. 100년 가까이 된 이 작고 귀여운 기차역은 햇살 아래 앉아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도멘 드 마리 수녀원은 식민지 시대에 착공해 1944년 완공됐다. 딸기우유처럼 오묘한 분홍빛 외관 덕분에 현지인 사이에선 웨딩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달랏 현지인이 추천하는 또 다른 명소는 2015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된 랑비앙산이다. 방문객 대부분은 지프차를 타고 전망대까지 오르는데, 정상에 서면 달랏의 눈부신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온화한 날씨, 풍요로운 농작물, 여유로운 사람들까지 달랏의 모든 것이 마음 깊이 스며드는 완벽한 장소였다.

남편의 여행

달랏은 커피를 좋아하는 나와 차를 좋아하는 은덕, 우리 모두를 만족시켰다. 달랏은 볕이 좋고 다습한 기후 덕분에 커피나무와 차나무가 모두 잘 자란다. 커피 농장을 겸하는 카페가 많아, 신선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어느 동네에서나 맛볼 수 있었다. 운이 닿으면 커피나무에서 직접 열매를 따거나 커피를 볶는 과정도 볼 수 있다. 커피 농장 투어나 카페 투어를 목적으로 달랏을 일부러 찾는 여행자도 많다. 맛이 훌륭한 데다 가격까지 저렴하니,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 베트남 달랏에 세계적인 캐니어닝 스폿이 있대! "
매일 매일의 카페 투어가 시시하게 느껴졌는지 어느 날 은덕이 내게 소리쳤다. 캐니어닝(Canyoning)은 계곡에서 암벽 등반, 급류 타기, 로프 하강 등을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다. 달랏 남쪽의 현지인도 즐겨 찾는 다딴라(Datanla) 폭포가 캐니어닝 명소다.
우리는 1인당 약 5만원(2018년 기준)을 내고 캐니어닝에 도전했다. 하네스를 착용하고 밧줄을 연결한 뒤 계곡 아래로 내려서자, 시작부터 작은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에게 닥친 첫 난관. 은덕이 “힘들면 포기해”라고 말했다. 정작 걱정이 많은 건 나였다. 은덕은 알아주는 몸치인데, 가끔 보면 내가 더 연약한 줄 아는 모양이다.

우리는 오직 밧줄 하나에 의지한 채 폭포를 건넜다. 요령도 없이 손가락에 온몸을 맡긴 은덕은 젖은 밧줄에 손이 쓸려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미끄러운 바위를 타고 내려가고, 깊은 웅덩이에 몸을 던지며 정신없이 전 구간을 지나왔다. 그렇게 어느새 마지막 관문 앞에 다다랐다.
달랏 캐니어닝의 하이라이트는 10m 폭포 위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리는 순간이다. 겁 많은 나에게 그곳은 마치 63빌딩 옥상처럼 아찔했다. 내려갈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점프뿐. 먼저 뛰어들어야 은덕도 용기를 낼 것 같아,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던졌다.
풍덩! 몸을 던진 순간, 두려움도 함께 가라앉았다. 살아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던 그때, 폭포 옆 샛길로 유유히 걸어 내려오는 은덕이 눈에 들어왔다. 용기와 뿌듯함 그리고 배신감이 뒤섞인 그 날의 기억은 요즘도 내 안에서 장난스레 얼굴을 내민다.

달랏 한 달 살기

비행시간 : 약 6시간(호찌민이나 하노이에서 경유)
날씨 : 365일 온화하다
언어 : 베트남어(생존 베트남어를 외워갈 것)
물가 : 호찌민·하노이보다 20~30% 저렴
숙소 : 400달러 이하(집 전체 빌라)
여행작가 부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작가 부부이자 유튜버 부부.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고, 그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지은 책으로 『사랑한다면 왜』 『없어도 괜찮아』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 등이 있다. 현재 미니멀 라이프 유튜브 ‘띵끄띵스’를 운영하며 ‘사지 않고 비우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