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전문가 예상욱 교수

“해빙이 녹아 북극곰의 터전이 사라진 게 최근 한반도 기상이변의 주된 원인입니다.”
북반구 지도를 펼쳐놓고 한반도 주변 기류를 설명하던 예상욱 한양대 교수의 손가락이 순간 북극해에서 멈췄다. 하루가 다르게 초여름 같은 날씨와 폭설·우박이 쏟아지는 악천후가 번갈아 나타났던 올봄의 극단적인 날씨 변덕은 북극 해빙(海氷·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이 녹아내린 데서 기인한 것이라면서다. 예 교수는 “북극의 상황 등 과거엔 영향이 크지 않았던 요소들이 최근 들어 한반도 날씨에 극단적인 형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북극 해빙의 감소 추세를 되돌리긴 어려운 현실을 감안할 때 한반도 기상이변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예 교수는 서울대에서 기후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조지메이슨대 기후해양연구센터 연구원 등을 거쳐 한양대 해양융합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부터 한국기상학회 기후변화특별위원장도 맡고 있는 그는 2021년 로이터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후변화 분야 과학자 1000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예 교수를 만나 최근 한반도의 날씨는 왜 이리 변화가 심한지, 그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등에 대해 들어봤다.
‘세계적 영향력 기후 과학자 1000명’에 선정

요즘 날씨 변동이 너무 극심하다.
“봄철에 초여름 더위가 찾아오는 것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지난해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에 비해 섭씨 1.55도나 올랐다. 그렇다 해도 초여름 날씨에 바로 뒤이어 폭설과 우박이 내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지구로 향하는 태양빛은 변함이 없는데 대기 순환의 폭이 예전보다 훨씬 커지다 보니 북쪽의 찬바람이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자주 몰려오고 있다.”
대기 순환은 어떤 이유로 활발해진 건가.
“무엇보다 북극해 주변 기류가 변화무쌍해졌다. 지구의 기후를 조절해 주는 요소 중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게 바다인데 지구온난화 여파로 북극해도 과거에 비해 한층 따뜻해졌다. 반면 북극의 대기 온도는 연평균 영하 7도, 추울 땐 영하 30도까지도 내려간다. 따뜻해진 바다와 바다 위 차가운 대기의 온도 차이가 커지면서 에너지 순환이 더욱 급격하게 이뤄지게 됐고 이로 인해 북극 대기가 한반도까지 이동하기 쉬워졌다.”
올봄 우박도 북극의 찬 공기 때문인가.
“그렇다. 북극 대기의 확장 폭이 넓어지면서 찬 공기가 한반도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과거엔 북극 아래쪽에 흐르는 제트기류에 막혀 남하하지 못하던 북극의 찬 공기가 세력이 커지면서 제트기류를 쉽게 넘어서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날씨가 따뜻해졌다 싶다가도 바로 다음날 대설특보가 내리는 기현상이 잦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해빙이 녹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닌데.
“문제는 당초 예상보다 녹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는 점이다. 2년 전만 해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50년쯤 북극 해빙이 완전히 녹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최근 기후학계에선 그 시기가 2030년대로 앞당겨질 것이란 견해가 다수다. 일각에선 불과 2년 뒤인 2027년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올해 북극 해빙만 봐도 사상 최소 규모로 줄어든 상태다.”

예 교수의 말처럼 최근 국제 기후학계는 북극 해빙이 녹는 속도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도 지난 3일 올해 북극 해빙의 크기가 위성 관측이 시작된 이래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달 22일 이후 이달 1일 사이엔 하루 평균 2만9500㎢ 크기의 해빙이 녹아내린 것으로 관측됐다. 단 하루 만에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한 면적만큼의 북극 얼음이 사라진 셈이다.
해빙이 예상보다 빨리 녹는 이유는.
“순백의 해빙은 태양빛을 반사하는 반면 바다는 태양빛을 흡수한다. 해빙이 녹아 바다로 흘러가면 태양빛 흡수량이 반사량보다 더 많아지게 되고 그만큼 주변 지역의 온도는 상승하게 된다. 이렇게 기온이 오르면 해빙은 더 잘 녹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해빙이 사라질수록 남은 해빙이 녹는 속도가 빨라지게 되는 것이다.”
북극 해빙이 완전히 사라지면 한반도 기후에 어떤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나.
“학계에서 북극 해빙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표현하는 건 늦여름인 9월 기준이다. 겨울엔 다시 얼어 해빙이 생긴다. 하지만 이렇게 생성된 1년 미만의 해빙은 두께가 최대 2m에 불과하다. 오랫동안 녹지 않았던 해빙과 달리 이듬해 여름이 되면 빠르게 녹게 된다. 이렇게 해빙이 빨리 얼고 빨리 녹으면 그만큼 북극 대기의 변동성도 커지기 마련이다. 이는 한반도 기후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이로 인해 오락가락하는 날씨 변화도 더욱 잦아질 전망이다.”
예 교수는 그러면서 “이 같은 현상이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시베리아 등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점도 변수”라고 짚었다. 눈으로 덮여 있어야 할 시베리아 지역도 이상고온 현상으로 눈이 쉽게 녹고 있고, 고온으로 인해 고기압이 활성화되면서 이 지역의 건조한 바람이 한반도로 더 강하게 내려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세력이 커진 북극 기류가 남하하며 시베리아 기단을 남쪽으로 밀어내는 현상까지 겹치면서 봄철 한반도는 더욱 건조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요약하자면 북극 해빙이 더 많이 녹으면서 북극 기류는 더 강해졌고, 그 여파로 건조한 시베리아 기단이 한반도로 세력을 더 확장하게 됐으며, 이로 인해 지난달 경북 지역 대형 산불 등 자연재해가 더욱 빈번해지는 연쇄 반응이 한반도 주변에서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해빙이 녹는 속도를 늦출 방법은 없나.
“지금 당장 이산화탄소 배출을 중단해도 이미 배출된 이산화탄소 등 대기오염물질은 즉시 사라지지 않을 것인 만큼 지구온난화 추세는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일부 지역에선 대기 질 개선이 되레 지구온난화를 가속하는 모습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중국도 최근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기 질이 나아졌지만 역설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지구온난화는 한층 심해졌다. 그동안엔 중국의 대기오염물질이 태양빛을 막아줬는데 대기가 개선되면서 태양빛이 그대로 지면에 도달하는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올해 북극 해빙, 위성 관측 이래 최저 수준
유독 봄 날씨 변화가 심하게 느껴진다.
“관측상으로도 다른 계절에 비해 봄철 기온의 변화 폭이 크다. 1979년부터 지난해까지 평균 기온을 살펴봐도 매년 봄엔 전년 대비 평균 0.45도씩 상승했다. 여름은 0.33도, 가을과 겨울은 각각 0.26도와 0.07도 올랐다. 여기에 꽃샘추위도 예전보다 강력해지다 보니 날씨가 너무 급변한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올해 여름 더위도 걱정되는데.
“현재 한반도 해수면 온도는 평년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나타난 약한 라니냐(동태평양 수온이 낮아지는 현상)도 점차 완화될 전망이다. 정반대 현상인 엘니뇨의 신호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최근 한반도는 전통적인 변수 외에 고려해야 할 요소가 크게 늘어난 게 변수다.”
어떤 변수가 추가되고 있나.
“지구온난화가 기후변화로 이어지면서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진 오호츠크·시베리아·양쯔강·북태평양 등 한반도 기후를 좌우하는 4개 기단을 주로 살피면 됐지만 이젠 북극 기류와 시베리아의 눈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라니냐와 엘니뇨도 단순하지 않다. 어느 지역에서 발생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에 전혀 다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측이 어려워졌다는 얘기로 들린다.
“과거에도 날씨 예측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다양한 요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름철 날씨를 예상할 때도 평균 기온보다 중요한 게 일일 변동성이다. 한여름 무더위가 이어지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등 날씨가 극심하게 변할 때 실생활에 미치는 피해도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집중 호우가 훨씬 빈번해지지 않았나. 올봄 활짝 핀 벚꽃 위에 폭설이 내린 것처럼 올여름엔 극한 더위에 극한 호우가 겹칠 가능성도 한층 커진 만큼 미리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금까진 장마나 풍랑 등 예보에 따라 대비해 왔다면 앞으로는 여름이 되기 전에 지역별로 취약한 부분을 점검하고 경고 시스템도 꼼꼼히 갖춰야 한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하면서 기상이변도 갈수록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게 전 세계적인 추세다. 이는 한 국가의 역량만으론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유엔이 지구촌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국가 간 협력이 필수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도 기후위기 문제를 국가의 핵심 어젠다로 설정하고 보다 전략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